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코로나_천상의 날씨

by 김지수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IMG_9161.jpg?type=w966 황금 연못에 핀 수련꽃



천상의 날씨였다. 잔잔한 바람이 불고 눈부신 햇살 비추는 아름다운 여름날. 눈 뜨자마자 산책하러 갔는데 나도 모르게 혼자서 황금 연못에 다녀오고 말았다. 집에서 왕복 7마일 거리라 꽤 멀다. 아들과 벗 삼아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혼자서 가는 것은 아마도 처음 같다.


나무 그늘 아래로 걸어가는데 연인들이 커피를 마시며 걸어가는 것을 보니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혼났다. 산책하러 가면 아이폰만 들고 가니 지갑도 없어서 커피를 사 먹을 수도 없는데 커피 향기가 날 유혹 했지만 꾹 참고 걸었어. 길을 계속 걷는데 공사장 인부도 역시 커피를 마시고 있어 유혹에 빠지고 싶은데 돈도 없어서 슬펐어. 커피값 정도는 가지고 다녀도 되는데...



IMG_9086.jpg?type=w966 그루터기에 앉으면 편하고 좋아.



그러니까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맨해튼에 갔는데 그날도 지갑이 없었나. 커피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 흑인 직원에게 1달러만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 오후 3-6시 사이 작은 사이즈 커피 한 잔이 1불이었다(지금 사라졌다). 1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흑인이 지갑을 꺼내는데 지폐가 얼마나 많던지 놀랐어. 1불이 아니고 10불을 빌려 준거야. 그녀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니 그냥 빌려주었다. 물론 나중에 갚았어. 맨해튼에 고급 커피숍도 무척 많은데 늘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니 난 늘 저렴한 커피를 먹는 편이었지. 그래서 1불 커피는 매력이 넘쳤어. 그때는 자주자주 도서관에 이벤트 보러 갔는데 점점 게을러져서 자주 안 가게 되었다. 맨해튼이 날 유혹하는 곳이 어디 한 두 곳 이어야지. 너무너무 많아서 우선순위로 정하다 보면 도서관에 안 가게 되었다. 링컨 센터 도서관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과 이벤트도 정말 좋다.


황금 연못에 가려면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아마도 날 그곳에 데려간 것은 천상의 날씨 같아. 날씨가 좋으면 몸도 가볍고 흥겹고 기분이 좋아진다. 오래전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발런티어 할 때 만난 노인들도 날씨가 좋으면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날씨가 짓궂으면 괴팍해졌다. 참 그리운 양로원이야. 내게 발런티어 해도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빨간색 옷을 자주 입은 할머니, 은퇴한 변호사, 은퇴한 정신과 전문의, 은퇴한 검사, 은퇴한 교장 선생님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났지. 매일 양로원에 엄마 뵈러 온다는 아드님도 만났어. 정말 착한 아드님이지. 롱아일랜드에서 랍스터 잡아서 레스토랑에 판다는 그분은 어머니 양로원 체류 비용이 너무 비싸서 배 3척을 팔았다고 했던가. 어머니가 사설 보험이 있어도 커버가 다 안 되니 추가 비용이 든다고 했다. 정말 건강이 축복이야. 차만 있다면 가끔 방문해도 될 텐데 대중교통 이용하기는 너무나 불편하다. 알츠하이머와 치매 전문 양로원의 경우 대개 5년 정도면 하늘나라로 떠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아마도 하늘나라에 계신 분들이 많겠다. 아들과 나의 소중한 추억이 쌓인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양로원도 그립다. 양로원에서 만난 분들에 대해 간단히 올린 글을 소개한다.




GUQyAemRCZ5GJ_bsCipNDGwaskc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석양이 물들 때 아름다워.



양로원 근처에 오이스터베이 바닷가에도 가끔씩 산책하러 갔지. 석양이 물들 때 정말 아름다운 곳. 황혼이 물들 무렵 요트 타고 천상의 휴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림 같다. 또 석양이 물들 무렵 늘 그곳을 찾는다는 작가도 만났다.


연못에 가는 길 새들의 합창도 듣고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도 맡았지. 케네디 파크를 지나는데 운동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았다. 코로나 봉쇄령이 차츰 해제가 되나. 단체로 운동하는 것을 보니 놀랐어. 황금 연못에 도착했는데 하얀 백조는 만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 가득. 수년 전 자주자주 만났던 백조 가족은 어디로 떠났을까.


IMG_9807.JPG?type=w1 백조가 많이 사는 브루클린 Sheepshead Bay(2014)



백조가 많이 사는 브루클린 Sheepshead Bay에도 올해 자주 방문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머나먼 님이 되어버렸어. 오래오래 전에도 혼자서 브루클린 돌아다니다 하얀 백조 떼 보고 행복했지. 세상에 태어나 그리 많은 백조를 본 것은 처음이었어.


황금연못에 핀 수련꽃만 쳐다보며 놀다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먼 길을 다녀왔지만 집에 도착하니 서서히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딸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도 보고 호수에 비친 초록 나무들과 하늘과 하얀 구름도 보았어. 그림처럼 예쁜 호수. 우리 가족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아가는 호수다.


천상의 날씨라서 손빨래를 했다.


종일 21,187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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