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3일 월요일 봄비
우울한 하늘에서 슬픔이 뚝뚝 떨어진다. 지구촌의 눈물인가. 봄비가 내려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배따라기의 노래도 생각난다.
세상이 온통 캄캄하던 시절에도 꿈을 꾸었지. 인터넷도 없던 시절 가난한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 먹고도 행복했어. 세상이 얼마나 변해가고 있는가. 지금은 럭셔리 카페에서 럭셔리 커피를 마시는 문화.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추세인데 코로나 19로 갑자기 세상이 멈춰 카페 문도 닫아버렸지.
지상에 내리는 비로 화사한 꽃잎들은 떨어지고 화사한 빛을 잃어버리고 말겠다. 어제 월요일 일기 예보가 비가 내린다고 하니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 꽃구경을 했다. 찰나를 놓치면 영원히 볼 수 없기도 하니까.
코로나 19 확산으로 지구촌이 공포에 떠는데 며칠 전 미국 플로리다 해변에는 인파 북적하고 심지어 파티까지 했다고. 코로나 19가 뭐야 하면서 언론이 너무 과장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고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 파티를 즐기던 사람도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해변은 폐쇄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 19 덕분에 항공기 탑승료가 인하되었다.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까지 뉴욕에서 가장 저렴한 것은 100불이 채 안된다고. 서부 항공료가 저렴했다면 아들과 난 서부 캘리포니아에 몇 번 다녀올 수도 있었을 텐데 비싼 항공료와 숙박비는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 갖지 않은 자는 제약 속에 살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고 있다. 딸이 일하는 미국 명문대학 스탠퍼드 대학 교정도 구경하고 실리콘 밸리와 금문교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구경하면 좋을 텐데. 뉴욕 정착 초기 서부 여행했지만 아주 오래전이고 한인 여행사를 통해 여행했지만 서부가 광활하니 여행이 즐겁지 않고 고생길이다. 그러니까 개인 여행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부에서 일하는 딸이 뉴욕에 온 것도 기적 같다. 캘리포니아가 폐쇄 명령이 떨어질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하고 뉴욕에 왔는데 항공기가 취소되어 버려 가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변하고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화상채팅으로 일을 하고 있다. 정말 세상 많이 변했다. 대학 시절 미래학 책을 읽으면 화상 채팅에 대해 언급했지만 너무나 먼 우주 나라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변했다.
3월 8일 서머타임이 시작되고 갑자기 변한 스케줄에 몸이 미처 적응도 하지 않았는데 코로나 사건이 터지고 지구촌이 전쟁터로 변했는데 우리 집 난방도 잘 안되어 너무너무 춥게 지냈는데 월요일 아침 체감 온도가 영하 2도라 그런지 오랜만에 난방을 해준다. 속옷과 양말을 손빨래해서 하얀색 라디에이터에 말리고 있다. 집에 세탁기가 없는 뉴욕 사정. 한국에 비하면 얼마나 열악한지 몰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손세탁을 하니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던 조수미가 생각난다. 너무나 어려운 유학 시절 그녀도 손빨래를 했다는 글을 아주 오래전 책에서 읽었다. 한국에서도 조수미 공연을 봤는데 뉴욕에서는 인연이 없었는지 그녀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다.
아름다운 관광지 이탈리아는 코로나 19 사망자가 매일 쏟아져 죽음의 도시로 변했으니 참 암담하고 가슴 아프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곤돌라를 탔던 게 언제였던가. 식당에서 파스타 먹는데 일본 여행객이 여권을 분실해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 어린 아들은 상점에 들어가 예쁜 유리 제품을 만지다 부서져 어쩔 수 없이 배상을 해야만 했다. 베네치아 상점에서 파는 가면이 얼마나 예쁘던지 많이 많이 사고 싶은 마음 가득했지만 세계 여행 다니며 꼭 필요한 물품 외에 별로 구입한 적이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 줄 기념품과 멋진 사진이 담긴 엽서들을 제외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여행 시는 너무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이 하얀 겨울 외투를 할인 매장에서 구입했다.
이 복잡한 와중에 뉴욕시 레스토랑과 이스트 빌리지 공연장에서 기부금을 달라고 연락이 온다. 정말 뉴욕에서 기부금을 낼 정도로 부자라면 좋겠다. 물가 비싼 뉴욕시 레스토랑에 레스토랑 위크 아니면 방문하기도 어렵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다. 맨해튼은 외식 문화가 발달되고 가난한 사람도 마트에서 사 먹는 추세다. 외식하면 편리하고 좋지만 형편이 안 되니 집에서 먹는데 기부금 낼 돈이 있어야지. 비싼 렌트비와 하늘로 올라가는 물가가 공포인데.
이스트 빌리지에 특별한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료는 기부금을 내라고 하니 인터넷에서 무료하고 하니까 방문했다고 하니 아무 말이 없었지만 최소 맥주 등 음료를 주문하든지 식사를 하라고 하는데 식사보다는 음료수 가격이 더 저렴해 바로 자리를 옮겼지만 오로지 현금만 받는다고 하는데 내 지갑에는 10불짜리 지폐 대신 1불짜리 지폐 몇 장이 있어서 공연도 못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바로 그곳에서 내게 도와 달라고 소식이 오니 가슴 아프지. 뉴요커가 사랑하는 스트랜드 서점 앞에서 산타 할아버지 복장을 하고 구걸하는 할아버지가 날 보고 웃으며 도와 달라고 하니 "돈이 없어요"라고 하니 "No Money No Honey"라고 해서 웃었다.
웃자
웃자
웃자
더 자주 웃자.
아파트 지붕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로에서 차들이 달리는 소리도 들려오고. 아, 그리운 맨해튼! 지하철만 타면 맨해튼에 가는데 언제나 소중한 일상을 되찾을까.
내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나니 문득 내가 그동안 기록한 내용을 출판하고 싶은 생각이 강렬히 든다. 뉴욕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평범한 뉴요커의 소소한 행복을 기록한 글이 얼마나 특별해. 평생 남이 가진 거 부러워한 적도 없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세상을 꿈꾸며 달려왔다. 지금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가 누린 뉴욕 문화를 즐길 수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연구소 그만두고 실직자 되어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며 매일 기록했지. 절망 속에도 눈물과 슬픔을 먹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쁨과 행복을 찾아 헤맸지. 매일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 기록했는데 다시 생각하면 정말 소중한 기록이다. 출판소를 알아보자. 어딘가에 희망이 있겠지.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니. 뉴욕에서 단 하나도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지구촌 어디나 마찬가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