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5일 수요일
매미가 우는 뜨거운 여름 일찍 맨해튼에 도착 일찍 집에 돌아오려고 시내버스를 탔다.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서 7호선을 탔는데 몇 정거장 갔는데 멈추고 말았다. 금방 다시 출발할 줄 알았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았다. 코로나 전쟁이라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하철이 멈춘 동안 반대편 지하철에서 내린 승객이 계속 내가 탄 지하철 안으로 들어왔다. 고요한 지하철은 콩나물시루로 변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하고 승객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숨쉬기도 곤란한 순간 그래도 마음을 안정하려고 노력했다. 레바논처럼 폭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지하철 안 승객들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주 큰 트렁크를 든 여행객도 있고 처음 플러싱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내 맞은편에 앉은 30대 즈음으로 보인 남자는 일본어 책을 열심히 읽는데 가끔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할아버지가 들어오셔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연주를 하는데 영화 같은 순간이었지.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1달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고 샤워를 언제 했는지 알 수가 없는 홈리스 분위기 짙은 할아버지 바지 지퍼는 열려 있었다. 뉴욕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지.
잠시 후 기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아보니 전에 7호선에서 만난 에콰도르 출신 남자였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노래를 부르니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는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잭슨 하이츠에 산다고 했던가. 거리 음악가 하기 전 구두 수선공을 했는데 여름에는 신발 수선하는 사람이 없어서 최악의 경기라고 말했다. 듣고 나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무한 메트로 카드가 있다면 지하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아직 무한 교통 카드를 구입하지 않아 나의 동선은 제약이 된다. 1회 이용 시 2.75불이니 결코 저렴하지 않은 교통비. 인내심을 가지고 지하철이 떠나길 기다렸다. 평소 플러싱에서 타임 스퀘어 도착하는 시간 정도 기다리니 7호선이 움직였다. 하필 가방에는 책 한 권도 없었다.
나의 첫 번째 목적지는 맨해튼 차이나타운. 플러싱에서 차이나타운까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 베이징에라도 다녀온 거 같았다. 태양이 활활 타는 여름날 가장 해가 뜨거운 시간 차이나타운 거리를 걸었다. 맨해튼인데 중국어로 된 간판이 보이니 마치 중국 같다. 코로나로 뉴욕이 어떻게 변하는지 상당히 궁금해 요즘 용기를 내어 여기저기 답사하는데 실은 코로나로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의료비 비싼 미국에서 아프면 죽는다. 그러니까 맨해튼 나들이가 정말 무섭다.
차이나타운 콜럼버스 파크(Columbus Park)에 가니 점심 식사를 하거나 여러 명이 모여 즐거운 게임을 하고 있었다. 맨해튼의 심장 센트럴파크 주변은 부촌이고 공원 규모가 크고 넓어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조깅을 하거나 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누워 휴식을 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있지만 반대로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원은 규모도 아주 작고 풍경이 사뭇 다르다.
공원에서 나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다 뉴욕 화가 강익중이 무명 시절 자주 이용했던 커피숍에 가서 그가 마셨던 저렴한 커피를 마셔보았다. 2013년 핫 커피 한 잔이 75센트. 지금은 1.25불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강익중 화가를 생각하며 핫 커피를 마셨다. 커피 맛이 어떠냐고? 가난한 사람에게 커피 마시면 천국이지. 무얼 더 바래. 행복의 기준도 다 다르다. 강익중은 최고의 커피라고 하더라.
자신이 갖고 있는 혜택을 모르고 남이 갖는 것만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가진 거 없어도 꿈을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 자본주의 세상 위를 바라보면 끝이 없어. 바라보고 싶어도 바라볼 수도 없다. 그러니까 난 조용히 내 길을 걷는다. 잘 사는 친구들 삶과 내 삶을 어찌 비교해. 내가 무슨 재주로 청담동 빌라에 살고 타워 팰리스에 살겠는가. 세상에는 복 많은 사람도 있다. 부자 부모님과 시댁 만나 엄청난 재산을 받은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한 푼도 없이 죽어라 죽어라 고생하며 꿈을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복은 하늘이 주더라. 하늘의 뜻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은 죽어라 죽어라 노력하는 사람 마음도 모르지.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사냐. 생을 즐기면서 살지라고 하지. 가만히 있어도 생존 걱정 안 하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인다. 그냥 삶을 즐기는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싫어하기도 한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 삶도 마음도 제각각.
