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4일 월요일
어느새 팔월 말. 여름이 떠나가기 싫은지 무더운 열기가 가득하다. 에어컨 켜진 곳에서 휴식을 하거나 시원한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마음이야 '맘마미아' 뮤지컬에 나오는 그리스 섬에 들어가서 몇 달 쉬면 좋겠는데 코로나로 여행도 자유롭지 않고 돈도 없고... 코로나로 맨해튼 실내 영업이 안 되니 카페에서 책을 읽을 공간이 없어서 아쉽다. 무더위로 꼼짝하기 싫지만 그래도 브루클린 답사를 하고 있다. 만약 다시 봉쇄된다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까. 뉴욕 교통 카드와 핫 커피 한 잔과 열정이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열어준다.
월요일 브런치를 먹고 브루클린 포트 그린(Fort Greene)에 방문했다. 평소 자주 방문하지 않은 동네다. 롱아일랜드 시티 Court Square 역에서 G 지하철에 탑승했다. 평소 이용하지 않은 지하철이라 노선이 아주 낯선데 노선 안내 지도가 없으니 더 답답했다. 브런치를 먹자마자 출발하니 졸음이 쏟아지는데 깜박 잠들어버리면 엉뚱한 곳에서 내리게 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오래 전과 달리 지하철 분위기가 달라졌더라.
롱아일랜드 시티는 변화의 물결이 심한 곳이다. 맨해튼과 꽤 가까운 동네이고 내가 사랑하는 모마 PS1 뮤지엄이 있는데 시골 분위기 짙었는데 하늘 높은 빌딩이 치솟는 지역. 코로나로 돈 많이 버는 아마존이 롱아일랜드 시티에 들어오려다 주민들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대신 맨해튼 5번가 로드 앤 테일러 백화점에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존이 들어오면 동네 렌트비가 인상되고 지하철역 역시 복잡할 것이다.
롱아일랜드 시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렌트비가 더 많이 인상되어 불평하는데 아마존까지 들어오면 비싼 렌트비로 떠날 사람들이 많겠지. 바로 이런 현상이 젠트리피케이션.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는 뉴욕. 자본가들이 낡고 허름한 빌딩을 구입해 투자를 하고 새로운 빌딩을 지으면 렌트비는 인상되고 주민들은 떠나야 하니 슬프지.
롱아일랜드 시티 지하철역에는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운 몸매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해. 물론 몸을 가꾸기도 하겠지만 키는 타고난 것이지. 뉴욕시에는 몸매가 예술인 젊은이들이 많다. 센트럴파크와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브루클린 풀턴 스트리트 (Fulton St) 지하철역에 내렸다. 잠을 깨려고 커피 한 잔 마시려고 델리 가게에 들어갔는데 커피가 안 보였다. 델리 가게에서 커피를 안 파는 것은 처음이었다. 멋진 카페도 많지만 가격이 비싸니 델리 가게를 이용하는데 커피가 없어 할 수 없이 포기했다.
포트 그린 (Fort Greene)하면 생각나는 브루클린 Brooklyn Academy of Music(BAM). 간단히 줄여서 뱀이라 불린데 1907년에 설립되었으니 역사도 깊다. 대학원 시절 만난 강사는 롱아일랜드에 사는데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보러 맨해튼 나들이를 하셨다. 사이먼과 가펑클 공연을 보러 간다고 했던가. 그때 난 전공 서적과 4차 전쟁을 치를 무렵이라 공연은 꿈에도 생각조차 못하던 시절이었지. 아일랜드계 강사는 이탈리아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자녀가 없어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더라.
그때 만난 폴란드계 유대인 강사는 아일랜드계 강사와 정반대 입장이었다. 남편분도 유대인이었는데 브루클린 병원에서 만나 결혼했지만 어느 날 의사 남편이 식물인간으로 변해 버려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몹시 힘드니까 큰 딸을 이스라엘 대학에 보낸다고 하셨다. 미국은 교육비가 엄청 많이 들고 반대로 이스라엘은 무료. 그러니까 세명은 같은 여자인데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 가끔씩 유대인 강사가 생각난다
뱀 하면 또 기억나는 추억 하나. 오래오래 전 링컨 센터에서 열리는 뉴욕 영화제에서 만난 콜럼비아 대학원생이 뱀에서 마틴 스콜세지 영화감독 대담이 열린다고 꼭 보라고 해서 달려가 어렵게 티켓을 구입했는데 실망스러웠다. 인기 많은 감독 대담 티켓도 참 어렵게 구했는데...
뉴욕 영화제 대담은 무료, 반대로 뱀은 유료. 유료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뱀에서 정말 좋은 공연과 축제가 많이 열리는데 유료라서 머나먼 곳이었지. 저렴하다면 자주자주 방문했을 텐데 늘 예산을 생각하고 나들이를 하니까. 예산을 벗어나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눈을 감았다.
코로나 전 주말에 뱀 카페에서 무료 공연도 열려서 몇 번 방문해 뉴욕의 밤을 느껴 보았다. 집에서 가깝다면 자주 이용했을 텐데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게 상당히 무섭다.
뱀 근처 서점에도 방문했다.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던 서점이 뱀 근처로 옮겼는데 역시나 조용하더라. 특별 작가 이벤트도 여는 곳이다. 비싼 렌트비 내고 서점이 어찌 운영되는지 몰라.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에 받으며 낯선 동네를 걷다 커피 한 잔 마시려 맥 도널드에 갔다. 폭염 같은 날씨에 핫 커피 한 잔 마시고 잠을 깼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Park Slope)에 갔다. 연구소에서 일할 무렵 만난 젊은이가 파크 슬로프 카페 그럼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데 날 초대해 방문했다. 참 오래전이다. 드라마 촬영지라고 했던가. 인기 많은 Café Grumpy. 실내 공간은 무척 좁다. 렌트비 비싸니까 그런 듯 짐작했다. 커피가 아주 연하다. 반대로 스타벅스 커피는 아주 강하다. 그래서 스타벅스 커피를 싫어한 분도 많다. 대신 스타벅스는 실내 공간이 좋다. 인터넷도 연결되니 신문과 책도 읽고 작업도 하고. 요즘은 코로나로 실내 영업이 안되니 몹시 불편하지만.
파크 슬로프도 꽤 트렌디 한 지역이지만 플러싱에 사는 내가 자주 방문하지 않으니까 아직도 낯선 지역이다. 내가 알려고 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 브루클린은 영원히 잠들어 있겠지. 브라운 스톤 주택가도 많고 렌트비 역시 꽤 비싼 동네. 카페 그럼피 근처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산책하다 갤러리를 발견해 좋았는데 문이 닫혔더라. 월요일과 화요일 문을 닫는 갤러리가 많다. 잠시 산책하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낯선 브루클린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매미가 우는 무더운 여름날. 너무너무 더워 운동하기 싫은데 꾹 참고 운동을 하러 갔다. 밤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휴식을 했다. 팔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아서 서운하다. 매일매일 눈뜨면 하루가 지나간다. 무얼 했을까. 해마다 이맘때 즈음 플러싱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이 찾아와 예선 경기를 하는데 아들과 함께 보러 가곤 했는데 코로나로 볼 수없으니 안타깝지. 무료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 보니 얼마나 좋아. 온몸에 땀으로 범벅이 돼도 테니스를 치던 선수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니 경기 중 몇 차례 옷도 갈아입는다.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워. 관중석에 앉아서 테니스 경기 보는 것도 숨이 헉헉 막힌다. 작년이 좋았다. 그때는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