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서부에서 딸이 목요일 아침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전날 메트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감상 시 받았다. 전날 밤 오페라 보고 자정 넘어 집에 도착해 딸과 함께 볼 공연과 전시회 스케줄을 만들고 새벽에 잠들었다. 불과 몇 시간 자고 일어나 이불 빨래부터 하기 시작. 장도 봐야 하는데 아들과 함께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장 보러 가다 혹시나 하고 딸에게 몇 시경 집에 도착하냐고 물으니까 10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서부에서 밤늦게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 공항을 경유해 뉴욕에 오니 얼마나 피곤한 스케줄인지. 아들 혼자 장 보러 다녀오라고 말하고 난 식사 준비를 하러 집으로 돌아갔다. 아들에게 분명 화장지를 사 오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깜박 잊어버렸다. 실수야 실수.
목요일 아침 정신없이 바빴다. 그래도 이불 빨래할 정도의 동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딸은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했다. 딸이 갑자기 오니 무척 바쁜데 여기저기서 이메일을 받았다. 뉴욕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과 이벤트들이 줄줄이 취소된다는 소식. 참 믿을 수 없는 소식들. 하루아침에 상황이 너무 안 좋게 변하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2월 내내 매일 오페라 보러 갈 걸 후회가 밀려온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
메트에서 오페라 보고 새벽에 집에 돌아와 잠 안 자고 특별 스케줄을 만들었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다. 메트 뮤지엄에서 오는 소식은 그나마 다행. 목요일까지 뮤지엄을 오픈하고 다음날부터 문을 닫는다고. 딸에게 뮤지엄이라도 가겠냐고 묻고 함께 맨해튼에 갔다.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 렉싱턴 애비뉴에서 내려 뮤지엄 마일 쪽으로 향해 걷고 몇 번의 신호등을 건너 뮤지엄에 도착했다. 평소와 달리 방문객은 많지 않았다. 뮤지엄에서 연락을 받아 다행이었다. 뮤지엄 입구 안내 데스크 직원 얼굴은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게 별로 달갑지 않은지 인상파 얼굴로 변했다. 얼른 티켓을 구입하고 갤러리 구경을 하기 시작하는데 5시가 되기 전 직원이 곧 문을 닫는다고 빨리 나가라고 말했다. 조용한 뮤지엄이라 참 좋은데 왜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인지.
아들은 뉴욕은 문화 예술의 도시인데 모든 공연과 뮤지엄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뉴욕이 뉴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물가가 하늘처럼 비싼 뉴욕에 살고 싶은 이유는 문화 예술면의 매력. 매일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뉴욕 문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그런데 공연과 전시회를 관람할 수 없으면 어떡해. 아들은 엄마가 미리 걱정된다고. 매일 맨해튼에 가서 즐겁게 노는데 이제 무얼 하고 살아야 할까.
뮤지엄에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센트럴파크의 봄을 느끼며 플라자 호텔 근처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에 갔다. 세계 무역 센터 지하철역 오큘러스를 지나서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도착했다. 딸이 메트 뮤지엄에 갈 때부터 배가 고프다고 하나 뮤지엄이 곧 닫을 시간이라서 전시회부터 보았다.
가끔씩 특별한 공연을 여는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플라멩코 댄스 축제가 열리는데 몇 번 웹사이트에 접속해 공연이 취소되나 확인했다. 딸을 블루리본에서 메뉴를 고르고 우린 스페인 음식을 골라 아름다운 허드슨 강 전망을 바라보며 식사를 했다. 강 건너 뉴저지 빌딩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저녁 7시부터 플라멩코 댄스 축제가 시작. 예정대로 진행되니 감사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딸은 우리가 댄스 축제를 보는 동안 보스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친구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학교를 떠나라고 하니 난리가 났고 항공기 이용도 제한이 될지 모른다는 소식을 전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스탠퍼드대학으로부터 자주 수많은 이메일을 받은 딸은 서부로 돌아가야 하는데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
내게도 보스턴 미술관에서 소식이 왔다. 가끔씩 보스턴에 방문하면 보스턴 미술관에 가니 연락을 가끔씩 받곤 한다. 상당히 불안한 소식이라 차분이 플라멩코 댄스 축제를 볼 기분도 아니라서 조금 공연을 보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빨리 지구촌을 떠나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모든 곳이 문을 닫는다면 경제 상황은 어떻게 될까. 일을 하지 못하면 당장 렌트비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정말 큰 일이다. 미국은 부자 나라라고 알려졌지만 소수를 제외하고 당장 렌트비 걱정부터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뉴욕 맨해튼에 얼마나 많은 홈리스들이 사나.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상황이지. 직장을 잃어버렸다는 슬픈 홈리스들이 의식을 잃고 도로에 누워 있으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몰라. 특히 렌트비 비씬 뉴욕, 보스턴, 팔로 알토는 실직자로 변하면 홈리스 되기 너무 쉬워. 급여가 나오지 않으면 렌트비를 어찌 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