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1일 밤
꽃피는 아름다운 3월의 마지막 날 밤도 암울한 뉴스에 잠들기 어렵겠다.
불과 몇 주만에 뉴욕과 뉴욕시 상황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변하고 있고 사망자 숫자도 많다.
뉴욕주지사 쿠오모의 말처럼 고속 열차를 타고 달리는 코로나 19 전염병.
한국과 뉴욕을 비교하는 것에는 통계적으로 모순이 있지만 사망자 수치만 비교하면 뉴욕은 열악하다. 한국 사망자 숫자는 165명. 뉴욕은 1550명.
한국은 뉴욕보다 약 2달 먼저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뉴욕에 큰 병원들이 얼마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망자 숫자가 많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또,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위한 N95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하니 참 슬픈 일이다.
뉴욕 맨해튼은 세상의 부자들이 모여 살지만 뉴욕시에는 가난한 이민자들도 많이 살고 밀집된 도시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이니까 모두 잘 산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서울보다 훨씬 더 안 좋은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사는 유학생들도 많고 이민자들도 많다. 렌트비와 물가가 너무 비싸니까 그냥 적응하고 살 수밖에 없다.
3월 초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카네기 홀에서 요요마, 카바코스, 엠마누엘 엑스 3회(4일, 6일, 8일) 공연도 보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첼시 갤러리에서 아트 축제를 보고 (3월 6일)
뉴욕 아트 페어와 첼시 오픈 스튜디오 행사(3월 7일)
메트에서 오페라 두 편(3월 10일, 11일)을 볼 때까지.
3월 11일 링컨 센터 메트에서 오페라를 감상하고 있을 때 서부에 사는 딸이 다음날 아침에 뉴욕에 도착할 거란 소식을 들을 때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우린 몰랐다. 딸은 3월 12일 목요일 아침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해 집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하다 늦은 오후 메트 뮤지엄에 가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다운 타운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가서 플라멩코 댄스 축제를 보았다. 그날 보스턴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딸 친구가 하버드대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를 떠나야 한다고. 미국 상황이 아주 안 좋다는 소식을 들으니 댄스 축제를 차분히 볼 수도 없었다. 그날 댄스 축제도 취소되는지 염려가 되었는데 다행스럽게 볼 수 있었다. 4월 초까지 플라멩코 댄스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그 후로 아마 취소되었을 거 같은데 확인은 하지 않았다. 뉴욕시 하루하루 상황은 악화되어 가고...
3월 12일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500명 이상 모임을 금지한다고 기자 회견을 발표했다. 500명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것은 3월 13일 오후 5시부터 적용. 그러니까 사실상 맨해튼에서 문화 행사 금지 선언이 되었다. 메트와 카네기 홀과 뮤지컬 공연과 메트 뮤지엄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줄리아드 학교도 가장 먼저 공연을 취소한다고 연락이 왔고 그 후로 맨해튼 음대 공연도 취소. 그 후로 첼시 갤러리조차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악몽이 시작되었다. 내게는 보물 같은 맨해튼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뉴욕주시사의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코로나 19로 공연 행사가 줄줄이 취소된 것은 할 수 없지만 화장지와 쌀 등 기본 생필품 구입도 어려운 상황으로 변할지 몰랐다. 점점 물가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하필 형광등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형광등 한 개 구입하러 난리를 피우고 냉장고 안 작은 전구도 꺼져버리고 마치 원시 시대로 돌아간 듯 상황이 안 좋게 변하고.
3월 13일(금요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
갈수록 사태는 심각해졌다.
3월 13일 금요일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에 가서 난초 축제를 보았다. 코로나 19로 그날 마지막으로 오픈하게 된다고 하니 서둘렀다. 뉴욕시에서 열리는 봄 행사 가운데 사랑스러운 축제. 입장료가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 값 정도 되니 망설이게 된다. 그날은 딸이 티켓을 구입했다. 그날 아침에도 브루클린 식물원에 갔는데 내가 사랑하는 스타 매그놀리아 꽃은 피지도 않아서 두 자녀에게 아주 미안했다. 꽃은 시기를 놓치면 볼 수 없어서 서둘렀다. 하지만 그 후 브루클린 식물원이 문을 닫아버려서 올봄 마지막으로 식물원에 방문했다. 우리 집 플러싱에서 브루클린을 거쳐 맨해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브롱스까지 가고 그 후 플러싱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많이 움직였는지 몰라. 플러싱에서 브루클린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지하철을 타고 달린다. 그날 오래오래 지하철을 타고 달렸다.
서부에서 온 딸이 3월 14일 토요일 아침 일찍 화장지를 구입하러 간다고 하니 내가 놀라서 시내버스를 타고 브롱스에 다녀왔다. 이미 플러싱에서 화장지 구입이 불가능! 살다 살다 처음 본 화장지 사재기. 한인 택시를 타니까 중국인들이 사재기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어렵게 화장지를 구입해 집에 돌아왔다. 그날 시내버스 안 승객 한 분은 화장지와 파스타 면을 들고 계셨다.
