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5일 일요일
약간 차가운 바람 부는 일요일 집에서 식사를 하고 딸과 함께 맨해튼에 갔다. 대학 시절 좋아하는 노래가 왜 갑자기 떠올랐을까. Rainbow(Temple of the King)의 노래! 자주자주 들었지.
딸과 함께 특별 전시회를 보러 방문해 '행복의 사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가면 영원히 행복하리라,라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싶다.
맨해튼 워싱턴 하이츠의 트리니티 묘지와 허드슨 강 전망이 비치는 아름다운 전시회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뉴욕 뮤지엄과 미술관과 심지어 첼시 갤러리까지 전부 문을 닫아버렸는데 1년 잠깐 특별 전시회를 여는 워싱턴 하이츠에 있는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는 3월 5일부터 4월 5일 사이 매주 목요일-일요일(오후 1시-4시)에 문을 열고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March 5 – April 5 2020
1호선 157가에서 내려 조금 걸으면 도착하는데 조용하고 좋다. 여기저기 모든 미술관이 문을 닫아서 이곳도 문을 닫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우리는 특별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다.
미국이 낳은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의 스튜디오도 잠깐 볼 수 있었다. 딸의 친구가 예일대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하게 되는데 딸은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음악을 사랑하는 딸도 나도 잘 모르는 음악가이다. 한국에서 한 번도 이름조차 들은 적이 없는 작곡가. 그 작곡가가 사용하던 피아노 하얀 건반 위에 햇살이 비추더라. 작은 메트롬이 놓여 있어 두 자녀 어릴 적 바이올린 레슨 받을 적 추억도 생각났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되니 메트롬에 맞춰 연습을 하곤 했다.
앞으로 전시 일정이 변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뉴욕은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있으니까. 21세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슬프다.
일요일 오후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빌딩 지하 홀 푸드 매장에 갔는데 혹시나 싱싱한 연어가 있으면 구입하려고 했는데 텅텅 빈 매장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얼마 전 내게 텍사스 마트가 텅텅 비어간다고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웃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공포의 도시 뉴욕 맨해튼. 딸과 둘이서 텅텅 빈 선반을 보며 돌다 보랏빛 히아신스 꽃 몇 송이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홀 푸드 매장에 방문하기 전 센트럴파크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했다. 플라자 호텔 근처를 지나니 마차를 탈 거냐고 호객 행위를 하니 우리는 뉴욕에 살아요,라고 말했다. 여행객도 줄어들고 이래저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이 엄청날 거 같다. 그림처럼 예쁜 마차이지만 너무 비싸니 뉴욕에 살면서 한 번도 타지 않았다. 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면 마차를 타고 신나게 달릴 텐데 별도 달도 돈도 지상에 떨어지지 않더라. 공원에는 노란 산수유꽃과 개나리꽃과 수선화 꽃이 피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찾아와 새들도 지저귀고 꽃도 피는데 왜 이리 슬픈지 몰라. 잠시 벤치에 앉아 기러기떼와 청둥오리가 노는 모습을 보다 홀 푸드 매장으로 걸어가면서 거리 음악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대학 시절 자주 들은 프랑크 시나트라의 노래. 대학 시절 뉴욕에 대해서 모르고 자주 들은 곡인데 프랑크 시나트라도 뉴욕에서 활동했으니 무슨 인연일까.
맨해튼 워싱턴 하이츠에서 특별전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서 내려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라테와 플랫 화이트 커피와 초코칩 쿠키를 주문해 먹으면서 딸과 이야기를 나눴다. 멀리 서부에 있으니까 자주 만날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맨해튼에 갈 때 7호선에 탑승했는데 텅텅 빈 지하철 칸. 정말 유령의 도시 같아. 플러싱 지하철역 주위도 한산하고 소수의 사람들만 보인다. 맨해튼 5번가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평소 같으면 걷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지역인데. 상가도 레스토랑 경영도 몹시 힘들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경영난 부진으로 여기저기서 직원 해고 소식이 들려올까 걱정이 된다.
딸과 내가 아시아인이라고 특별전을 볼 때도 백인 여자가 우릴 피하는 눈치, 카페에서도 바리스타가 우릴 피하는 눈치.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죄 없는 우리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점점 공포 분위기 가득하니 딸은 플러싱 한인 마트에서 엄마를 위해 마스크를 구입했다.
어제는 화장지 하나 사러 시내버스 타고 달려 브롱스에 가서 구입했으니 그래도 다행인가 싶다. 왜냐면 지금 화장지 구입이 무척 어려우니까. 실은 어제도 딸이 화장지를 사러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난 화장지를 사러 브롱스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내가 사는 게 더 낫겠다 싶어 화장지를 사러 다녀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 비상사태 선언 후 뉴욕은 점점 더 공포의 분위기가 짙어가는 느낌. 뉴욕에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현실이라 내게도 무척 낯설기만 하고 언제 세상을 혼란시키는 세균과의 전쟁이 끝날까.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는 제로로 인하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언제 다시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올봄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공연도 보기 힘들 거 같다. 뮤지엄과 미술관과 갤러리도 언제 다시 문을 열까. 점점 공포의 분위기가 확산되는 뉴욕. 조용히 하루빨리 코로나가 지구를 떠나기를 빈다.
난 조용히 살고 싶은데 세상은 왜 이리 어지러울까. 홀 푸드 매장에서 사 온 히아신스 꽃 향기가 가득 메운 봄날 밤. 꽃들에게 위로를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