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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Sep 28. 2020

보스턴 가을 여행 마지막 날_노란 숲을 보며

2020년 4박 5일 가을 여행 마지막 날 (9월 21일-25일)

2020년 9월 25일 금요일 


4박 5일의 보스턴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 아침 호텔에서 일어나 뉴욕에 돌아갈 가방을 정리했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흐를까. 마지막 날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찰스강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할까 봐 조깅을 가지 않았다. 



보스턴 맛집 타테


호텔 근처 보스턴 코먼 앞에 있는 타테 맛집에 가서 빵과 커피를 구입하고 보스턴 코먼에 가서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점심시간 무렵 호텔 체크 아웃을 해야 하니 마음이 바빴다. 호텔 근처 일식 레스토랑에서 스시를 주문해 간단히 점심을 먹고 체크 아웃하고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지난 월요일 이른 아침 시간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출발하는 여행객은 소수였는데 금요일 정오 무렵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떠나는 여행객 숫자는 스무 명 정도 되었다. 메가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창밖으로 노란 숲이 보여 놀랐다. 지난 월요일은 분명 초록숲이었는데 며칠 사이 숲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란 숲을 보며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와서 롱아일랜드 딕스 힐(Dix Hills)에 정착했다. 첫해 뉴욕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딸이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롱아일랜드 해프 할로우 힐스 고등학교에 매일 픽업하면서 노란 숲을 볼 때도 <가지 않은 길> 시를 떠올렸다. 사실 한국에서는 노란 숲을 본 적이 없고 붉게 물든 단풍을 보았다. 왜 시인이 노란 숲이라 표현했는지 궁금했는데 뉴욕에 와서 노란 숲을 보았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작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내 삶은 영락없이 <가지 않은 길> 시 같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니 훗날 내 인생도 달라졌다. 하지만 없는 길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한 번도 책에서 영화에서 본 적도 없는 고통의 길이었다. 남들이 걷는 길을 따라 하는 것도 힘들지만 없는 길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무한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여는 힘은 꿈과 열정과 노력과 고통이다. 뉴욕에 대한 정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우리 가족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다. 


가끔씩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남편이 존재한다면 뉴욕에서 우리 가족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시댁과 친정이 우리에게 도움을 줬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미국인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친구가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좀 더 일찍 뉴욕에 왔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만약 뉴욕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입시생 두 자녀를 데리고 온 사십 대 중반 싱글맘의 무게는 우주 보다도 더 무거운 형벌이었다. 외국어로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들과 경쟁을 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던 두 자녀. 딸은 뉴욕에서 9학년 과정부터 시작하니 지옥행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 엄마는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두 자녀 스스로 힘으로 해결해야 했던 극한 체험. 고통이 우리 가족을 키웠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서 어린 두 자녀랑 함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것은 고통의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다. 눈만 뜨면 쉼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고통의 샘물을 마셨다.


내가 뉴욕에 간다고 결정했을 때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을 때 도전장을 내밀고 뉴욕에 오고 말았지만 우리 가족이 뉴욕에서 받은 고통은 아직은 침묵 속에서 잠들고 있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벽을 만났다. 삶이 지속되는 한 넘어야 할 벽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도 늦게 깨달았다.  내일 어디서 문이 열릴지 닫힐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희망과 꿈을 먹고 살고 있다. 


평생 살아오면서 수많은 문제들을 혼자의 힘으로 해결했기에 뉴욕에서 삶을 아직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한국에서 편안한 삶을 보냈다면 뉴욕에서 버티지 못하고 진즉 한국에 돌아갔을 것이다. 고통이 또 다른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인생은 혼자다.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결국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살면서 깨달았다. 너무나 특별한 상황은 말해도 이해를 하기 어려우니 침묵이 더 편하다. 


메가버스가 뉴욕을 향해 달리는 동안 노란 숲을 보면 지난 삶을 돌아보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딸이 잠든 엄마를 깨워 놀라 눈을 뜨니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4박 5일 보스턴 여행 동안 매일 눈만 뜨면 소동이 일어나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 기쁜 소식을 받으니 잠시 슬픔이 사라졌다. 


금요일 주말이라 고속도로는 정체되고 예정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려 뉴욕에 도착했다. 메가버스 종착지가 7호선 종점역 근처에 내려주니 편하고 좋았다. 평소 FIT  뮤지엄 근처에 내려주니 오래오래 걸어서 7호선 지하철을 타는데 쉽게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지만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한인 마트에 갔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과 김치였다. 우리 가족은 한식을 사랑한다. 뉴욕에 와서 식사를 하니 살 거 같았다. 

 

호텔 숙박비와 식사비 등 대부분 딸이 지출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코로나 전쟁 중이라 어려운 결정을 하고 보스턴에 다녀왔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참 복잡하고 복잡한 가운데 내렸던 결정이었고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여행은 늘 좋은데 항상 예산에 신경을 써야 하니 피곤하지만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여행이 좋다. 경비와 시간문제로 여행을 자주 가기 어렵지만 가능하면 더 자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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