2020년 2월 1일 토요일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어느새 2월이 찾아왔다. 내게 장미꽃 한 다발이라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장미향처럼 달콤한 2월을 보내고 싶어서. 흐린 겨울날 무얼 할지 약간 고민하다 맨해튼에 갔는데 카네기 홀 앞을 지나다 공연 포스터를 보고 박스 오피스에 들어가 티켓 한 장을 구입하고 말았다. 날 유혹한 것은 미국 뮤지컬의 전설 스티븐 손다임 곡을 부른다고.
미국 뮤지컬 West Side Story 곡을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사를 스티븐 손다임이, 안무를 제롬 로빈스가 맡았다. 뮤지컬도 한국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뉴욕에 조금씩 알게 되는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뮤지컬을 DVD 영화로 보니 전혀 감흥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을 했는데 대학원 시절 학교에서 1인 20불짜리 티켓을 판다고 하니 얼른 달려가 구입해 대형 버스를 타고 맨해튼에 가서 뮤지컬을 봤는데 영화와 달리 환상적이었다. 새로운 뮤지컬 세상에 처음으로 눈을 떴던 날.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라이브 공연이 정말 특별하다. 처음으로 타임 스퀘어에서 뮤지컬 보고 한 밤중 집에 돌아와 피곤했지만 오래도록 기억하는 특별한 추억이다. 마음은 자주자주 뮤지컬 공연을 보고 싶지만 20불짜리 티켓을 항상 판 것도 아니니 기회가 드물었다.
그렇게 알게 된 스티븐 손다임. 전설적인 음악가라 유혹에 넘어가 티켓을 구입했는데 저녁 8시가 지나 카네기 홀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무대에 오른 가수 가운데 내가 아는 사람 한 명도 없고. 몇 곡은 어디선가 들은 곡이나 제목도 모르고. 대부분 내가 모르는 낯선 곡들을 불렀다. 청중들은 얼마나 좋아하던지 내겐 충격이었다. 평소와 달리 젊은 층이 아주 많았다. 실은 난 기대를 많이 했지만 날 만족시키지 않았다. 메트의 황홀한 조명과는 너무나 비교되어버린 조명. 그런다고 티켓을 샀는데 집에 돌아가기도 아쉬워 마지막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거의 매일 공연을 보니까 내 귀는 갈수록 더 예민해지고 음악가의 명성이 높다고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면서 난 우주에 온 외계인임을 실감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 청중들은 공연에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레슨을 받고 공연도 보러 가니 뉴욕에 와서도 낯설지 않지만 뮤지컬은 한국에서 접한 적이 없으니까 너무나 낯설고 하루아침에 낯선 문화에 친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언어 장벽과 문화 장벽이 높은 이민자들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뉴욕 문화가 아무리 특별해도 즐길 수 없으면 남의 것이 된다.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 결국 즐기기 위해서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만약 내가 바이올린과 첼로 등 레슨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음악을 즐기기 못했을 것이다. 대학원 시절 콜럼비아 대학과 런던에서 공부했던 교수님께 졸업할 무렵 클래식 음악 CD를 선물했는데 그분은 뉴욕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시면서 오페라, 클래식 음악, 발레 공연을 즐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팝과 록음악을 아주 사랑하신 분. 내게 그분이 젊을 적 듣던 귀한 음악 CD 수 백장을 주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아들과 함께 러시 티켓 사서 뮤지컬 공연을 감상했지만 그 후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을 알게 되니 뮤지컬 러시 티켓값이 40불에서 시작하니 차라리 오페라 두 편 보겠다는 생각에 요즘은 거의 뮤지컬 공연은 보지 않는다. 뮤지컬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공연료가 너무 비싸다고. 암튼 40불 러시 티켓도 서민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오는데 편도 5차례 환승했다. 주말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종점역에서 111가 역까지 공사 중이라 정상 운행을 하지 않은 덕분에 더 자주 환승을 했는데 겨울비는 내리고 가방에 우산은 없고 111가 역에서 무료 셔틀버스 타고 플러싱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마라톤 선수처럼 빨리 뛰어 도착해 기다렸는데 한 밤중 시내버스님은 어디로 사라져 오지 않고, 비는 내리고 비에 젖은 생쥐로 변해서 버스를 기다려 늦게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에 든 미역국을 데워 먹으려는데 음식이 상해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도무지 제대도 되는 게 하나도 없던 2월의 첫날. 주말 지하철이 정상 운행하지 않아서 훨씬 더 불편한데도 맨해튼에 갔는데 외계인이 되어버려 소외감만 느끼고. 차라리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봤으면 더 좋았을까. 겨울비는 또 왜 내려. 전날은 가방에 우산을 담아갔는데 비가 오지 않아 무거워 토요일은 잊지 않고 우산을 꺼냈는데 일기예보는 자꾸 변동되고 결국 비에 흠뻑 젖었다.
내가 누구야. 맨해튼에 가서 하루 1만보를 걸으며 행복 찾기 놀이를 한다. 오랜만에 첼시 갤러리에도 가서 우리네 삶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미술전시회도 보았다. 갈수록 첼시 갤러리 방문자들은 많아져 가고 멋진 스타일의 방문자들도 많더라. 첼시 갤러리는 항상 무료니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