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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r 15. 2020

뉴욕 코로나와 화장지 소동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뉴욕 플러싱의 봄 



뉴욕 플러싱에도 매화꽃과 수선화 꽃과 제비꽃 피는 봄이 왔건만 봄이 봄이 아니다. 햇살 좋은 토요일 오후 줄리아드 학교에서 공연을 보고 뮤지엄과 갤러리를 순례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모든 게 지금은 꿈으로 변했어. 서점과 카페와 레스토랑까지 전부 문을 닫는다면 캄캄한 세상으로 변하겠구나. 상상만 해도 끔찍한 공포야. 


부자 나라 미국에서 생필품에 속하는 화장지를 구입할 수 없다는 게 믿어지는가. 아마존에도 매진이라고 BJ's, Wallmart, H mart 등 모두 화장지가 없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야. 풍요로운 21세기 화장기가 없다면 전쟁터가 아닌가. 


토요일 아침 일찍 딸은 잠에서 깨어나 혼자 플러싱에 화장지와 퓨렐 손소독제를 사러 갔다. 지난번 사러 가니 매진이라고 하면서 토요일 물건이 들어올 거라 하니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가게에 도착해 기다렸지만 퓨렐을 살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플러싱 비제이스에 가서 화장지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줄이 너무너무 길었다고. 어렵게 매장에 들어갔지만 화장지 코너는 텅텅 비어 살 수 없었다고. 


비제이스에 갔으니까 샴푸, 린스, 치약, 비누, 샤워 비누, 호일 등을 구입하고 연락이 와서 아들과 함께 비닐 가방 몇 개 들고 비제이스에 걸어갔는데 오랜만에 간 김에 육고기 약간과 오렌지를 구입하고 한인 택시를 불러 타고 집에 돌아왔다. 뉴욕에 온 지 40년 이상 되었다는 기사분은 멋진 정장 차림으로 멋진 차를 몰고 오셨다. 기사님 말씀은 중국인들이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화장지가 없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가 비상사태 선언 하기 하루 전에는 분명 화장지를 동네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해 미리 화장지 등을 구입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루 차이로 화장지가 사라졌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만 구입했는데 쇼핑 비용도 얼마나 많은지 하늘 같아서 돈이 돈이 아닌 거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뮤지엄과 공연 등이 전부 최소 되니 뉴욕이 뉴욕이 아니다. 내 가슴에서 슬픈 노래가 흐른다. 


뉴욕이 뉴욕이 아니다.

돈이 돈이 아니다.

삶이 삶이 아니다.

봄이 봄이 아니다. 


아 살맛 나지 않은 세상!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좋기도 하지만 뉴욕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고 산다. 아무도 없는 사하라 사막 같은 땅에서 씨를 뿌리고 자라길 기다리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려야 꽃이 필까. 운명인지 하늘의 뜻인지 모르지만 어느 날 내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다. 부서진 내 슬픈 영혼이 날 뉴욕으로 데리고 왔을까. 날개 하나 부서진 몸으로 머나먼 타국에서 새로운 둥지를 트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슬프고 힘든 일인지. 새로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고통의 대가다. 눈물과 눈물과 고통과 고통을 뿌리며 황무지를 일구기 시작했지만 아직 꽃이 피기엔 우리 가족의 세월은 너무 짧다. 최소 30년 정도가 지나야 어느 정도 뿌리가 내리고 자리가 잡힐까. 


서부에서 온 딸과 함께 어제 링컨 스퀘어 근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먹다 남은 디저트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집에 가져왔는데 삶은 삶이 아니고 뉴욕은 뉴욕이 아니고 돈이 돈이 아니지만 초콜릿 맛은 일품이다. 삶이 초콜릿처럼 달콤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구별을 우울하게 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는데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언 후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2012년 뉴욕에 허리케인 샌디가 찾아와 지옥의 불바다를 만들었다. 전기 공급이 끊기고 가로수는 쓰러지고 우리 집 아파트 지붕은 날아가 버려 한 달 가까이 수선을 하니 전쟁터 같은 소동이 일어났다. 그때도 허리케인이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국에서 허리케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하지 않아서 무얼 해야 한지도 모르니까 10월 말이라서 예쁜 단풍이라도 보려고 차를 타고 달려갔다. 노란 단풍 보고 집으로 달려왔지만 그 후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픈 일 가득했지.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 하늘에서 비가 집으로 쏟아져 내리니 얼마나 슬퍼. 당시 연구소에서 일하던 무렵 학교 교수님은 맨해튼에 사는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데 레스토랑 문도 닫아버려 식사를 할 수 없다고 불평을 하셨다. 암튼 악몽 같은 샌디 추억도 떠오르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하지만 허리케인 샌디가 지옥의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도 화장지는 살 수 있었다. 지금 뉴욕 상황은 처음이야. 