3월 15일 맨해튼 워싱턴 하이츠에서 열리는 특별 전시회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를 보러 갔다. 매년 3월-4월 초사이 열리는 특별 전시회는 다행스럽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날 전시회를 관람하고 센트럴 파크에 가서 노란 산수유 꽃을 보고 콜럼버스 서클 타임 워너 빌딩 지하 홀 푸드에 갔는데 텅텅 비어 깜짝 놀랐다. 뉴욕에 살면서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아들이 다른 주에 사는 친구가 텅텅 빈 선반 사진을 찍어 보내니 웃었는데 남의 일이 아니었다. 뉴욕시 지하철은 텅텅 비어가기 시작. 우리 가족이 아시아인이라서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릴 대하는 눈치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센트럴파크에서 우리가 산책하는 동안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뉴욕 뉴욕"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뉴욕이 점점 공포의 도시로 변하니 참 슬픈 날이었다. 뉴욕 문화 예술이 얼마나 특별한지 모르고 뉴욕에 와서 점점 매력에 빠져 들어가면서 그 노래 분위기를 진하게 느꼈다. 한국에서는 그가 부른 "My Way"노래를 자주 듣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6일 월요일 코로나 바이러스 방침을 발표, 사람들이 모이는 숫자를 10명 이내로 축소한다고 발표하니 레스토랑과 바 모두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
3월 16일 약 670만 인구가 사는 서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San Francisco Bay Area: San Francisco, Santa Clara, San Mateo, Marin, Contra Costa, and Alameda counties)은 3주 동안 집에서만 지내라고 명이 떨어졌다. 병원에 가야 할 긴급한 상황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딸과 함께 지내는 룸 메이트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캘리포니아 역시 식품을 구입할 수 없다고.
3월 16일 월요일 두 자녀와 함께 맨해튼에 갔는데 점점 코로나 19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가고 고민하다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 갔는데 텅텅 비어 놀랐다. 평소에는 빈자리 구하기가 너무 어렵고 소란스러운데 여행객이 없으니 조용했다. 5번가 성 패트릭 성당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리고 나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잠시 들려 브라이언트 파크 옆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3월 17일 화요일 카네기 홀 샌프란시스코 공연 티켓을 미리 구입했는데 코로나 19로 공연이 취소되어버렸다. 저녁 무렵 딸 혼자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는데 쌀, 떡국용 떡, 돼지갈비, 만두 등이 떨어져 구입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분위기가 갈수록 험악해져 가니 슬프고 답답했지.
3월 18일 수요일 센트럴파크에 갔다. 서부처럼 뉴욕도 언제 외출 금지령이 떨어질지 몰라서 봄 구경하러 갔는데 조용했다. 몇몇 거리 음악가들 공연도 보고 스타 매그놀리아 꽃과 자목련 꽃과 노란 개나리 꽃을 보며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19일 오후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Gavin Newsom)이 꼭 필요한 식품점과 주유소 등을 제외하고 셧다운 시켰고 20일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가 서부처럼 뉴욕을 셧다운 시켰다.
점점 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갔다. 잠깐 동네 꽃구경하고 장 보러 가서 하늘처럼 올라간 물가에 눈물이 흘렀지. 달걀도 비싸면 어떻게 해. 100% 이상 올랐다.
3월 24일 화요일 센트럴파크에 갔다. 두 자녀는 엄마에게 공원에 가지 말라고 하니 고민 고민하다 마스크 착용하고 맨해튼에 갔는데 지하철도 텅텅 비어 가고 맨해튼에는 사람 그림자가 드물었다. 뉴욕의 심장 센트럴파크에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화사한 봄빛을 가슴에 담고 플라자 호텔 근처 벚꽃 구경하러 가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맨해튼에서 종일 머무는데. 일본 동경 올림픽 연기 소식도 들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뉴욕에 코로나 19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늘어만 간다. 믿어지지 않은 비극이 현실이라니 더 공포다.
3월 31일 미국 통계를 보면 세계 1위( 나라별 인구도 다르고 통계니 오차가 있겠다)
코로나 19 확진자 188,578 (+23,186)
사망자 3,890 (+708)
완치 7,251 (+1,707)
난 아직 혼동스럽다. 코로나 19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인터넷에 올려진 "완치"는 무슨 의미인지.
언제 지구촌 전염병이 사라질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2차 파동과 3차 파동도 염려한다고 하니 두렵다. 알 수 없는 세상 우리 가족의 존재는 바람처럼 가볍단 것을 다시 깨닫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코로나 19로 맨해튼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니 꽤 많은 시간을 다양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갈수록 머릿속은 복잡하고 혼동스럽다. 명쾌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서부에서 잠시 쉬러 뉴욕에 온 딸은 항공기가 취소되어 버리고 서부도 셧다운 시킨 바람에 뉴욕에서 화상 채팅으로 일하고 있다.
3월 나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변해 버려 슬프다. 아무것도 모르고 카네기 홀과 메트와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스케줄을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지구촌의 전염병. 매일 눈 뜨면 코로나 19 뉴스를 보게 된다. 언제쯤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갈까.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이 공포의 도시로 변하다니! 지하철만 타면 새로운 세상을 보며 환희를 느꼈는데 지금 뉴욕은 멈춰 버려 잠든 도시로 변했다. 나의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 매일 천국을 보곤 했지. 잠든 뉴욕은 언제 깨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