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2020년 10월 7일 수요일
New York Botanical Garden (뉴욕 보태니컬 가든)
장미가 날 기다린 줄 몰랐다. 꿈인가 생시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장미와 입맞춤을 했다. 날 오래오래 기다렸다고 말하는 장미꽃. 시월에 장미꽃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장미꽃 향기 맡으며 장미 정원에서 산책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진즉 방문할 걸 그랬지. 후회가 밀려왔다. 코로나가 찾아와 한동안 식물원이 문을 닫았다. 매년 봄에 열리는 난초 축제(The Orchid Show)를 문 닫기 직전 보고 그 후로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다. 딸이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이 메트 뮤지엄과 뉴욕 식물원이라고. 뉴욕에 오면 식물원에 가자고 해서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방문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서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천상의 정원을 만났다.
매년 생일 즈음 찾아가는 브롱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 록펠러 로즈 가든(Rockefeller Rose Garden)에서 '어린 왕자 장미'도 보고 '향기로운 산들바람 장미'도 보고 '아마존 장미'도 보고 '나폴레옹 장미'도 보고 '파리의 달빛 장미'도 보고 '지구 천사 장미'도 보고 '여름날의 추억 장미' 등도 보았다.
내 생일은 6월 장미 축제가 열린 시기에 있는데 늦게 장미 정원에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 눈부신 가을날 하늘은 파랗고 산들바람 불고 장미꽃 향기와 함께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언덕에 핀 야생화 꽃이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식물원에 장식된 황금색 호박들도 너무 예뻐 가을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카페도 문을 열어서 라테 커피 한 잔 마시며 돌아다녔다.
중세 미술관 관으로 명성 높은 클로이스터는 카페가 문을 닫았고 소수의 방문객들이 있었는데 반대로 뉴욕 식물원에는 방문객들도 가득했다. 가을 햇살 비치는 들판이 너무 아름다워 당장 회원권을 구입해 매일매일 방문하고 싶었다.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자주 방문하지 않고 매년 봄에 열리는 난초 축제와 장미 축제는 꼭 보러 가곤 했는데 매일매일 방문해도 좋겠더라.
야생화 꽃 향기 가득한 들판에 살고 싶어라
요즘 코로나로 상당히 불편하다. 방문객 숫자를 통제하니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수요일은 뉴욕시 주민은 무료로 식물원 입장이 가능하다.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하고 방문했고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었다. 단 특별 전시회는 예외다. 반드시 유료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브롱스에서 진짜 이탈리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Little Italy (리틀 이탈리)가 명성 높아서 딸과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장미 정원에서 산책할 무렵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 가득하더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가방에 우산도 없는데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식물원에 가려면 상당히 오래 걷고 시내버스도 환승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피자를 포기했다.
수년 전 브롱스 맛집에서 피자를 구입해 집에 가져오느라 대소동을 피운 기억도 있다. 명성 높은 곳이라서 한번 방문했는데 맛집이라 하니 두 자녀에게 주려고 나도 모르게 구입했는데 문제는 교통이 편리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꽤 걸어야 하고 다시 시내버스를 환승해야 하니 복잡하고 시내버스는 만원.... 버스 기사가 내 피자를 보고 맛있는 피자라고 하니 웃었다. 두 자녀는 그 피자를 다시 한번 먹고 싶다고 하는데 차가 없어서 늘 망설이다 식물원에 간 김에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식물원 가는 길도 험난하다. 시내버스가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듯 운전이 아주 거칠다. 그런다고 기사에게 불평하기도 어려워 참는다. 어릴 적 한국에도 비포장 도로가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차를 타 본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식물원 가는 길 브롱스 화이트 스톤 다리를 건너는데 전망이 무척 아름다워 딸은 그곳에 살고 싶단다. 그 아름다운 다리에 슬픈 추억이 있다. 정착 초기 우리 가족은 롱아일랜드에 살았는데 차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지역이어서 운전 면허증이 시급한데 브롱스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서 시험도 못 치르고 집에 돌아왔던 날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플러싱 한인 자동차 학원에 등록해 운전 연수받았고 학원에서 등록한 브롱스 시험장에 갔는데 학원에서 대여한 자동차가 상업용 보험에 들지 않았는데 시험장 직원에게 들통이 나서 자격 상실이라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한국에서 20대 중반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해 경험이 많으나 혹시나 시험에 떨어질까 염려가 되어 아주 비싼 연수비 주고 운전 교습을 받았다. 시간당 연수비가 40불씩. 그런데 허탕이라니! 상업용 보험이 비싸서 학원에서 일반 보험에 들었단다.
돈이 뭐라고 대소동을 벌이는 것인지. 유학 초기 차 없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택시를 이용하면 좋았을 텐데 요금이 너무 비싸 걸어 다녔다. 그래서 차가 시급했는데 그렇게 슬픈 일이 일어났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왜냐면 너무너무 고통을 받았으니까. 롱아일랜드 딕스힐(Dix Hills)에서 플러싱에 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하루가 지나간다. 정착 초기 아무것도 없는 땅에 필요한 물품 구매하기까지는 고인돌 시대 같았다. 21세기 살다 고인돌 시대로 돌아가니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지나면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정착 초기 추억은 슬픈 기억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