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10.16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유명 관광지 튀일리 정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파리 등 9개 지역에 대해 오는 17일부터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통행을 금지하기로 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정부가 파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야간 통금령을 내린다. 독일은 술집의 야간 영업을 금지하기로 했다. 가을 들어 유럽에 코로나 광풍이 다시 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확산세가 거셌던 지난 봄과 달리 유럽 각국 정부는 시간대별, 지역별로 ‘족집게식’ 방역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올겨울 의료대란을 피하려면 전면적인 봉쇄령을 다시 내려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14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및 영국에서 코로나 확진자는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7만8000명씩 늘었다. 인구 100만명당 하루 확진자 수를 따지면 미국을 추월했다고 WSJ는 전했다. 유럽이 미국을 넘어선 건 지난 3~4월 유럽에서 코로나 피해가 속출할 때 이후 처음이다. 유럽에선 여름 휴가철에 이동이 잦아지면서 본격적으로 환자가 늘어났는데 좀처럼 확산세를 누르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방역을 게을리하는 세태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AFP 연합뉴스
결국 각국 정부가 밤 시간에 흥청망청하지 않도록 칼을 빼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마르세유·리옹 등 인구 규모로 프랑스 1~3위 도시를 포함해 모두 9개 지역에 대해 오는 17일부터 야간 통행금지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밤 9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거리를 쏘다닐 수 없게 된다. 어기면 벌금이 135유로(약 18만원)이며, 반복적으로 어기면 벌금이 최고 1500유로(약 200만원)에 이를 수 있다. 일부 프랑스 언론은 파리 시내의 야간 통행금지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점령기와 1950년대 알제리 전쟁에 이어 세 번째이며, 전쟁 중이 아닌 시기로는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독일도 16개 모든 주의 총리들이 14일 모여 술집의 야간 영업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내일의 삶을 위해 젊은이들에게 파티 없이 지낼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네덜란드가 이달 14일부터 한 달간 모든 식당과 술집을 폐쇄하고, 이탈리아는 실외든 실내든 사적인 파티를 금지했다. 스페인은 수도 마드리드와 근교에 대해 등교·출근·진료 등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막았다. 강력한 봉쇄 조치의 여파로 15일 장중 2% 안팎의 증시가 급락했다.
그러나 특정 시간대, 지역, 업종을 겨냥하는 ‘맞춤식’ 방역으로는 의료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에 따르면 이달 들어 유럽에서 코로나로 입원한 환자는 코로나 사망자가 쏟아지던 지난 4월보다도 25%가량 많다. 프랑스는 이달 들어 중환자실의 40% 이상이 코로나 환자로 채워지자 보건 당국이 일선 병원에 급하지 않은 다른 수술을 미루라는 지시를 내렸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종합병원인 라파스병원의 중환자 병상 30개는 모두 코로나 환자가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감염병 전문의 톰 윙필드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 환자 입원이 급증해 병상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긴 겨울을 앞두고 있어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역별로 3단계 맞춤식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전면 봉쇄령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정 지역·업종에 제한을 가하는 방역 정책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어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 요식업계는 야간 통행금지 조치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어떤 지역이 통제 지역이 되는지를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스페인의 경우 지난 2일 마드리드에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려고 했지만 마드리드 지역에서 강력 반발하는 바람에 일주일 늦은 지난 9일에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확산세를 방치하다 크리스마스 연휴 시즌에 이동 제한 조치가 내려지면 이에 대한 불만이 정치권에 집중될까 봐 각국 정부가 봉쇄령을 서두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린다 볼드 영국 에든버러대 공공보건학과 교수는 “최근 나온 각국의 통제 정책은 시간을 벌어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이라며 “각국의 의료 시스템이 겨울에도 작동할 수 있도록 미리 단속하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파리에 상주하며 유럽 소식을 전하는 유럽특파원입니다. 유럽에 관심 있는 분들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