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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06. 2020

신세계

어릴 적 책을 읽으며 외국 문화를 동경하곤 했지만 먼 훗날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며 살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운명의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갑자기 유학 준비를 해서 40대 중반 뉴욕에 왔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 J.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던가. 뉴욕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유학 준비보다 백만 배 더 큰 고통이었다. 단 한 명의 한국인 학생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한국에서 온 유학생은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고 인도에서 온 두 명의 유학생이 있었는데 악센트가 아주 강해 알아듣기 무척 힘들었다. 괴물 같은 외국어로 전공 서적 펴고 공부하며 수업과 시험 준비는 하는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극심했던가. 악센트와 톤에 따라 달라서 교수님 발음도 알아듣기 힘들고 교수님이  준 과제물을 해야 하는데 읽어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어려웠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사방이 절망의 벽이었다.


처음 받은 케이스 스터디는 플로리다 나사로 옮기는 신혼부부이야기였다. 연봉이 많아서 가슴 설레며 플로리다로 옮기면서 돈 많이 벌면 멋진 집도 사고 여행도 자주 가고 멋진 차도 살려고 했지만 매일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남편에게 쉼 없이 바가지를 긁는 아내. 나사 직원은 직장과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쓰러지고 뇌졸중으로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다. 


참 한국과 다른 미국 문화에 놀랐던 숙제였다. 한국에서는 술에 취해 새벽에 퇴근하는 남자들 이야기도 주변에서 듣고 또 듣곤 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이 우유 배달한 새벽시간에 귀가하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미국 문화는 달랐다. 


한국에서 유학 준비도 없이 왔으니 에세이 작성법도 모르고 숙제를 제출하니 교수님이 내게 이해는 했지만 에세이 작성법을 모르니 도움을 받아서 다시 제출하라고 빨간색 펜으로 적어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대학원 과정은 최소 B 학점을 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 컴퓨터 수업도 얼마나 힘들던지. 끔찍한 악몽이었다. 노인학 수업도 형벌에 가까웠다. 수업 준비 분량이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많고 숙제 하나 제출하려면 피를 마르고 준비를 했다. 토론 수업 역시 고통이었다. 미국 문화와 정치에 하얀 백지상태인 내게는 얼마나 도전이었던가. 수업 시간에  9.11 테러와 장애인과 함께 골프 경기를 할 때 장애인은 골프 카트를 이용해야 하는지 아닌지 등에 대해 토론했다. 당시 이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면서 미국 이민법도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두 자녀 데리고 함께 살면서 살림하며 매일 두 자녀 학교에 데려다주고 남은 시간은 오로지 전공서적에 파묻혀 지냈다. 새들의 노랫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리던 시절에 고독과 몸부림쳤다.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공부만 했다. 초록 잔디밭에 앉아서 친구랑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전화 한 통 할 시간도 없고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카페가 뭐냐. 심장이 멈출 거 같은 고통을 받으며 대학원 과정 마치는 것은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 같았다. 책과 일이 전부였다. 절망과 절망과 절망 속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위기 한가운데 뉴욕에서 두 자녀 교육하려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왔지만 새로운 세상은 그냥 저절로 열리지 않았다. 고통과 고통 속에서 쉬지 않고 자신과 싸우며 오랫동안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떠올랐다. 음악 시간에 들은 그 곡의 의미를 아주 늦게 깨우쳤다. 뉴욕은 내게 신세계였다. 뉴욕은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였다.




세계 미술의 메카 뉴욕에는 얼마나 많은 뮤지엄과 미술관과 갤러리가 있는가. 매일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예술의 도시. 맨해튼에 가면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아름다운 예술혼에 취한다. 


세계 최고 성악가들이 무대에 서는 오페라와 사랑에 빠졌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 본 오페라 디바 마리아 칼라스! 푸치니 <토스카> 오페라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다'처럼 살다  세상을 떠난 그녀가 뉴욕에서 탄생한 것도 늦게 늦게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뉴욕이 대학 시절 꿈꾸던 보물섬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매일 오페라와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는 예술의 혼이 숨 쉬는 도시. 매일 천재 학생들의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어서 좋고 저렴한 티켓이나 무료로 전설적인 음악가의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위기 한가운데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신세계는 영원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삶은 끝없는 시작이고 끝없는 도전이다. 


젊은이들이여, 멋진 세상을 꿈꾸고 도전을 하자. 태양 같은 열정으로 노력을 하면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이 열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열리겠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속담을 기억하자. 믿음의 밭을 갈고 희망의 씨를 뿌리자. 


빈 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사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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