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4일 화요일 맑음
어제는 비가 쏟아지더니 오늘은 화창한 봄날 세상의 근심을 다 잊은 듯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새들이 봄노래를 불렀다. 아들 창가로 비친 풍경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웃집 목련꽃과 매화꽃이 예쁘기만 하는 사랑스러운 계절.
2020년 7-8월에 열릴 예정이던 동경 올림픽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일본은 올림픽 준비한다고 많은 예산이 들었을 텐데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전쟁터로 변하니 선수들이 어찌 비행기를 타고 움직일 수 있나. 당연 연기를 해야지. 일본 경제가 상당히 안 좋다는 소식을 카네기 홀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들었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에 노인 인구가 많고 일하는 젊은이들이 없으니 정부 수입도 줄어들 테고 노인 부양비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노인들은 정부 보조로 병원에서 지낼 수 있으니 병원이 놀이터란 말도 하더라. 정부는 돈이 없어서 세금을 올려 뉴욕보다 일본 세금이 더 높다는 말을 들었다.
메트(오페라)와 장 조지 레스토랑 등 수많은 곳에서 이메일이 온다. 코로나 19로 공연이 중지된 메트 오페라 경영도 어려울 거 같다. 그러니까 가난한 내게 기부금을 달라고 요청하지만 나도 기부금을 낼 정도 돈이 많으면 좋겠는데 삶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
미국도 코로나 19 감염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거라서 공포 분위기가 감도는데 지구를 구할 영웅은 누굴까.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고 했는데 누가 지구를 구할까. 신은 지구촌의 공포를 바라보고 있는지 몰라.
정말이지 지구를 떠나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지구 커녕은 뉴욕을 떠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뉴욕에서 꼭 필요한 일 말고 외출 금지령이 내렸는데 봄에 잠시 피는 벚꽃이 그리워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상당히 위험한 시기라서 맨해튼에 오래 머물지도 않고 센트럴파크와 플라자 호텔 앞 벚꽃만 보고 집에 돌아왔다. 뉴욕 식물원과 브루클린 식물원도 문을 닫았는데 아직 센트럴파크는 닫지 않아서 얼른 달려갔다.
매년 봄이면 꼭 구경하는 산레모 아파트 비치는 호수 근처 벚꽃이 무척 예뻐서 그리워 달려갔는데 이제 꽃 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니 아직 기다려야 할 시간. 매년 4월 중순에 벚꽃이 피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더 일찍 개화한 듯 보이는데 벚꽃 나무마다 달랐다. 플러싱은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뉴요커와 여행객이 사랑하는 센트럴파크. 뉴욕의 영혼이 숨 쉬는 아름다운 공원에서 조깅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고 구걸하는 홈리스도 만났다.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먹을 거 달라고 하는데 내 가방에는 책 한 권 담겼는데 줄 게 있어야지. 셰익스피어 동상 주위는 화사한 빛으로 가득하니 얼마나 좋을까. 낭만 가득한 마차가 공원에 안 보였다. 뉴욕에 살면서 마차를 안 본 것은 처음이다.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오는데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텅텅 비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20대 청년은 딘 쿤츠의 <오드 토마스 Odd Thomas>를 읽고 있었다. 공포 영화와 소설을 싫어하는 내가 그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코로나 19 때문이다. 미국 작가 딘 쿤츠 1981년에 쓴 소설『어둠의 눈(Eyes of Darkness)』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을 예측했다고. 미국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겠구나. 75세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서 나올까.
플러싱 시내버스는 버스 요금을 받지 않았다. 기사 근처 주위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체인으로 막아버려 교통 카드를 넣을 수가 없었다. 뉴욕에 살면서 처음 본 광경이다. 모두 코로나 19에 감염될까 조심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망자는 하룻밤 사이 743명이 늘었다고 하니 죽음과 삶이 얼마나 가까운지. 멀리서 소식을 들어도 가슴 아픈데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이나 동료가 아프거나 죽어가면 얼마나 힘들까. 하버드대학 총장님도 양성으로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지구촌 코로나 19 공포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 기도와 산책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마음은 끝없이 복잡하다. 미래는 어디로 열려 있을까. 악몽 같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현실이 마차 공포 영화와 공포 소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