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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Dec 01. 2017

뉴요커의 꿈



나의 첫사랑 바이올린에 대해 이야기를 하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난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때 바이올린에서 어떤 소리가 울린지도 몰랐다. 당시 피아노 학원도 흔하지 않았다. 5남매를 둔 아버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었고 어려운 형편이라 차마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레슨 받을 형편이 안 되었다. 


대학교에 진학했다. 어떤 동아리반에 들어갈지 고민했다. 연극반도 사진반도 관현악 반도 클래식 기타 반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클래식 기타 반에서 고등학교 친구 오빠를 만났다. 대학 시절 몇 개의 동아리반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하니 클래식 기타 반 활동 만으로 힘들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빠는 클래식 기타반에 들어오라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사랑에 빠진 바이올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관현악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으나 난 클래식 기타 반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피아노 레슨을 오랫동안 받은 친구들도 함께 활동했다.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 소리에 행복했고 대학 시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즐겨 들었다.



학기 중 정말 바빴다. 학교에만 가면 클래식 기타 동아리반이 있는 학생회관으로 먼저 달려갔다. 그때 합창반과 함께 룸을 사용했다. 아침 일찍부터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합창반 남학생도 있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정기 연주회를 했고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는 수련회에 갔다. 함께 동아리반에서 활동하면서 행복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바이올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국립 사범대를 졸업하고 발령이 나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악기점으로 달려가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했다. 사랑하는 바이올린을 내 가슴에 품고 정말 행복했다. 눈물이 흐를 거 같았다. 변하지 않은 나의 마음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은 어릴 적 꿈을 이루게 했다. 내가 바이올린을 배워서 프로 음악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다. 


그 후 결혼을 하고 큰 아이 임신 9개월째 난 더 이상 레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때 바이올린 선생님은 출산 후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그때 다시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될 거 같다고 하셨다. 그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두 자녀를 출산하게 되었다. 어릴 적 배우고 싶은 악기를 하지 못한 미련이 남아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방과 후로 바이올린 레슨을 시켰다. 한두 번 레슨을 하신 바이올린 선생님은 딸이 재능이 많아 개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셨고 그 후 레슨을 옮겼다. 어린 아들은 누나가 바이올린을 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성화를 부려 어쩔 수 없이 함께 레슨을 시켰다. 얼마 동안 레슨을 받다 바이올린 대회에 가서 상을 받게 되고 바이올린 선생님은 두 자녀가 재능이 많다고 하셨다. 그래서 특별 레슨을 받게 되었다.


난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바이올린을 배워 두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우린 매일 함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어느 날 운명이 불러 낯선 나라 뉴욕에 오게 되었다. 어릴 적 유학을 꿈꾸었지만 먼 훗날 뉴욕에 와서 살게 되리라 단 한 번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40대 중반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와서 공부한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어렵게 힘든 일을 해냈지만 입시생인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사는 것은 말 그대로 무한 도전이었다. 


어릴 적 보통 가정에서 태어난 환경을 불평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발령이 나서 첫 급여를 받은 후였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으로 받은 돈으로 성음 레코드사에서 나온 음악 테이프 25개 정도를 구입하니 친정 엄마가 깜짝 놀라셨다. 옷과 화장품도 사고 그러지 왜 음악 테이프만 샀냐고.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해 돈을 벌면 서점에 달려가 책 몇 권 구입하고 레코드점에 가서 음반을 구입하면서 행복했다. 


교사 발령이 나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때도 친정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은 날 이해하지 못했다. 왜 늦은 나이에 레슨을 받은 지. 남에게 보이려고 그런 거 아니란 눈치도 보였다. 난 내가 음악을 좋아해서 레슨을 받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지 않는다.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은 특별하다. 음악을 사랑하고 자주 공연을 보러 간다.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지내면서 아들이 맨해튼 예비 음악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일반인에게 오케스트라 공연을 무료로 오픈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차츰 맨해튼에서 많은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내게 뉴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뉴욕에 와서 필요한 정보는 늘 스스로 구했다. 생은 아무도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 환경을 탓한 적 없고 어느 날 정신 병자로 소문이 나서 하얀 병동에 영원히 갇힐 뻔했지만 난 누굴 원망하지 않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타고날 때부터 가정환경과 재능이 다르다. 그런다고 환경을 불평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아름답고 멋진 삶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늘 깨어있는 삶을 사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고 음악 공연을 보고 자주 전시회를 본다. 아름다운 삶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완벽한 세상은 없지만 스스로 조금씩 노력하면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이 있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삶이 된다.


어제는 줄리어드 학교에 가서 콘서트를 봤다. 대학시절 내가 사랑하던 샤를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의 초대"를 소프라노 가수가 불렀다. 수 십 년 전 사랑하던 시를 들을 줄 몰랐다. 행복이 밀려왔다.




<여행으로의 초대>


샤를
 보들레르


아이야
누이야,
꿈꾸어보렴
거기
 가서 함께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물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러운
 그대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
진귀한
 꽃들,
향긋한 냄새,
용연향의
 어렴풋한 냄새가 어울리고,
호화로운
 천장,
깊은
 거울,
동양의
 찬란함,
모든
 것이 거기선
넋에
 은밀히
정다운 제
 고장  들려주리.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그리고 쾌락뿐.

보라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
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저무는 태양은
 입힌다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세상은
 잠든다.
뜨거운
  속에서.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그리고 쾌락뿐.


*****
'악의 우울과 이상 
문학과
 지성사 윤영애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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