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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천천히 내 길을 간다

by 김지수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정말 조용한 토요일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두 자녀와 함께 동네 커피숍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숍에 손님도 많았다. 늘 그러하듯 서부에서 온 딸 덕분에 라테 커피를 마셨다. 평소 비싼 커피를 마실 형편이 아니라서 눈을 감는다.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주는 무료 커피. 2년 전부터인가 더 이상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추억의 커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하루 종일 몇 편의 글쓰기를 하고 늦은 오후 동네 호수에 두 자녀와 함께 조깅하러 갔다. 작은 거북이들은 일광욕을 하니 참 귀엽다. 서서히 뜨거운 태양이 식어가는 팔월 말.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다. 영수증은 쌓여가고 렌트비 낼 시간이 다가온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지. 비싼 렌트비만 아니라면 뉴욕이 좋을 텐데... 정말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 그래도 참고 견디고 산다.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아도 힘든 세상인데 이방인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더구나 나 혼자도 아니고 어린 두 자녀 뒷바라지했는데.


IMG_8850.jpg?type=w966 딸이 트렁크에서 꺼낸 선물


딸은 트렁크에서 선물을 꺼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준 모자와 작은 수첩과 스타벅스 동전 지갑 등. 모자를 버리려다 엄마 주려고 가져왔단다. 자주 운동하니 모자가 필요하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참 어려운 길을 딸 혼자의 힘으로 개척하니 늘 미안하다. 엄마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수가 없는 형편이다.


마음 같아서 아들과 함께 서부에 여행을 다녀오면 좋을 텐데 현실은 복잡하니 눈을 감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가족을 도와줄 사람의 손길은 없고 내게 도움을 달라고 손을 내민 사람이 있다. 싱글맘이 뭔지 모르고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경험하면 알 텐데 싱글맘 길은 정말 고독하니 추천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와서 사는 것은 하루도 눈물 흐르지 않는 날이 없는데 얼마나 힘든지 모른 사람이 많다. 내가 뉴욕에서 간다고 하니 궁전에서 귀족처럼 산다고 착각하니 웃고 말았다. 대학 시절에도 부모님 덕에 편히 잘 산다고 착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후 결혼하니 역시나 마찬가지. 그런 말 들으면 언제나 웃는다.


대학 시절에도 용돈 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어. 평생 쉬지 않고 일했다. 내게 주어진 하늘 같은 의무를 다하고 뉴욕에 왔다. 복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복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라. 그런데 난 아니다. 그런다고 누굴 탓해. 제발 날 힘들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일도 아닌데 내게 하라고 하면 참 답답하고 슬프지. 지금은 우리 가정도 물에 빠져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사는데 내게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면 어떡해.


서로서로 기대고 살자고? 서로서로 필요할 때 도와주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한쪽에서 파워를 행사하고 명령하면 누가 좋아해? 세상에 파워에 휘둘린 것을 좋아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받는 것을 좋아한 사람은 많지만 항상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면 좋아할 사람 한 명도 없지. 서로 관계가 좋아야 기대고 의지하고 살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존중이다. 서로 존중해야 가능하다.


왕과 노예의 관계는 모두 싫어한다. 세상에는 항상 왕이나 된 듯 명령한 사람이 있다. 하늘 아래 인간은 평등하더라. 왜 명령을 할까. 서로 존중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존중이 뭔지 모른 사람도 많다. 항상 자신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 입장을 모른 사람도 많다. 무슨 일이든 입장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까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피하고 싶은 유형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이 있다.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지. 의지할 사람이 어디에 있어? 친정아버지는 먼길 떠나고 힘들고 고통받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을 부른다. 제발 저의 가족을 지켜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oPKUORegLJKzF_1jpXbKJVo5Zgo 보스턴 찰스 강



뉴욕에 온 것도 나 혼자만의 결정이었고 내 삶은 언제나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남 부러워한 적도 없고 오로지 내 일에 집중한다. 매일 나들이하면서 글쓰기 하고 운동해도 시간이 부족하니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쓸 에너지도 시간도 없다. 한국에서도 난 늘 조용히 지냈다. 과거도 현재도 늘 바빴다. 왜냐고? 의무는 우주처럼 많고 내 일은 언제나 뒷전이고 이제 하얀 머리카락 휘날리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도 행복이나. 삶은 늘 복잡하고 현실은 지옥 친구 같지만 그래도 늘 행복을 찾는다. 슬픔 속에서도 행복이 있으니까.


남과 비교는 절대 금물. 내 주위 친구들은 정말 잘 산다. 모두 무에서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만들었다. 나도 반쪽 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 않을 텐데 어느 날 첼로가 부서지고 안개가 걷히고 운명의 종소리 듣고 수천 마일 멀리 떠나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뿌리 깊지 않아서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뉴욕에 아무도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은 보석 같은 길이 아니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눈물과 고통 속에서 꿈을 위해 하루하루 깨끗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한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내 삶을 누굴 탓하리. 하늘이 준 운명을 내 힘으로 어떡할 수도 없는데. 슬픈 운명과 춤추며 고독하게 산다.


평생 실패는 밥 먹듯 했다. 그래도 괜찮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할 수 없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얼마나 많아.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안 할 텐데 매일 꿈을 꾸며 도전을 하니 실패도 잦다. 가장 큰 실패는 반쪽 난 가정! 정말 하늘이 쪼개질 일이지. 수 십 년 뒷바라지하고 빚 갚고 드디어 자유로운 날이 오니까 파산되었으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숨 쉬고 산다. 그런 환경에 산다는 것은 고통과 눈물이더라.


천천히 내 길을 가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노란 달도 보고 초록 나무도 보고 향기로운 꽃향기도 맡고 바람도 느끼고 그늘의 고마움도 알고 늘 자연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눈부신 햇살이 좋다. 매일 보석 같은 하루를 만들고 싶다. 묘지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조용히 내 길을 걷고 싶다. 고독한 날 위로하기 위해 매일 글쓰기를 한다. 내가 날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지. 심장 터지는 슬픈 일을 이야기한다고 해결되지도 않으니까 침묵을 지킨다. 소곤소곤 나 자신과 이야기하면서 글을 쓰면서 고독을 달랜다. 가끔은 험난한 폭풍 속에서 견디고 버티는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딸 초대로 보스턴 여행을 갔지/ 보스턴 찰스타운 해당화 꽃이 필 때 아름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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