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가을비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시월의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동네 카페에 갔다. 매일 아침 루틴이 되어버린 모닝커피. 딸이 엄마를 위해 헤즐러 커피를 주문해 테이블 앞으로 가져왔다. 오래오래 전 한국에 원두커피가 보급되던 시절 믹스 커피 대신 헤즐러 커피와 블루 마운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맨해튼 음대 지하 카페에도 헤즐러 커피를 파니 가끔 사 마시곤 했다. 매년 이맘때 즈음 학생들 무료 공연도 많이 열리고 위대한 음악가들 무료 마스터 클래스도 보러 가곤 했는데 코로나로 멈춰버려 지난날이 꿈만 같다. 아, 그리운 지난날들. 유럽과 미국에서도 코로나 재확산이 심각하단 언론 기사를 읽으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파리는 외출할 때 이동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현실이 공포 영화처럼 변했다. 무사히 위기가 지나가야 할 텐데.. 날씨도 추워져 감기도 조심해야겠다.
딸이 플로리다에 사는 대학 친구 소식을 전했다. 대학 졸업 후 플로리다로 옮겼는데 현재 살고 있는 집주인이 30세인데 신혼여행 가서 플로리다로 돌아오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딸 친구는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고. 아주 좋은 집인데 렌트비는 아주 저렴해 좋았다고.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주인 아버지가 오셔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셨다고 전했단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미국도 비싼 학자금을 융자받아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30세 플로리다에 멋집 주택을 소유하니 얼마나 능력 많은 젊은이인가. 그런데 먼 길로 떠났다. 삶이 복잡하지만 매 순간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년 전 친정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실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일하다 즐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 얼마나 슬픈가. 그때 매일 소소한 행복을 찾고 즐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안 좋은 상황을 불평만 하고 있으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때가 되면 이뤄지는 것도 있다.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하겠지.
브런치 메뉴는 닭불고기와 샐러드였다. 전날 동네 마트에서 세일 중인 닭고기를 구입했다. 간장과 마늘즙과 양파와 파와 당근과 설탕을 넣어 양념해 뜨거워진 프라이팬에 볶다 먹기 직전 참기를 넣으면 된다. 아들이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40대 중반 파란만장한 재판을 마치고 유학 준비를 할 때도 눈물겨웠다. 힘든 영어 시험 보러 서울로 가서 시험 보고 집에 돌아오면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한 밤중.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어렵게 대학원에 진학할 영어 성적을 받아 유학원에 찾아갔는데 수속 비용이 너무 비싸 충격을 받고 밖으로 나왔다. 꼭 뉴욕으로 가야만 한다고 하니 수 십 개의 대학원에 지원하라고. 그럼 1천만 원도 금세 날아가겠더라.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순간 참아야지.
할 수 없이 직접 유학 준비를 했다. 게으른 내가 수 십 개의 대학원에 어떻게 지원하겠어. 딱 세 곳만 지원했다. 무조건 뉴욕에만 간다고 하니 주위에서 시골에 있는 대학원에도 지원하라고 말했다. 뉴욕이 아닌 곳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에세이 교정은 영어 회화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어디서 만날까요?라고 물으니 빵집에서 만나자고. 그런데 캐나다 출신 영어 강사는 직접 고른 빵을 계산한다고. 내가 얼른 계산하고 빵집을 나왔다. 강사가 수고비도 받지 않고 교정을 해주어 고맙다고 닭불고기를 만들어 도시락을 주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만난 캐나다 강사는 아직도 한국에서 살까. 세월이 많이 흘러갔으니 그도 늙어가겠다.
뭐든 해 보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더라. 40대 중반 뉴욕에 유학 간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 교직에 종사하다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아이들 양육하는 평범한 아줌마가 왜 뉴욕에 간다고 하니. 터무니없는 말 하지도 마라고 했지. 돌아보면 아득한 길이었지. 최근 토로토에 사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영어 시험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두 자녀 돌보며 바이올린 레슨 하며 주부로서 임무 다하며 시험공부 준비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하기 전에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른다.
수요일은 브롱스에 있는 뉴욕 보태니컬 가든과 동물원에 방문할 수 있다 (무료/기부 입장). 코로나로 물론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커다란 눈을 가진 사슴과 목이 긴 기린이 그리워 동물원에 가고 싶은데 나의 에너지는 집안에서 쿨쿨 잠들었다. 오래전 동물원에도 자주 갔는데 겨우 동네 카페에 다녀오고 오후 장 보러 갔다. 세일하는 단감 박스를 보니 내 눈이 호수처럼 커졌다. 차가 없으니 오래오래 걸어야 하는데 세일 중인 단감 박스와 오징어와 조개와 카레라이스 가루와 두부 한 모 등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엔 역시나 단감이 최고!
해가 저녁 6시경이면 지니 캄캄하다. 종일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려 밤하늘도 어두울 거라 기대했는데 산책하러 밖에 나가니 노란 달이 어두운 밤을 비추고 있었다. 예쁜 달이 "힘내요, 힘내요"라고 말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밤하늘에서 속삭이는 달님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