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8일 목요일
종일 무얼 했냐고?
특별한 걸 하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단조롭다. 난 복잡한 거 싫어한다. 삶 자체가 복잡하니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 하늘의 뜻이 어딘가에 있나 봐. 코로나 위기로 맨해튼에서 공연과 전시회를 볼 수 없으니 대신 플러싱에서 숨어있는 아름다운 보물을 찾고 있다.
이른 아침 베이글을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오고 종일 집에서 파랑새와 빨강 새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른 아침 호수에 가서 거북이도 보고 저녁 무렵 시든 장미꽃과 백합꽃과 라일락꽃 향기를 맡았지. 파랑새와 빨강 새를 자주 만나니 동화 속 나라 같아. 우리 가족이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 J.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첫인상은 뉴욕에 숲과 나무가 많다는 거. 하늘에서 지상을 보며 깜짝 놀랐다.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시드니, 로마, 동경 등 수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뉴욕처럼 숲과 나무가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숲과 나무가 많으니까 새들이 많이 산다. 그래서 매일 종일 새들의 노랫소리 듣는다. 요즘은 빨강 새가 날 깨우러 새벽에 온다. 그래서 웃는다.
평일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플러싱 주택가 화단에서 붉은색 뱀딸기를 많이 봐서 신기했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시골에서 몇 번 먹어본 오디 열매를 처음으로 보고 놀랐다. 뉴욕에 뽕나무가 있다는 것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코로나 덕분인가. 뉴욕에 봉쇄령이 내려 맨해튼에 가지 않으니까 플러싱만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찾았다. 도로 바닥이 얼룩져 있어서 고개 들어보니 오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세상에 뉴욕에서 보니 얼마나 반가워. 뉴욕 플러싱 주택가는 정원을 잘 가꾼 곳이 많아서 매일 아침 난 꿀벌처럼 이집저집 꽃향기 맡으러 다니는데 체리 나무와 앵두나무와 살구나무와 감나무 등도 가끔 본다. 이웃집 정원에 주렁주렁 열린 과일 열매가 내 입으로 들어오지 않으니 그림의 떡이지만 그래도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나무를 보면 내 마음이 흐뭇해진다.
시든 장미꽃을 보며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장미꽃은 향기도 좋은데 시든 장미도 아름다워 감탄했다. 대학 시절 꿈을 꾸었지. 세계 여행도 하고 책도 출판하고 전시회도 열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 평생 꿈을 꾸고 사는데 내 꿈은 이뤄질까.
코로나 위기로 코로나 전의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하니 그동안 매일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기록한 나의 일기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딱 그 순간에만 열리는 공연과 축제를 보러 매일 여기저기 움직이며 기록했다. 낡고 오래된 가방 하나에 책 한 두권 담고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 사 먹으며 방랑자처럼 자유롭게 떠돌아다녔지. 맨해튼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얼마나 오랫동안 헤매었던가. 누가 뉴욕의 아름다움에 말해줬더라면 그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뉴욕에 올 때도 아무것도 모르고 왔고 뉴요커들이 대개 바쁜 리듬으로 살다 보니 다른 사람 일에 관심도 없고 문화생활 역시 개인 취향이 각각 다르다. 음악을 좋아한 사람은 공연을 주로 보지만 음악 미술 댄스 등 다방면에 관심 많은 분은 만나보지 못했다. 카네기 홀에서 만나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도 내 삶에 대해 들으면 깜짝 놀랐다. 정말 에너지 많다고. 중국 상하이에서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뉴욕에 이민 온 지 30년이 지났다나. 지금은 은퇴하고 노후 생활을 즐기는데 오페라를 무척 사랑하고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니 우린 자주 카네기 홀에서 만났다.
내가 찾은 보물은 돈이 아니라 마음과 열정으로 찾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도시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맨해튼은 돈을 물거품처럼 쓰기 쉽지만 난 커피 한 잔 먹고 뉴욕의 보물을 캐러 다녔다. 마음의 보물은 아무도 캐지 않더라. 마음의 보물이 얼마나 중요한 세상인가. 즉석 메모라서 수정할 부분도 있을 테지만 상당히 중요한 뉴욕 문화 보고서가 되겠다. 좋은 출판사와 인연이 되면 좋겠는데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