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 시장 세상 떠난 날
2020년 7월 9일 목요일
날마다 폭염. 이른 아침 백합꽃 향기 가득한 정원에 도착해 정신을 잃을 뻔했다. 백합꽃이 그리 많이 핀 정원은 내 평생 처음 봤다. 서서히 꽃이 지는 칠월에 활짝 핀 백합꽃이 날 위로를 했다. 색이 곱고 예쁜 백일홍 꽃도 보고, 우아하고 예쁜 옥잠화 꽃도 보고, 오디 열매를 따 먹는 청설모와도 눈을 마주치고, 호수에서 황소개구리와도 눈을 마주치고, 호수에서 비행기 속도로 나는 고추잠자리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 시간 플러싱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서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갔다.
내가 사는 곳은 플러싱 지하철역과 떨어져 있으니 맨해튼에 가려면 시내버스 타고 지하철역에 가고 다시 7호선을 타야 하니 불편한 점이 있지만 지하철역 근처와 내가 사는 주택가 모습은 전혀 다르다. 아들은 우리 가족이 플러싱으로 이사한다고 하니 더럽고 악취 냄새 가득한 곳이라서 싫다고 했는데 아주 힘들게 구한 아파트 위치는 꽤나 좋다. 공원과 호수도 가깝고 주위에 마트도 있으니 편리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주택가다. 플러싱은 가난한 동네니까 더럽고 악취 나고 추한 동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는데 플러싱도 지역별로 다르다. 뉴욕시 아파트 구하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반. 길거리에서 빵과 커피를 사 먹는 사람도 보고 지하철역 부근에서 파는 음식을 사서 먹고 지하철역으로 부산하게 떠나는 사람도 보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 역 근처를 거닐다 한인 상가가 밀집된 유니언 스트리트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정착 초기 플러싱에 도착해 시간이 멈춘 도시 같은 인상에 충격을 받았는데 그 후로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뚜레쥬르와 파리 바게트가 들어왔고 공용주차장에 대규모 주상 복합 빌딩 Flushing Commons를 지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올 때도 이민이란 단어도 몰랐는데 뉴욕에 살면서 이민자들 삶을 보니 삶이 삶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살 적 주위에 이민 간 사람이 없어서 잘 몰랐다. 대학 시절 비 오는 날 땡땡이치고 친구랑 극장에 가서 안성기가 주연으로 나오는 <깊고 푸른 밤> 영화를 봤는데 영주권으로 고통받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때는 이민에 관심도 없으니 남의 일이라 영화가 내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내가 뉴욕에 사니 그 영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새롭게 인식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인 것도 많고 남의 일과 내 개인의 일은 다르다.
코로나 후 플러싱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지금도 렌트비가 비싸니 뉴욕을 떠난 사람도 많다. 가게 렌트비도 비싸니 갈수록 텅텅 빈 곳도 많아질 거 같다. 반대로 온라인 구매는 인기가 많아질 테고.
땡볕 아래 플러싱 지하철역 근처 사진을 담고 돌아오는데 딸이 함께 파리바케트에 가자고 연락을 해서 함께 아이스라테 커피를 마시러 가서 향기로운 아침 시간을 보냈다. 향기로운 커피와 약간의 여유로 시작하는 아침이 좋다. 이른 아침 동네에서 산책하고 그 후 플러싱 지하철역에 갔으니 상당히 바삐 움직였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오려다 시간과 호주머니 사정 생각하며 그냥 집에 돌아오는 길 딸에게 연락을 받았다.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초록 나무 그늘 아래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빨강 새 노랫소리도 듣고 예쁜 능소화 꽃도 보았다.
오후 딸이 CNN 뉴스에 서울 시장 박원순 사망 기사가 떴다고 하니 충격을 받았다. 향년 64세는 머나먼 길을 떠나긴 너무 젊다. 인생무상. 인생이 허무하다. 잠시 살고 먼 길을 떠난다. 정말이지 아무도 생을 알 수가 없다. 유력한 대선 후보였는데 갑자기 싸늘한 시체로 변할 줄 누가 알았으리.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신 친정아버지 생각도 난다.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 모대학 병원에서 수술만 받으면 완쾌될 거라 착각을 했는데 허무하게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리 빨리 떠날 줄 아무도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았을 텐데 몰랐다.
또, 2014년 8월에 하늘나라로 떠난 미국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도 떠오른다. 그날 혼자 퀸즈 라커웨이 비치 바닷가에서 산책하며 모래사장 위에 떨어진 장미꽃 송이를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가 떠났단 소식을 들었다. 윌리엄스도 향년 63세 명을 달리했으니 일찍 떠났다. 올여름 라커웨이 비치에 꼭 방문하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곳까지 플러싱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상당히 멀고 불편한데 그래도 차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후에는 딸이 사 온 맛있는 체리를 먹었다. 유월이 되면 먹고 싶은 체리. 가격이 비싸니 잘 사지 않는데 딸이 사 와서 먹었다. 그동안 먹은 체리 가운에 가장 맛이 좋은 체리였다.
그 후 백일홍 꽃과 백합꽃과 플러싱 사진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 박원순 시장 유서가 공개되어 글씨체를 확인했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에 고 박원순 손글씨체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2014년 머니투데이 기사를 찾았는데 글씨체가 달랐다. 세상에 캄캄한 나는 정치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데 세월호 침몰과 최순실 사건과 조국 사건으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에는 조국 지지파도 있고 반대파도 있으니 그들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세상의 정의를 추구한 사람도 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많구나를 느꼈다.
박원순 시장 별세 소식 말고도 내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사건도 있었다. 갑자기 작은 에어컨 스위치가 멈췄다. 고장이라도 나면 난리인데 무더위에 갑자기 멈춰 깜짝 놀랐다. 나 혼자 지내면 참을만 한데 딸은 종일 일하는데 에어컨 없이 지내기 힘들다. 그런데 고장이 나면 어떡해. 혹시나 하고 냉장고 문을 여니 전원이 나갔다. 그러니까 전원이 꺼져버려 에어컨 가동이 멈췄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수차례. 내 심장은 자주 멈췄다. 롱아일랜드 아파트는 비치된 에어컨이 있어서 편리했는데 플러싱은 없으니 개인이 구입해야 했다. 에어컨 사려고 대 소동을 피우고 설치도 우리 힘으로 안 되니 아파트 슈퍼 불러 수고료도 주니 마음 무거웠는데 다시 구입할 생각 하면 아찔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라서 전기 공급도 문제가 있나 보다.
잠시 살고 먼길 떠나는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식 농사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 많은 사랑을 줬는데도 뜻대로 자식 농사가 안된다고 상심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집과 비교하면서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다. 지구촌 75억? 인구의 삶은 각각 다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장미꽃과 백합꽃만 예쁜 것도 아니고 풀꽃도 예쁘더라. 백일홍 꽃도 다 다르더라. 하늘이 준 운명을 사랑하자. 최선을 다하면 어딘가에 길이 있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