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일 금요일
삶이 전쟁 같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린 오월의 첫날 금요일 빨래를 해야 하는데 25센트 동전이 없어서 은행에 가야 하는데 늦추면 안 될 거 같아 서둘렀다. 아파트 지하 공동 세탁기를 이용하는데 반드시 25센트 동전을 사용해야 하니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25센트 동전은 반드시 거래 은행에서만 교환이 가능하니까 더 불편하다. 아침 일찍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에 찾아갔다.
뉴욕은 한국과 달라서 은행도 아주 가깝지 않다. 낡고 오래된 차도 팔아버려 주로 걷는다. 코로나 19 사태로 뉴욕도 셧다운 상태지만 은행은 삶에 꼭 필요한 곳이라 문을 연다고 하니 미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첫 번째 방문한 은행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냥 닫힌 것이 아니라 은행 지점을 폐쇄하려고 공사 중이었다. 은행 앞에서는 하루 벌어먹고사는 노동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코로나 후 큰 변화가 온다고 자주 듣곤 했지만 동네 은행 지점 문을 닫을 거라 미처 생각을 못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은행 지점을 찾아 걸었다. 우산을 썼지만 온몸과 신발은 비에 흠뻑 젖고 말았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 부근 은행에 찾아갔는데 거기도 ATM 기기 말고는 사용할 수 없도록 닫혀 있었다. 난 동전이 필요하니 반드시 직원을 만나야 한다.
정말 난감했다. 평소 맨해튼에 있는 은행 지점을 주로 이용하니 어디에 은행 지점이 있는 줄도 모른다. 힘이 빠졌다.
21세기에 사는데 생활에 꼭 필요한 세탁기를 집에서 사용할 수 없어서 세탁하려고 대소동을 피운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뉴욕은 빨래방을 이용한 사람들이 아주 많고 지금은 차가 없으니 빨래방을 이용할 수도 없다. 빨래방에 가면 동전 교환기가 있으니 지폐를 사용할 수 있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 떠오르게 하는 아파트 지하는 동전 교환기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은행에서 동전을 교환해야 한다.
세 번째 시도를 했다. 세 번째 방문한 은행 문은 열려 있어 다행이었지만 비 오는 날 오래오래 걸었지. 세 번째 방문한 은행에서 기다린 후 어렵게 동전을 찾았다. 1회 은행 방문 시 동전 교환도 내가 필요한 만큼 요구할 수 없고 은행이 정한 금액만큼 교환할 수 있다. 과거는 1일 최대 30불. 요즘은 50불까지 교환이 가능하나 세탁할 때 꽤 많은 동전이 필요하니 얼마 버티지 못한다.
세 번째 방문한 은행은 집에서 상당히 먼 곳이라 걸어서 집에 돌아오기는 무리라서 한인 택시를 불렀다. 비에 흠뻑 젖은 몸으로 오래오래 다시 비속을 걷는다는 것은 멍청하지. 택시 회사에서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아서 걱정했다. 잠시 후 직원과 통화하고 은행 위치를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10분 후 택시가 도착했다.
집에 오는 길 기사와 이야기를 했다. 100명 이상의 택시 기사 가운데 약 15%가 영업을 하고 대부분 집에서 지낸다는 말씀을 했다. 1시간에 한 번 컬을 받고 로컬 운행을 할 경우 상당히 어렵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도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특별한 경우 아니면 택시 요금이 비싸 이용하지 않은 편이다. 플러싱 내에서는 6불 + 팁을 준다.
기사는 오래전 샌프란시스코에 살다 뉴욕으로 옮겨오셨다고. 그분이 지금은 이제 겨우 코로나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고 앞으로 점점 더 심한 경제적 압박이 온다고. 또한 가을과 겨울철 감기와 겹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평소 공항 등 멀리 가는 손님들을 태우면 괜찮지만 로컬 손님만으로 생활비를 벌기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라고.
그렇지. 승객에게는 7불 정도 택시비도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기사 입장에서는 1시간에 7불을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말이다. 만일 교통 딱지라도 받으면 말 그대로 손해 막심. 회사에 내야 하는 돈, 자동차 보험료, 기름값, 그리고 노동비용.
택시 기사 말을 들으며 집에 도착했지만 가까스로 식사 준비하고 식사만 했다. 온몸이 쑤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도 몸도 멈춰버렸다. 물론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할 힘도 없었다. 조용히 쉬었다. 사월의 마지막 날 종일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오페라 볼 힘도 없어서 5월의 첫날 보려고 미뤘는데 오페라 볼 에너지가 없었다.
은행이 내게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맡기면 최소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점마다 문을 닫아 버려 얼마나 불편해. 차도 없고 걸어서 오래오래 가야 하니까. 코로나 사태로 아파트 주민이 불편을 당하니까 아파트 측에서는 주민을 위해 동전 교환기를 마련해 주면 얼마나 좋아. 아마도 사고 위험이 생길 거 같고 누가 지킬 수 없으니 자동 교환기도 안 둔 거 같다.
정말 눈물겹게 동전을 교환하면서 정착 초기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뉴욕에 와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뜨거운 태양 아래 무거운 세탁 가방을 들고 빨래방에 찾아서 오래오래 걷는 길은 마치 고행자 길 같다. 우리가 살던 집주인은 세탁기가 있었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세탁하면 차를 구입할 때까지 잠시 주인집 세탁기를 사용하면 좋을 거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얼마 전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올린 <고독한 뉴요커의 인생 2막> 글쓰기를 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데 진한 아픔이 밀려왔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낯선 땅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고통과 아픔의 시작이다. 삶은 현재 진행형. 막막하고 암울한 현실이지만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늦은 오후 토론토에 사는 분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은행이 닫혀 소동을 벌였다고 하니 토론토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카드로 충전을 해 세탁을 할 수 있다고. 세상에 그곳은 우주 나라처럼 신세계고 내가 사는 뉴욕은 21세기가 아니라 고인돌 시대 같아. 아... 뉴욕... 이 고생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서러움을 말로 할 수 없어... 돈 많은 자에게는 천국이지만 가난한 자에게는 지옥이다.
싱그러운 오월의 봄날 지옥에서 산책할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죽는 줄 알았다. 온몸이 종일 쑤셨다. 어깨와 뼈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래전 허드슨 강 석양 보려고 그랜드 센트럴 역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마비되어 죽는 줄 알았는데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마비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볼링 그린 역에 도착했는데 기적처럼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은행 소동으로 마비된 몸은 한 밤중이 되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후 어떤 세상이 올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루하루 버티기도 정말 힘들다.
코로나 언제 떠날까.
5월 1일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는 오페라는 다음날 아침에 보기 시작했다.
Friday, May 1
Viewers’ Choice: Verdi’s Aida
Starring Leontyne Price, Fiorenza Cossotto, James McCracken, and Simon Estes, conducted by James Levine. Transmitted live on January 3,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