다른 거는 몰라도 화장지는 필요하다. 토요일 아침 인터넷에서 화장지를 찾아봤지만 매진이라고 하고 맨해튼 마트는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료 배달하는 서비스도 있지만 플러싱에 사니 홀 푸드 매장도 없고 맨해튼과 사정이 다르다. 동네 마트에서도 화장지가 없다고. 한인 마트에 전화하니 화장지가 매진. 어디에 화장기가 있니?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화장지 나와라. 뚝딱. 



브롱스 화이트 스톤 다리를 지날 때 멀리서 보이는 풍경/ 내 반대편 창에서는 맨해튼이 비친다. 



화장지를 사러 브롱스에 갔다. 플러싱에도 화장지가 없으니까 가난한 지역에 혹시나 있나 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브롱스에 달려갔다. 전망 좋은 화이트 스톤의 다리 정경도 보면서. 멀리서 맨해튼이 보인다. 얼마나 예쁜지 숨이 막힌다. 그런데 내게는 슬픈 추억이 감도는 화이트 스톤 다리. 


뉴욕 정착 초기 운전 면허증을 받아야 하는데 플러싱 한인 자동차 학원에 등록해 오래오래 교습을 받고 운전 시험을 보러 갔는데 허탕을 치고 만 불행한 사건. 한국에서 20대 후반부터 운전하기 시작하니 운전 경력도 꽤 오래되었지만 혹시나 불합격할까 걱정이 되어 한인 자동차 학원에서 교습을 받았다. 강습료는 시간당 40불. 아주 오래전이니까 지금은 더 비싼가 모르겠다. 그런데 시험도 볼 수 없었다. 


한인 자동차 학원 차를 빌려서 시험을 치르려는데 상업용 보험에 들지 않았는데 직원에게 들통이 나서 난 시험도 볼 수 없었다. 그때 난 플러싱에서 운전 시험을 보고 싶다고 하니 학원 측에서는 빈자리가 없어서 브롱스에서 봐야 한다고 하면서 브롱스 화이트 스톤 다리를 지나니 톨게이트 비용을 추가하니 자동차 대여비가 훨씬 더 비쌌다.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은 뉴욕시 플러싱이 아닌 뉴욕 롱아일랜드에 살았다. 차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딕스 힐. 딕스 힐에서 플러싱까지 운전 연수받으려고 오려면 한 나절을 보내야 가능한 곳. 기차를 타고 시내버스를 오래오래 타고 플러싱에 왔다. 하루하루 눈물로 세월을 보냈지. 


화장지 하나 사러 브롱스에 달려갔는데 하늘이 나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는지 화장지를 구입했다. 가게 주인은 남미에서 이민 온 부부. 아주 오래오래전에 이민을 왔다고 하면서 아들과 함께 가게 운영을 한다고. 어린 손자 사진도 보여줘 깜짝 놀랐다. 왜냐면 가게 주인이 젊게 보여서. 남미 여행을 하지 않았는데 브런치에 남미를 무척 사랑하는 분이 계셔 자주 남미 사진을 보게 되니 남미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비행기를 타고 남미로 날아가면 좋겠어. 


그나저나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까. 토요일이면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는데 뉴욕이 멈춰버렸다. 아들 말처럼 뉴욕이 뉴욕이 아니다.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에서 문화 공연을 관람할 수 없다면 얼마나 슬퍼. 뉴욕 여행객은 무얼 하며 지낼까. 


누가 믿을까. 뉴욕에 화장지가 없다고 하면. 아마존에는 왜 화장지가 없는 거야. 어쨌든 화장지 하나 사러 브롱스에 다녀왔으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겠다. 


줄리아드 학교에서는 5월 23일까지 모든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소식을 보내왔다. 세상에~~~ 믿을 수 없어. 그럼 매일 공연 보는 즐거움은 사라져 버리겠다. 그럼 졸업식은 어떻게 될까.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코로나 19! 뉴욕은 이제 코로나 전쟁이 시작되었나. 


플러싱 이웃집의 창에서는 아름다운 목련꽃노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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