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토요일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 제전 보고 백합꽃과 장미꽃과 라벤더 꽃 향기 맡으며 빨강 새 노랫소리 들으며 눈부신 아침을 맞으며 호수와 숲이 있는 공원에 갔는데 부러진 아카시아 나무 가지가 보여 2012년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가 떠올랐다. 한동안 정전이 되니 집안이 온통 캄캄하니 조선 시대로 돌아간 듯했지.
그뿐만이 아냐. 가로수 나무가 부러지고 주유소에서 오일을 채우려면 최소 3-4시간 기다려야 했던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지. 한국에서 한 번도 그처럼 강도 높은 허리케인을 경험하지 않아서 그날 뉴스에 허리케인이 올 거란 소식을 들었는데 철없이 단풍 구경하러 혼자 드라이브하며 찾아가 돌아오는 길 딸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주유소에 다녀왔냐고 물은 게 아닌가. 단풍 구경 갔다고 하니 딸은 깜짝 놀랐어. 그때까지 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몰랐다. 폭풍이 지나가면 단풍 구경을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드라이브 갔고 단풍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주 중대한 일이었지. 그 순간을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미리 주유소에 다녀왔더라면 그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부러진 나뭇가지만 보면 샌디가 떠올라. 이것도 트라우마일까. 샌디로 지옥으로 변한 뉴욕. 코로나 위기만큼은 아니지만 샌디도 뉴욕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바닷가 집은 침수되고 물바다로 변했으니까. 그때 우리 집 아파트 지붕도 폭풍에 날아가버려 천정에서 비가 쏟아져 홍수가 났어. 책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눈 앞에서 벌어졌지. 뉴욕에 살면서 힘든 추억 가운데 하나다. 약 한 달 동안 아파트 지붕 수리를 했지. 정말 많고 많은 아파트 가운데 딱 우리 집 아파트 지붕만 날아갔다. 천재지변은 보상도 없어. 아파트 관리실에 말하니 수리만 해준다고 하더라. 한 달 동안 먼지만 마시고 살았어. 호텔 숙박비는 비싸니 쳐다볼 수도 없도 한 달 동안 머물 집도 없으니까 먼지와 함께 지냈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보통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난다. 그래도 참고 견디고 산다. 웃으며 살자.
샌디로 뉴욕이 지옥으로 변하니 맨해튼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지 않으니 매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교수님은 어디서 식사를 해야 하냐고 불평하더라. 같은 뉴욕에 살아도 삶이 각각 다 달라. 우리 집은 홍수가 나서 지옥의 물바다로 변했는데 레스토랑 불평하니 웃었지. 남과 비교하면 슬프니까 하지 말자.
며칠 전 처음 본 능소화 꽃을 다시 보러 갔지. 꽃은 피면 시들고 어제는 비가 내려 빛이 바래니까 서둘렀는데 역시나 주황색 꽃이 약간 바랜 느낌이었다. 그 예쁜 꽃들을 나 혼자 보니까 이상하지. 아무도 안 보니 혼자 실컷 봤어. 근처에서 피서지 파라솔 떠오르게 하는 꽃도 보고 웃었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꽃 모양이야. 오죽하면 내가 피서지가 생각났겠어. 바다를 사랑하니까 무더운 여름날이니까 바다가 그리워.
칠월 초순이 지나 중순에 접어드니까 서서히 꽃이 지고 있다. 이제 장미꽃과 수국 꽃을 볼 날도 며칠 남지 않아서 서운하다. 빛이 바래가는 수국 꽃도 한참 바라봤지. 뉴욕에 흔하지 않은 접시꽃도 보아서 반가웠지. 빨강 새는 계속 날 따라다니며 노래를 불러 신났지. 청설모와 새들은 뽕나무 열매 오디를 맛있게 먹더라. 난 쳐다만 봤어. 맛있는 열매인 줄 어찌 알았을까.
딸과 함께 아이스라테 커피 마시러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닭강정을 만들어 먹었다. 딸이 먹고 싶다고 하니 만들었는데 전분 가루 묻혀 튀겨서 더 뜨거웠을까. 팔팔 끓는 기름에 닭을 튀기는데 너무 뜨거워 혼이 났어. 양념 소스 재료가 부족하니 집에 있는 것만으로 만들었다. 한국 요리 양념은 비슷비슷해. 간장, 식초, 물엿, 설탕, 마늘즙 등을 넣고 만들어 튀긴 닭고기를 넣어 볶았어. 아들은 중국집 요리 같다고 하니 웃었어. 우리 집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외식을 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 먹는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도둑맞은 거 같아. 일주일 전 독립 기념일 딸과 함께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와 5번가를 거닐며 산책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캠핑 떠났던 아들이 집에 돌아온다고 하는데 하필 아파트 열쇠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 딸과 내가 집에 도착한 시간과 비슷한 시각에 아들도 집에 도착. 무더운 여름날 밖에서 기다리면 혼이 났을 텐데 다행이었다. 매일 기록하지 않으면 무얼 했는지 기억하기 힘들어. 폭염 때문인가 아니면 나이 탓인가.
산책하고 딸과 카페에 가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남은 시간은 사진 작업하고 글쓰기를 하면서 하루가 흘러갔어.
어제 여름 비가 내려 말없이 떠나버린 꽃들도 많더라.
토요일 최고 기온 29도. 습도가 81%.
견디기 힘든 날씨라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시기다.
마음은 파도가 철썩 거리는 푸른 바다로 떠나고 싶구나.
내가 사랑하는 파이어 아일랜드에 가서 한 달만 살면 좋겠다.
아직도 꿈을 꾼다.
언제 꿈이 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