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세상 - 크리스티 경매장과 제55회 뉴욕영화제

홍상수 영화감독 만나고

by 김지수



눈부시게 청명한 가을 하늘 대학 시절 가을 축제에서 본 송창식 공연도 생각이 나. 대학 강당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서 땀이 뒤범벅인 송창식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보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난 객석에 앉아 편안히 노래를 들으나 가수는 나랑 반대의 입장, 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도 축제를 무척 좋아했던 나. 하지만 지방 대학에서 많은 축제와 공연을 볼 수 없었다.




어제 가을비 내리던 날 어디로 갈지 잠시 망설이다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다. 특별 사진전이 어제 막을 내릴 거라 서둘렀다. 가을비는 내리고 우산을 쓰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 들려 아들이 좋아한 초콜릿 케이크를 구입해 손에 들고 크리스티 경매장으로 갔다. 1년 약 5500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 관광객이 사랑하는 뮤지엄과 달리 크리스티 경매장 갤러리는 조용하고 한산해 좋아. 갤러리로 가서 사진전을 둘러보고 모 마에서 나온 작품도 보여. 그리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만 레이 사진과 지난번 메트 뮤지엄에서 본 어빙 펜 등의 작품이 보였다. 만 레이가 담은 피카소와 어빙 펜이 담은 피카소 사진은 느낌이 많이 다르고 하나는 젊을 적 다른 하나는 노인으로 변한 피카소 모습이었다.



어제 날 사로잡은 작품은 어빙 펜의 두 작품. 하나는 미국 작가 존 디디온의 주름살 가득한 모습을 담은 거고 다른 하나는 깨어진 달걀 한 개를 담은 거. 주름살 가득한 여류 작가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고 어찌 달걀 하나를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역시 예술가는 위대해, 속으로 생각했다. 달걀은 우리 가족의 미국 초기 정착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낯선 땅 아무도 없는 뉴욕에 와서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처음 도착했으나 한국과 달리 집에 세탁기도 없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리도 낯설지 언어도 낯설지 아는 사람 없지. 장을 보러 멀리 가야 하고 집에 세탁기가 없으니 멀리 세탁물을 들고 걸어가야 하고 어디에 백화점과 문방구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세탁은 해야 하고 먹을거리 사러 장을 봐야만 했다. 집에서 걸어서 30분 이상 가면 도착하는 미국 슈퍼에 도착해 달걀과 우유와 먹을거리를 구입해 손에 들고 오는데 아들이 달걀을 들고 집에 도착했고 너무 힘드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두었는데 왕복 1시간 이상 걸어서 구입해 온 달걀은 거의 부서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도착한 뉴욕에서 초기 정착 시절 어려움을 차마 글로 적을 수 없고 어빙 펜의 "깨어진 달걀" 작품 보고 문득 지난 시절도 생각났다. 아직도 험난한 산을 넘고 넘고 넘어야 안정이 될지 안갯속 같은 날이 지속되고 언제 안개가 걷히고 안정을 할 수 있을지. 부서진 날개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은 보통의 삶과 많이 다를 수밖에.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을 접하는 게 바로 이민이란 두 글자. 이민생활도 천차만별이고 지구촌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자나 상류층 클래스에서 부모 도움을 받고 지낸 자는 이민 생활이 무겁지 않을 테고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고국과 차원이 다른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가죽 소파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 마시며 크리스티 잡지를 넘기다 우연히 바실리 칸딘스키와 가브리엘 뮌터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모스크바에서 법과 경제학을 공부한 칸딘스키. 어느 날 모네의 작품 전시회를 보고 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글을 오래전 읽은 기억도 나고 하지만 뮌터와 사랑 이야기는 내겐 금시초문이었다. 1877년 독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뮌터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고 부모가 그림을 그리라고 격려했으나 그녀 나이 22세 부모는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버렸다고. 참 슬픈 인생이네. 1898년 미국에 와서 사진 작품을 했으나 사진가보다 화가가 되고 싶어 1900년 다시 독일로 돌아갔고 그림을 배우고 싶어 미술 학교에 가서 칸딘스키를 만나게 되었다고. 스승과 제자 관계로 만나 서로 영감을 주며 나누는 연인으로 변했다고. 당시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 결혼한 부인이 살고 있고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고. 그의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27살이나 어린 아내를 맞이했다고. 그는 더 이상 그를 기다리지 말라고 뮌터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칸딘스키 편지를 받은 뮌터의 가슴을 어떠했을지 가슴이 너무 아파. 뮌터는 그를 사랑했고 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이었을지. 잠시 뮌터의 사랑에 가슴이 시렸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고" 아리아도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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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나와 난 맨해튼 거리를 서성거렸다. 가을비 오는 날 발 가는 대로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사진전 보러 갔다 쓸쓸한 사랑 이야기 들으니 가슴이 아파지고 라커 펠러 센터 채널 가든에도 가 보았다. 국화꽃과 호박과 옥수수로 장식해 둔 아름다운 채널 가든. 가을비 내려 그냥 지나치려다 갔는데 잠시 아름다움에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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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산을 쓰고 걷다 5번가 반스 앤 노블 서점에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유니언 스퀘어까지 갈 에너지는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북 카페로 가니 손님은 많고 빈자리는 안 보였다. 영화배우 톰 행크스 북 이벤트가 보여. 뉴욕 서점은 영화배우, 정치인, 작가, 요리사, 가수 등 모두 만날 수 있는 게 신기해. 오래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 "터미널"에서 톰 행크스 연기에 반해 버렸는데.

