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0일 금요일 흐림 & 비
창문에 지붕 위에 배롱나무꽃 위에 수국 꽃 위에 도로에 여름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금요일 아침 기온 24도 습도는 90%. 거실 바닥도 탁자 위도 모든 곳이 끈적끈적 달라붙는 느낌에 죽을 거 같았다. 습도는 왜 이리 높아진 걸까. 빗물 젖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소리도 쉼 없이 들려온다.
내일도 비가 내린다는 소식,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도 비가 온다고. 여름 비에 내가 사랑하는 꽃들이 말없이 작별을 하고 떠나겠구나. 여름 내내 무척이나 날 행복하게 했던 플러싱 주택가 정원에 핀 꽃들. 그리 많은 꽃이 핀지도 모르다 코로나로 맨해튼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 매일 아침 동네 산책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뭐든 애정을 쏟은 만큼 세상이 넓어진 걸까.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눈이 중요하다.
금요일 아침 내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사건이 있다. 휴대폰으로 블로그 웹페이지가 열리지 않았다. 정말 답답한 사건. 작년에도 휴대폰 용랑 초과로 마음고생했는데 올해는 사진을 최소로 찍어야지 했는데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저절로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사진 작업 후 바로 삭제해야 하는데 게으름 탓인지 바로바로 삭제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아니 삭제하기 어려운 마음이 날 망설이게 하는지도 몰라. 예쁜 꽃 사진을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날 붙잡는다. 꽃들의 요정이 사는 내 휴대폰이 말썽을 부린 덕에 몇 시간이 날아가버렸다. 오래전 찍은 사진들 삭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위기가 찾아오기 전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담은 사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때는 뉴욕시가 잠들 줄 몰랐다. 카네기 홀, 플라자 호텔 푸드 홀, 맨해튼 카페, 뉴욕 식물원, 아트 축제, 첼시 갤러리 등의 사진을 보며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하니 더 애석하다. 맨해튼이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도 모르고 와서 매일 나들이하다 나 혼자의 힘으로 발견했으니 더 값지고 귀한 보물이다. 공짜가 어딨어. 매일 태양 같은 정열을 맨해튼에 쏟으며 발견했다.
매일 낡은 가방에 책 한 두권 담고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가서 보물찾기 놀이를 했는데 그만 멈춰 버린 뉴욕. 깨어나도 코로나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시간들이었던가. 그날그날 중요한 이벤트와 축제를 찾아서 나비처럼 훨훨 맨해튼 위를 날아다녔다. 카네기 홀과 오페라 등 특별한 이벤트와 두 자녀와 특별 나들이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지출을 하지 않았다. 나의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휴식하면서 종일 맨해튼에서 놀았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찾는 경제의 기본 법칙을 잊지 않았어.
삶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소소한 행복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마음을 열고 마음의 눈으로 찾으면 된다. 빛과 어둠처럼 우리네 삶도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끝없이 교차한다. 항상 행복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매일 기록한 생존 일기에는 숨어있는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이야기다. 가진 거 없는 내가 찾는 즐거움과 기쁨이 들어있다. 다시는 코로나 전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하니 지난 기록들이 더 소중해진다. 좋은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출판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아침 휴대폰 소동으로 소중한 시간이 날아가 버려 늦게 산책을 하러 갔다. 어제 봤던 예쁜 능소화 꽃을 다시 담으러 갔는데 휴대폰 소동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는지 마음처럼 예쁜 사진이 담아지지 않았다. 능소화 꽃 사진만 몇 장 담고 집에 돌아와 다시 딸과 함께 아이스 라테 커피를 마시러 갔다.
딸 덕분에 럭셔리한 아침을 맞는다. 평소 난 비싼 커피는 그림이라 사 먹지 않는다. 맨해튼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커피는 5번가 트럼프 타워 빌딩 2층 스타벅스에서 먹은 Frappuccino (프라푸치노)와 록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먹은 카푸치노 커피. 모두 무료였다. 트럼프 타워에서 먹은 커피는 공짜 티켓을 받아서 마셨고 오래전 크리스티 경매장은 방문자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 이제는 더 이상 제공하지 않으니 보물이 사라졌다.
매년 칠월이 되면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뮤지컬 공연도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슬프다. 접시꽃과 무궁화 꽃이 핀 초록빛 공원에서 뮤지컬 배우가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니까 좋다. 평소 뮤지컬 공연 티켓이 비싸니 보고 싶어도 그림의 떡이 되곤 했는데 여름 축제가 열리는 동안 가끔 브라이언트 파크에 갔다. 또 영화 축제도 열리고 댄스와 음악 축제 등 쉬지 않고 열리는데 모두 취소되었다.
금요일 주말이라 메트 뮤지엄과 첼시 갤러리 등 수많은 곳에서 공연과 이벤트에 대해 알려오나 나의 에너지 흐름은 낮다. 요즘 오페라 볼 에너지도 없고 폭염과 싸우며 지내고 있다.
아침 산책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목나무 그루터기 안에서 자라는 배고니아 꽃과 아이비 넝쿨을 보고 놀랐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피워내는 식물을 보고 배워야 할까. 아주 작은 일에도 심하게 흔들이는 사람도 있고 폭풍에도 맞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평생 내 인생은 폭풍이 분다. 역경과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쉬지 않고 노력한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 적은 없다. 너는 너, 나는 나이니까.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 생각나는 김승희의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가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저녁 무렵 시내버스를 타고 플러싱 먹자골목에 다녀왔다. 플러싱 한인타운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먹자골목은 149 스트리트와 149 플레이스, 41 애비뉴 일대를 일컫는다. 머레이 힐 기차역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니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인기 많은 K Pop 영향도 있겠지. 퀸즈 플러싱 먹자골목에서 다문화 축제도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열리지 않았겠다.
여름 비가 내리니 대지의 열기가 수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