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에서 온 딸 마중하러 자메이카 역에 가다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꽤 바쁜 하루였다. 아침 일찍 세탁을 하고 브런치를 먹고 지하철을 탔다. 8월 브루클린 답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보고 싶은 지역이 많은데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맨해튼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7호선을 타고 달리다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서 환승해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역에 내렸다. 금요일 그린 마켓이 열려 꽃 향기와 과일 향기 가득하니 좋다. 뉴욕 최고 세프들도 사랑하는 곳이고 인기 많은데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물론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서민에게 가격이 낮지 않다는 말이다. 밥 딜런의 고향 미네소타 주에서 온 중년 남자는 뉴욕에 여행 와서 몇 달 머무르며 매일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에서 공연을 보면서 유니온 스퀘어 그린 마켓이 명성 높다고 들어서 방문했는데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바케트 하나만 사 먹었다고 해서 웃었다.
오래오래 전 반스 앤 노블 카페에 자주 방문할 때 바케트 하나 사 먹고 재즈 음악 들으러 뉴 스쿨에도 방문했다. 잠시 마켓을 서성거리다 사랑하는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갔다. 오후 2시 반 경이었나. 수년 전 거의 매일 북 카페 나들이할 때 만난 중년 남자가 1층에 커피를 들고 책을 보고 계셨다. 그분도 나도 거의 매일 북 카페에 출근하니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지만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몇 년 만에 그분 모습을 뵈니 정말 영화 같았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북 카페가 오픈하지 않아도 자주 서점에 오나 보다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친한 친구 사이도 아닌데 왜 그리 특별한 감정이었나 모르겠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동지를 만난 기분이랄까. 전 보다 체중이 감소된 듯 보였다. 늘 모자를 쓰고 북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뉴욕 타임스를 읽고 책과 잡지를 읽는 분.
무얼 하는 분인지 참 궁금했는데 서로 얼굴은 알지만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뉴요커들이 낯선 사람과 쉽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문화라고 한다. 카네기 홀은 예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말이 통한다. 서로 비슷한 점도 많다. 대개 여행도 좋아하더라. 모스크바 출신 할아버지 아드님이 프라하에 사니까 여행 다녀왔다고 하신 분도 지난번 브루클린 쉽헤드 베이에 방문할 때 떠올랐다. 그분이 그 근처에 산다고 하셨다. 집에서 보온병에 티를 끓여 가져 오셔 내게 마시라고 권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하셨다. 아름다운 프라하 언제 다시 가 보나. 건축물이 무척 아름다워 자주 방문하고 싶은 도시였지만 딱 한 번 갔다. 카프카가 태어나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 구시가지에 있는 그의 생가에도 방문했다. 프라하 시계탑이 아름다워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수년 전 북 카페에서 자주 만난 분을 뵈고 이상한 감정에 휘말렸고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북 카페에 올라갔다. 그분이 손에 커피를 들고 있으니 북 카페가 오픈했다는 짐작을 했다. 북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하고 책과 잡지를 마음껏 읽던 지난 시절은 얼마나 좋았는가. 코로나 전쟁 중이라 북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수 있지만 역시나 북 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북 카페 풍경. 북카페 벽에 작가들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월트 휘트만 등. 왜 뉴욕 작가 존 스타인벡과 오헨리 초상화가 없는지 늘 궁금하는데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커피는 주문하지 않고 커피 향 맡으며 3층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매달 신간 잡지를 읽고 여행서도 가끔 읽고 사진집도 보았는데 머나먼 님으로 변했다.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던지. 순간 그리움이 밀려왔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북 카페가 얼마나 특별한 공간인가. 헤밍웨이에 대한 책과 프랑스 여행서 등 내 마음에 꼭 드는 책도 보여 반가웠다. 북 카페에서 종일 책 읽고 지하철을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공연을 보러 갔던 지난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가. 맨해튼 나들이는 커피 한 잔이면 충분했다.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았는데 뉴욕이 잠들어 버렸다.
북카페에서 묘한 감정에 휩싸이다 서점을 나와 그린 마켓에서 파는 노란 해바라기 꽃과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린 마켓에서 해바라기 꽃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더 반갑다. 유니온 스퀘어에 상인들도 많았다. 지하철역 근처에는 체스를 두는 사람들도 많고 사람들이 많아서 뉴욕 분위기가 활기찼다. 거리 음악가의 색소폰 연주를 들으며 스트랜드 서점에 나도 모르게 갔는데 중고책 가격이 더 올랐더라. 1-5불에서 2-7불로.
