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새벽녘 잠이 깨어 호수에 산책하러 가는데 마법에 홀리고 말았다. 여명의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숨이 멎는 줄 알았어. 한 마리 새는 마법의 하늘로 날아가더라. 해는 부지런도 해라. 어제저녁 무렵 석양을 봤는데 어느새 일어나 곱고 예쁜 천사의 옷을 입고 날 환영했다. 이른 아침 시간 너무나 조용해 좋았지. 초록 나무 울창한 숲에서는 새벽 교향곡이 울려 퍼지더라. 여명의 빛이 그리 아름다울 수가 없어 교향곡 같은데 혼자 보니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지. 천천히 호수로 걸어갔는데 엊그제 본 새끼 많은 기러기 가족도 만나 인사를 했어. 무척 부지런한 거북이 몇 마리도 보았지. 새벽 5시가 지난 시각 빨리도 일어난 거북이들. 동작이 느리다고 알려졌는데 그러지도 않더라.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재빨리 물속으로 사라진다. 초록 나무에 올라가는 청설모도 보고 새벽 인사를 했지.
지난 6월 초 날 초대했던 이웃집 할아버지 댁에 다시 방문했는데 어느새 꽃이 지고 말아 섭섭했다. 장미꽃들이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말없이 안녕하고 사라졌어. 할아버지 주차장에는 테네시 주에서 온 하얀색 SUV 차가 있더라. 어쩌면 자제분들이 그곳에 산지도 몰라.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데 언제 가 보고 싶은 테네시 주의 수도는 멤피스라고. 테네시가 블루스, 컨트리, 로큰롤 등 음악으로 명성 높은 곳이다. <사랑해주세요> 노래로 잘 알려진 엘비스 프레슬리가 테네시주 출신이다.
아주 오래전 아들과 함께 <멤피스> 뮤지컬을 봤는데 정말 좋아 기억에 남는다. 무더운 여름날 뮤지컬 음악이 참 좋아. 아들은 사실 오페라보다 뮤지컬이 더 좋다고 한다.
오페라는 독일어, 이탈리어어, 불어 등으로 부르니 번역을 봐야 하고 상당한 에너지가 드니 불편한 점도 있다. 물론 종합 예술이라 오케스트라 음악도 좋고 무대 장식도 멋지고 합창도 너무나 좋고 오페라 아리아도 좋고 의상도 멋지면 황홀하지.
수년 전에는 아들과 함께 가끔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그때는 오페라 러시 티켓을 판 줄도 몰랐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으니까 몰랐지. 뮤지컬 역시 저렴한 러시 티켓을 판지도 늦게 늦게 알았어.
대학 시절 즐겨 들었던 노래 < Don't Cry For Me Argentina>가 흐르는 에비타가 꼭 보고 싶었는데 저렴한 티켓을 구할 수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에비타> 뮤지컬 티켓을 100불인가 주고 사서 아들과 함께 보러 갔는데 그날 공연은 형편없었다. 비싼 가격과 반비례했던 뮤지컬이었지.
온라인으로 뮤지컬 티켓을 샀는데 비 오는 날 타임 스퀘어 근처 레스토랑으로 찾으러 오라고 하니 아들과 함께 낯선 곳을 어렵게 찾아 도착했는데(그때는 지리를 잘 모르니 헤맸지) 난 분명 100불 이상을 줬는데 티켓에는 60불인가 적혀 있어서 놀랐다.
그 후로 나중에 러시 티켓을 판매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페라 러시 티켓은 25불. 뮤지컬은 대개 40불에서 시작하나 아침 일찍 극장 앞에 도착해서 기다려야 하고 아무리 일찍 도착해도 그날 러시 티켓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운이 좋으면 내 손에 들어오지만 아침 6시에 도착해 4시간 이상 기다려도 운이 없으면 돌아서기도 하지. 러시 티켓 한 장 구하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 그래서 나중에는 뮤지컬보다는 오페라 러시 티켓이 훨씬 더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저절로 오페라를 더 자주 보게 되었다.
뉴욕은 공연예술 천국이지. 무더운 여름날은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 무료 공연이 없으니까 타임 스퀘어 극장가에 가서 저렴한 뮤지컬 티켓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외국에서 온 뮤지컬 전공하는 학생들도 만났는데 꽤 오래전 일이다. 세월은 날개를 달고 날고 있어. 어디서 내 삶은 멈출까. 가끔 생각하는데 아직도 몰라. 미래가 어디로 흐른 지 누가 알겠니.
요즘은 코로나 위기로 뮤지컬 공연도 볼 수 없으니까 팬들은 얼마나 섭섭할까. 뉴욕 최대의 수입원 가운데 하나가 뮤지컬인데. 하긴 여행객도 없어서 손실이 막대하다고. 어디 여행사뿐이겠는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뮤지컬 공연이 그립구나. 좋은 뮤지컬 보면 천국이 따로 없어. 온몸에 천국의 향기가 흐른다. 잠시 마법에 걸려버리지. 그래서 팬들은 자주 뮤지컬을 보러 가지. 그러다 중독이 된다.
백합꽃과 장미꽃과 백일홍 꽃 향기 맡으며 산책하다 집에 돌아와서 쉬었는데 딸이 모닝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니 함께 동네 베이글 전문숍에 갔다. 베이글 전문점이라 맛이 아주 좋은데 가격은 아주 저렴하지는 않더라. 1개 1.35불. 딸이 사 준 아이스커피 마시며 가게 앞에 마련된 야외용 의자에 앉아 투명한 블루빛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한 아침을 보냈지. 넉넉하고 여유로운 아침이 좋아. 아이스커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온갖 꽃향기가 우릴 환영했어. 초등학교 앞 도로에 색분필로 그려진 그림도 보고 웃었지.
목요일 아침 천국 같은 여명의 빛도 보고 백합꽃과 장미꽃 향기 맡으며 산책하고 딸과 함께 블루빛 하늘 보며 아이스커피 마시니 축복 가득했는데 집에 돌아와 몬산토 잡초 제거제가 사람 죽인다는 CNN 뉴스를 읽으니 지옥이었어. 천국과 지옥을 동시 만난 날이었어.
낯선 곳을 기차나 버스 타고 여행하게 될 날이 올까.
뉴욕의 여름 태양은 활활 불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강렬한 태양빛에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