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6일 토요일
무더운 여름날 습도가 너무 높아 죽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유리창문으로 소나기가 들어오는데 홍수가 난 줄 알았어. 놀라서 급히 걸레로 물기를 닦았다. 그런데 금세 그쳤다. 오랜만에 내린 소나기였어.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무렵에는 휴양지 같아 초록 바다가 눈부시게 예쁜 사이판도 떠올랐어. 바닷가 바람 부는 곳을 거닐며 혼자 산책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깊은 생각에 잠겼던 때였다. 법정 재판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려 두 자녀와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초록 바다가 춤추는 사이판 휴양지에 가서 며칠 쉬었다. 사이판 공항에서는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아주 싸더라. 그래서 목걸이 한 개를 샀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없다.
뒤돌아 보면 세상과 남자를 모든 죄인데 그게 내 운명의 형벌일 줄 몰랐다.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두 자녀 양육에만 힘썼다. 정말이지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인생 위기 한가운데서 뉴욕으로 갈 거란 중대한 결정을 내렸지.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결국 뉴욕에 오고 말았지만 새로운 세상은 그냥 저절로 열리지 않았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오래도록 고독한 길을 걸어왔는데 생이 가시밭길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지. 황무지에서 개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더냐. 태어난 나라에서도 혼자 생존하기 힘들지. 그런데 부모와 형제와 친구도 없는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태평양 같은 눈물을 쏟아야 하나의 문이 열려. 그러나 금세 닫혀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 대서양 같은 눈물을 흘러야 하지. 묘지로 가는 길도 눈물이더라.
초저녁 무렵 딸과 함께 동네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 8시부터 시작하니 넉넉지 않아서 서둘렀는데 초록 나무 우거진 숲 속을 지나자 파랑새 한 마리가 보여 기분이 좋았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던 파랑새가 실제 존재한다는 것도 늦게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서 빨강 새는 자주 보나 파랑새는 어쩌다 보게 된다. 귀하니까 더 기분이 좋아진다. 파랑새가 초록 나무 위로 날아간 것을 보고 우린 호수로 길을 재촉했다. 이웃집 정원에서 휴식하던 중년 남자는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수 천 송이 장미꽃 향기 맡으며 호수에 도착하니 우리를 환영하는 흑조 한 마리를 보았다. 성질 사나운 흑조도 어쩌다 호수에 찾아오니 반갑다. 호수에 비친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들 보며 잠시 숨을 고르다 집으로 돌아왔다.
밤 9시가 지나가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8시가 통행금지시간인데 누가 밤중에 폭죽놀이를 하는지 궁금했지. 캄캄한 밤에 화려한 수를 놓고 사라지는 불꽃놀이를 보면서 문득 내 인생의 축제는 언제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거였나 아니면 현재인가 아니면 미래일까. 오래오래 전 내게 당신의 운명이 바뀐다고 하던데 난 어디만큼 가고 있나. 아직도 삶은 안갯속 같다. 어디로 길이 열려있을까.
아침 일찍 천국을 만나러 갔다. 새들의 합창 들으며 이웃집 정원에 핀 장미와 작약꽃 향기 맡는 시간은 축복이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오고 인적도 드문 이른 아침 혼자서 골목길을 돌고 돌며 꽃을 찾아다닌다. 어떠다 내 신세가 벌이 되어버렸네. 꽃 향기 찾으러 이 꽃 저 꽃 날아디는 꿀벌처럼 이집저집 찾아다녀.
6월 초 이웃집 할아버지 정원에 초대받아 백장미 꽃 사진 찍었는데 며칠 사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연상되었지. 수년 전 내 생일날 그 영화를 보러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갔다. 영화 상영료가 비싸 특별 할인하는 티켓 구입하러 제리코에 갔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때는 소형차라도 있어서 가능했다. 개츠비가 사랑하는 데이지는 화려한 상류층의 전형적인 부인으로 묘사되는데 왜 순수한 이미지의 데이지 꽃 이름을 화려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속물 여자 주인공 이름으로 지었을까 궁금하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사는 브런치 작가님 포스팅에서 양귀비꽃 들판을 보며 그리웠는데 내 그리움을 하늘도 알아버렸나. 아침 산책하다 플러싱에서 처음으로 양귀비꽃을 보고 반가웠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양귀비꽃을 볼 텐데 집에 갇혀 지내니 답답해. 사랑하는 웨이브 힐에 가도 예쁜 양귀비꽃 보고, 브루클린 식물원에 가도 양귀비꽃 보고,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가도 양귀비꽃 보고, 맨해튼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에도 양귀비꽃 보는데 잠들어 버린 뉴욕. 잠에서 깨어나라고 기도하는데 신도 잠들어 버렸나.
저녁 무렵 오페라 상영시간 오페라를 감상하는데 피곤해 잠이 스스로 오려고 하자 중단했다. 매일 밤 3시간 정도 걸리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복잡한 일이 없다면 즐겁게 오페라를 감상할 텐데 마음속은 복잡하지. 우리네 삶이 복잡하니까. 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더냐. 뒤돌아 보면 한숨짓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어.
어느새 6월의 첫 주가 막이 내렸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매년 이맘때 즈음 장미 축제도 열리고 롱아일랜드에서는 경마축제도 열린다. 차가 없으니 수차례 환승하고 찾아가지만 경마 축제도 볼만 한데 이게 뭐람. 아, 그렇구나. 6월이 되면 끝도 없는 축제가 열리는데 코로나 위기로 뉴욕이 잠들어버려 얼마나 슬픈지 몰라. 21세기 암흑 세상이 찾아오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비싼 렌트비 내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구나. 너무너무 슬프고 답답하니 이웃집 정원에서 천국을 찾는다. 맨해튼에 간지 정말로 오래되어 가는데 카네기 홀과 줄리아드 학교에서 만난 지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Saturday, June 6
Verdi’s Otello
Starring Sonya Yoncheva, Aleksandrs Antonenko, and Željko Lučić, conducted by Yannick Nézet-Séguin. From October 1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