헌책을 살피다 우연히 옴베르토 에코 작가의 흑백 사진을 보았다. 1995년 11월 11일 뉴욕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에게 <장미의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작가도 뉴욕 스트랜드 서점과 그리니치 빌리지 Cafe Reggio를 무척 사랑했다는 말이 있더라.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사 년이 되어가고 난 25년 전 사진을 보았다. 그때 난 어린 두 자녀 교육 뒷바라지하느라 무척 분주했다. 뉴욕에 올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생은 참 알 수가 없다. 현재의 코로나 전쟁도 알 수 없다. 25년 후 난 어떤 모습일까. 그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알 수가 없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찾는 것이 지금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복잡한 마음은 훌훌 털어버리고 오로지 내 일에 집중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점은 특별한 공간이다. 스트랜드 서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지하철을 타고 소호에 방문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휴대폰 맵을 열심히 보니 소호가 첫 방문이나 보다 짐작을 했다. 프린스 스트리트에 내리면 딘 앤 델루카가 있는데 코로나로 문이 닫혔고 사랑하는 하우징 웍스 북 카페도 역시 문이 닫혀 커피 한 잔 마실 곳이 없었다. 지하철역 프라다 매장 근처에는 젊은 홈리스들이 거리에 누워 있으니 참 슬픈 일이다. 소호 레스토랑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 풍경은 영화 같이 예쁘다.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소호 머서 키친도 오픈했는데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서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요즘 레스토랑 업계도 죽을 맛이라고 한다. 코로나 정말 무섭다.
코로나로 조용한 소호 풍경
명품 숍 많은 소호는 늘 여행객으로 넘쳤는데 코로나로 여행객 발길이 뚝 끊기니 항공사도 호텔도 여행사도 모두 죽을 맛. 소호도 전 보다 더 조용하다.
한가로이 산책을 하면서 걷다 딸과 함께 방문했던 초콜릿 숍도 지나쳤다. 보스턴 여행 가서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초콜릿 맛이 일품이다. 새해 첫날 브루클린 코니 아일랜드에 방문했는데 너무너무 추워 소호에 핫 초콜릿 마시러 갔다. 가격이 무척 비싼데 딸이 냈다.
소호에서 그리니치 빌리지로 걷다 인기 많은 <카페 단테>를 지났다. 라이브 재즈 공연을 감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뉴요커들도 많았다. 1915년에 오픈한 인기 많은 카페에 오래전 방문했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계속 그리니치 빌리지를 걷다 노벨상을 받은 밥 딜런이 무명 시절 기타 하나 들고 뉴욕에 와서 노래를 불렀던 클럽도 지났는데 공사 중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시 걷다 옴베르토 에코가 사랑한 카페도 지나쳤다. 오래전 큰 맘먹고 방문해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전설적인 카페 역사도 깊다.
보헤미안들이 거주했던 그리니치 빌리지는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장소.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지나 다시 유니온 스퀘어 역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젊은 홈리스가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데 마음이 바빠 지하철역으로 가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 사라지고 없더라. 아들 또래의 젊은이라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코로나로 젊은 실직자도 많고 무슨 사연이 있을 거 같다. 맨해튼에 가면 커피 한 잔 사 먹는데 평소와 달리 커피 한 잔 사 먹지 않아서 홈리스에게 1불 정도는 줘도 되는데 아픈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장을 보러 가서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입해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김치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한인 마트 삼겹살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서 꽤 오랜만에 먹었다.
한밤중 서부에 사는 딸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 아들과 함께 마중을 나갔다. 시내버스를 타고 자메이카역에 도착해 기다렸다. 에어 트레인 1회 비용이 7.75불. 공항에서 에어 트레인 타고 나올 때 지불해야 하는데 낯선 사람이 투덜투덜 불평을 했다. 너무 비싸단 눈치였다. 정말 그렇다. 뉴욕 물가와 교통비 모두 비싸다. 항상 지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물처럼 돈이 사라진다. 딸을 만나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훨씬 지났다. 길고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