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6일 금요일
사랑하는 보물들이 서서히 빛을 바래가는 유월 말. 곧 꽃들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와 안타까움 가득해. 변함없이 천국을 만나러 떠났지. 장미꽃, 백합꽃과 수국 꽃 향기 맡으며 초록빛 포도 넝쿨도 보고 이웃집 뜰에 떨어진 한국일보 신문을 보고 교포가 사나 보다 짐작을 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지난 삶을 돌아보며 글쓰기 하는데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 십 년을 함께 보냈으니 쉽게 상처가 아물지는 않겠지. 수 십 년 힘들게 뒷바라지해 그 자리 만들고 멀리 떠난다고 하니 주위 친구들과 지인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지. 정말 우리가 헤어질 거라고 아무도 몰랐어. 죽도록 고생해서 만든 자리 이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는데 왜 떠나냐고. 다 그렇게 사니 그냥 살라고. 세상도 모르고 남자도 모르고 사람들 마음도 모르는 난 바보 멍청이. 하마터면 하얀 병동에 갇혀 평생 울음바다로 지냈는지도 모르지. 극적으로 탈출을 했다. 아, 어렵게 미국 비자도 받았어. 기어코 뉴욕에 오고 말았어.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하게 왔어. 모르니까 용감했나. 정말 겁이 없었어. 부부 함께 이민 와도 죽음 같다고 하는데 싱글맘 혼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왔으니까. 평생 쉬지 않고 달려가는 게 내 운명인지도 모르지. 내가 침묵을 지키면 모두 천국에서 산다고 하고 침묵을 깨면 모두 놀라. 내 삶은 보통사람과 너무나 달라. 다 하늘이 준 운명이지. 사랑하자 내 운명! 슬픈 내 운명 내가 사랑해야지.
저녁 시간에 딸과 함께 동네 노천카페에 가서 아이스 라테를 사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파란 하늘도 보고 초록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보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블랙 고양이도 보았어.
그리고 오페라도 보았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황금빛 목소리가 내 가슴을 장밋빛으로 물들게 했어. 내가 좀 더 빨리 뉴욕에 왔더라면 빵집 아들 파바로티도 봤을 텐데 늦게 왔어.
뉴욕에 오게 될 거라 누가 알았을까.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뉴욕에 운명과 시련과 고난이 날 데리고 왔다. 두 자녀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니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님은 우리 가족에게 빈으로 오라고 권했지만 독일어 권이라 줄리아드 학교가 있는 뉴욕에 오게 되었지.
1991년 제작된 도니제티 오페라인데 그 무렵 난 오페라가 뭔지도 몰랐어. 한국에서는 오페라 볼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함께 근무하던 음악 선생님과 친했는데 그분이 성악 전공을 하셨는데 매주 주말 대학원 교수님에게 성악 레슨 받으러 가니 상당히 놀랐다. 왜냐면 교사 급여에 비하면 레슨비가 정말 비싸서. 그럼에도 꼬박꼬박 레슨을 받으러 가셨다. 마음도 예쁘고 미모도 뛰어난 분인데 운명인지 연하의 남자를 만나 사랑했는데 어느 날 자살하고 말아 정말 슬펐지. 그분 자취방에 초대받아 커피와 과일 먹으며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나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하의 남자랑 결혼했다고.
그때도 내 삶은 힘들기만 했지. 하루 왕복 4시간 이상 걸려서 통근하면서 교직 생활을 했으니까. 종일 수업하고 보충수업까지 하고 시외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면 쉬지 않고 신성한 의무도 다 했으니까. 내가 아이 아빠 전방에서 군 복무할 때 휴직계 내고 학교를 비우니 음악 선생님은 혹시나 내가 다시 교직에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그때는 그렇게 될지 몰랐는데 이상하게 궤도를 빗나가 그렇게 되어버렸어. 내 삶의 온전한 향기를 원했으니까 사회생활하려고 했는데 자녀 양육 문제가 우선순위였다. 어쩌면 아직도 그분은 교직 생활할 텐데 소식이 끊긴 지 정말 오래되었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성악이 그리 아름답다는 것은 뉴욕에 와서 알았다. 맨해튼 음대와 줄리아드 음대에서 학생들 공연 보면서 서서히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을 알게 되니 가끔씩 오페라 보러 가곤 했지. 카네기 홀에서 만난 지인들도 대개 오페라를 사랑하니 우린 만나면 즐거운 대화를 나눴지. 뉴요커들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음악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어. 그런데 코로나로 카네기 홀이 잠들어 버려 너무 슬프기만 하다.
Friday, June 26
Donizetti’s L’Elisir d’Amore
Starring Kathleen Battle, Luciano Pavarotti, Juan Pons, and Enzo Dara, conducted by James Levine. From November 16,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