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2일 토요일
태양의 열기가 지상에 가득했던 날 아침 일찍 호수에서 산책하며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작열하는 여름에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온 하얀 백조는 동네 사람의 모델이 되어주고 카메라를 아는 눈치라 재밌다. 주민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멋진 포즈를 취한다. 어떤 중국인 여자는 춤추는 장면을 카메라로 녹화하면서 음악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더라. 호수에는 노란 낙엽들이 둥둥 떠 있다. 아침 산책이 참 좋다.
브런치를 먹고 외출을 했는데 브루클린에 가려다 계획을 변경해 오랜만에 센트럴파크에 갔다. 화창한 날씨가 매혹적이라 갑자가 센트럴파크가 그리웠다. 90세 되어가는 노인 할머니가 혹시나 그림을 그리나 궁금했는데 보지 못해 섭섭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생기 넘치는 쉽 메도우(Sheep Meadow)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잠든 뉴욕이 깨어난 줄 알았다. 멋진 몸매의 젊은이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휴식하는 것을 보면 마치 영화 같다. 실제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아가씨가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하는 것은 담지 못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도 보여주기가 어렵다. 여기에 올린 사진들이 그렇다.
비단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사랑하는 센트럴파크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하는 모습이 천상 같았다. 시원한 과일과 음식을 가져와 친구들과 즐거운 토요일 오후를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귀한 풍경을 오랜만에 보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공원 풍경 보고 감동받기는 생에 처음이다. 그만큼 코로나가 특별하다.
베데스다 테라스 화장실도 오픈하니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베데스다 테라스에서는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니 더 좋았다. 음악이 정말 좋다. 아름다운 공원에서 산책하며 매미 소리와 색소폰 소리와 거리 음악가 노래 들으면 몸과 마음이 춤춘다. 무더운 여름날 조깅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꽤 많은 사람들도 보았다. 코로나로 축제가 취소되어 아쉬운 마음 가득하지만 오랜만에 활기 넘치는 공원을 보았다.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졌다. 낯선 동네 브루클린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매일 낯선 동네 방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동네에 대해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데 여행객처럼 호텔에 머물지도 많고 매일 식사 준비하고 매일 지하철을 오래오래 타고 나들이를 하니까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그냥 우연에 맡길까 하다 포기하고 카네기 홀에 갔는데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고 웃었다. "어떻게 카네기 홀에 가나요?라고 하면 대개 "연습, 연습, 연습을 해야지" 하는데 연습 대신 "인내, 인내, 인내"라고 적혀 있었다.
세계적인 카네기 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와서 오랜 시간이 흘러 흘러서 아들과 자주 공연을 보러 가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 좋았다. 전설적인 음악가들 공연도 보고 여러 소식도 들으며 뉴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저렴한 티켓 사려고 추운 날 오랜 시간 기다리면 고통스러운데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렀다. 명성 높은 음악가 공연도 항상 좋지는 않았고 공연 보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오면 너무 힘드니까 공연을 볼지 안 볼지 고민할 때도 있는데 가끔은 지인들 만나러 카네기 홀에 갔다. 아름다운 추억이 참 많은 카네기 홀 공연은 내년 초까지 취소되었다.
나의 아지트에서 핫 커피 한 잔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유니언 스퀘어에 갔다. 토요일 오후 그린 마켓도 활기찬 분위기라 좋았다. 링컨 동상이 세워진 유니온 스퀘어 파크에서는 재즈 음악이 들려오고 그린 마켓이 열리는 코너에서도 음악이 들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활기찬 풍경과 거리 음악가 공연이 날 흥겹게 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지트 반스 앤 노블 서점에 들어가 신간 도서를 펼쳐 보다 파라솔 세워진 해변 풍경 표지를 보고 페이지를 넘기자 케이프 코드(Cape Cod)가 보였다.
작년 늦은 봄 두 자녀와 함께 방문했던 미국 동부의 명성 높은 휴가지 케이프 코드. 갈까 말까 고민하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방문했는데 올해 코로나로 여행이 어렵게 되니 잘했단 생각이 든다. 차도 없고 비싼 비행기 티켓 살 형편이 아니라서 고속 페리를 이용해 죽음 같은 고통을 치렀지만 한 번은 가 볼만한 휴가지다. 고속 페리 티켓이 참 비싸서 고민도 했다. 기억에 1인 왕복 100불 정도? 비싼 호텔에 머무는 체류 비용도 걱정되니 보스턴 항구에서 아침 일찍 페리를 타고 섬에 들어가 그날 밤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서점에서 나와 소호에 가려다 그냥 마음을 바꿔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한인 마트에 김치를 사러 갔는데 김치 대신 수박 한 통을 구입했다. 무거운 수박 들기가 힘든데 세일 중이었다. 항상 세일하지 않으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수박이었다. 김치는 거의 세일을 하지 않는다. 정착 초기 약 7불 정도 하던 김치가 지금은 22불 정도다.
저녁 식사를 하고 석양이 지는 무렵 아들과 운동을 하러 밖에 가니 예쁜 초승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석양과 초승달을 보며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시 휴식하고 신문 기사를 읽다 민주당 대선 후보 바이든이 만약 당선되면 미국을 셧다운 한다는 내용을 읽고 놀랐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셧다운 상태가 오래 지속되니 버티기 너무 힘들어 무너지는데 다시 셧다운이라고 하니 얼마나 암담한가. 대기업 무너지는 내용은 언론에 발표되지만 중소기업과 소규모 비즈니스는 발표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실제 코로나로 무너지는 곳이 셀 수도 없이 많단다. 길어질수록 버티기 힘들다. 부자 나라 미국 서민들은 돈이 없다. 빚, 빚, 빚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고 집도 차도 학비도 모두 빚이다는 말을 들었다.
코로나전에도 미국 빈부차가 심각했는데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사는데 어려운 환경에 사는 이민자들 보면 가슴이 아팠다. 국민 의료 보험이 없는 미국이란 나라의 환상이 무너져 역이민 하는 사람들도 많아져간다고 하는데 앞으로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서는 헬조선 하며 고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데 미국은 거꾸로 역이민 간다고 한다. 미국이 좋으면 역이민을 갈까.
힘든 이민 생활에 대해 포스팅을 올리면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거짓으로 꾸며서 이민 생활에 대해 적지도 않았다. 뉴욕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올렸는데 한국에서는 이민생활에 대해 잘 모르니 환상을 갖는 분도 있을 것이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미국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엄청 비싼 학비 내고 명문대 졸업 후에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불확실한 세상. 명문 대학 박사 과정 입학도 너무너무 치열한데 졸업 후 교수가 되는 것도 너무너무 어려운 현실.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 과정 사정하는 교수님도 과거와 달리 너무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분도 만약 지금 박사 지원하면 통과하기도 어려울 거 같다고. 이런 사정을 잘 모른 분들도 많다.
이민 생활은 정말로 어려운 점이 많고 한국과 미국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뉴욕은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이토록 복잡하고 힘든 환경인데도 아직 뉴욕에서 머물고 있는데 나 역시도 마음 안에 갈등이 많다. 문화와 자연이 무척 아름답지만 한국보다 백만 배 열악한 환경에 버티고 있다.
능력 많고 돈 많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나 잘 산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다. 서울대 치대 졸업하고 뉴욕에 와서 뉴욕대와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과정 마치고 성적 우수로 졸업한다는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이렇게 재주 많은 인재도 있다.
정말로 다시 셧다운 하게 되면 뉴욕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으니 힘들지만 낯선 곳을 더 자주 방문해야 하나. 나의 머리카락은 갈수록 하얗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