잠시 서점에서 서성거리다 서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콜럼버스 서클에 갔다. 어제 미국 "콜럼버스 데이" 연방 휴일이었다. 콜럼버스 서클에 세워진 콜럼버스 조각도 보고. 연방 휴일임에도 메트 뮤지엄과 모마 등은 오픈하고. 잠시 후 링컨 센터에 도착해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휴식을 했다. 그 후 뉴욕 영화제 보러 엘리노 부닌 먼로 필름 센터에 도착했는데 박스 오피스에서 입장권 한 장 받았으나 다른 날과 다르게 입석이라고. 아, 더 빨리 올걸 그랬어 후회해도 이미 지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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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7시 제55회 뉴욕 영화제 출품작 <Lady Bird>를 촬영한 영화감독 Greta Gerwig 이벤트. 필름 스터디를 하지 않고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이번 영화제 첫 데뷔 작품이라고. 입석표라 서서 뉴욕 영화제 토크쇼를 봐야 하는지 잠시 망설였지만 서서 볼 수밖에. 대부분 젊은 층이 많고 바로 옆 할머니가 보여 놀랐는데 어떤 분이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감독이 작가 존 디디온들 좋아한다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존 디디온 흑백 사진을 보고 감명받았는데. 나중 알고 보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출연한 영화 <스타 탄생> 원고 집필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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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한국 영화감독 홍상수 대담이 이어졌다. 홍상수 감독 작품 <밤의 해변에서 혼자> < 그 후>가 뉴욕 영화제 초대되었다고. 난 홍상수 이름도 들은 적이 없고 그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다. 어제 처음으로 본 감독 인상은 마치 환자 같았다. 스웨터 차림에 짧은 머리 스타일의 중년 남자. 뉴욕에서 자신의 영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나 정말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니 알아듣기도 정말 어려웠다. 저 예산 감독이라고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에디팅은 하루 만에 끝내버린다는 정도 알고 밤늦은 시각 집에 돌아와 식사하고 인터넷에 홍상수를 검색하니 영화배우 김민희와 사랑 이야기 기사가 보였다. 홍상수 스캔들로 두 사람이 떠올랐다.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알렌과 한국 가수 백지영. 오래전 학원에서 영어 회화 수업 시 백지영 스캔들로 난리가 났지만 난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다. "세상 사람 맞아? 한국 사람 맞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처럼 홍상수 감독도 비슷했다. 어제 세상에 태어나 난 처음으로 두 명의 낯선 영화감독을 만나고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두 자녀 특별 교육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 본다는 것은 정말 상상 밖 세상이었고 뉴욕에 와서도 공부하는 중 매일 지옥과 전쟁하는 것만큼 힘들어 문화생활은 상상조차 불가능했고 그때 롱아일랜드에 거주해서 맨해튼에 오는 것도 불편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는 저 멀리 우주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할 정도. 수년 전 뉴욕시로 이사 온 후 연구소 그만두고 매일매일 맨해튼에 가서 문화 행사를 보면서 차츰차츰 새로운 세상에 노출되고 있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기사를 읽으니 한국 영화도 많이 달라져 감을 눈치를 챘다. 홍상수 감독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뉴욕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고. 가을비 내리는 날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2017년 10월 10일 가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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