홍대 미대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졸업 후 차이나타운에 250불을 주고 작업 공간을 마련해 오랫동안 차이나타운에서 작업하다 나중 브루클린 덤보로 옮겼다가 덤보가 개발되어 렌트비가 인상되니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옮겼다고. 차이나타운에서 2-5달러 음식을 먹으며 행복했단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식품점에서 일하고 벼룩시장에서 일하며 고생했던 작가는 작품 활동은 지하철 안에서 3인치 그림을 그렸단다.
뉴욕에 공부하러 왔는데 생활비 버느라 시간이 없어서 지하철 안에서 작업 활동을 했다는 화가. 어떤 상황에도 불굴의 의지로 꿈을 키워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좋은 환경에도 불평만 하는 사람도 있다. 삶이 뜻대로 되지도 않지만 좌절 속에서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이 피기도 한다. 강익중도 참 대단한 화가다.
핫 커피를 마시고 뜨거운 차이나타운 거리를 걷다 가난한 이민자들의 동네 로어 이스트 사이드로 걸어갔다. 오래전 백남준 전시회를 보러 갔는데 문이 닫혀 볼 수 없었던 갤러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뉴욕 맨해튼 갤러리가 일주일 내내 오픈하지 않는다. 수요일-토요일 오픈하는 곳도 있고 갤러리마다 약간 다르다. 코로나 위기라서 예약제 시스템으로 변했는데 아무도 없으니 예약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벽에 걸린 작품을 보았다.
잠시 낯선 화가 작품을 보고 다시 근처 갤러리를 갔는데 문이 닫혀 실망을 했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전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어서 좋고 작품도 마음에 들어 더 좋았는데. 그때 그 피아니스트랑 오래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날 줄리아드 학교 공연을 보러 간다고 일찍 떠났는데 돌아보면 아쉬운 시간들. 중년 남자의 연주 솜씨가 대단해 놀랐다.
다시 걷고 다시 갤러리 구경하고... 갤러리에서 인도 여행도 떠나며 트랜스젠더가 많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카스트 제도가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인도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작품을 본 갤러리. 미국 지폐가 타는 작품이었다. 아들은 평소 지구촌 빈부 차이 문제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왔다고 말하며 화폐가 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딱 그 말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돈이 사회악을 불러오는가. 돈이 없다면 지구는 더 평화로울까. 돈으로 우는 사람도 없겠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비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 위기도 돈을 벌기 위해 만들고, 지구촌 인구 감축을 위해 만들었다는 음모론도 있다. 암튼 매일 지구촌 사람이 죽어가니 인구 감축은 맞겠다. 미국이 지금 코로나로 80초마다 1명씩 사망한단다. 모더나 백신 가격도 6-7만 원 하더니 32-37달러로 가격을 낮췄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백신이 1회가 아니라 2회 접종을 해야 한다고 하고, 어쩌면 독감 백신처럼 매년 맞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럼 돈 버는 백신 아닌가. 그러니 지구촌 제약 회사들이 백신 만들기 전쟁을 한다. 지구촌 사람들이 그 비싼 백신 맞으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돈 돈 돈 하는 세상 돈 돈 돈으로 망할련가 모르겠다.
그렇게 맨해튼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시내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갔다. 세일 중인 복숭아와 체리와 상치를 구입했다. 체리는 파운드당 3.99불. 세일해도 역시나 비싸다. 작은 봉지가 10불 정도.
수요일 아침 일찍 산책을 했다. 폭풍으로 도로에 쓰러진 고목나무를 보았다. 뉴욕을 지옥의 불바다로 만든 샌디도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고생했던가. 쓰러진 고목나무에 부서진 차도 보며 플러싱 집 주변에서 일어나 뺑소니 사고도 떠올랐다. 새벽에 내 차를 박고 도주한 뺑소니 차량 때문에 수 천불이 날아가 마음 아팠던 사건. 뉴욕에 살면서 가슴 아픈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정말 가슴 아픈 것은 차마 글로 쓸 수도 없다.
종일 23458보를 걸었다.
저녁 폭탄 하나가 내 가슴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