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말 센트럴 파크 & 모닝커피와 추억들

by 김지수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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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나무가 가을 노래를 하는 센트럴파크에 달려갔다. 가을은 연인들의 계절인가. 젊은 연인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원 벤치에 "사랑하는 R, 우리 여기서 만나요."라고 적혀 있어서 연인이 늘 만나는 장소나 보다 짐작했다. 애완견을 데리고 혼자 산책하는 뉴요커도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뉴요커도 호수 근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거리 음악가도 작은 강아지와 뽀뽀를 하는 뉴요커 할아버지 등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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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단풍으로 물든 가을 나무 아래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도 보았는데 어찌나 젊던지 난 너무 늙어버렸구나 생각이 들어 좀 슬프기도 했다. 세월이 날 기다려주면 좋을 텐데 세월은 그냥 달려가더라. 올해는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려 쟃빛으로 물든 마음을 달래려 매일 아침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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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연주하는 거리 음악가가 내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니 좀 미안했다. 아름다운 색소폰 소리를 들었지만 거리 음악가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것은 내 마음뿐. 매달 지불하는 렌트비만 아니라면 뉴욕이 천국에 가까울 텐데... 아 삶은 얼마나 복잡해... 참고 견디고 기다리고 사는 세월이 얼마나 긴지... 딸이 렌트비를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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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날개 하나 잃어버려 세상의 한 복판 뉴욕에 와서 어린 두 자녀와 힘겨운 날을 보내게 되었는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나. 젊은 날 운명을 몰랐지. 사색을 좋아하고 운명과 춤추며 고독한 세월을 보낸 베토벤도 만나면 좋았을 텐데 내 정신은 딴 데 팔렸나. 고개 숙이는 베토벤은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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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단풍을 보며 걷다 벤치를 보는데 60세 할아버지 생일 축하 메시지와 4명의 자녀를 둔 엄마가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란 글도 보여 내 나이를 돌아보고 서울에 사는 대학 단짝 친구가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이순에 가까워지는데 무얼 했나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쉽기만 하는 세월. 힘든 뉴욕 삶이라 친정 부모님을 뉴욕에 초대하지도 못했는데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한국에 계시는 친정 엄마는 건강이 안 좋아 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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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친구는 교직 생활하며 남편 뒷바라지하며 4명의 자녀를 키우니 얼마나 힘들까. 요즘은 결혼을 해도 자녀를 출산하지 않기도 하고 1명만 출산해서 길러도 힘들다고 하는 세상. 1명과 2명의 차이도 크고 2명과 3명의 차이도 정말 크고 1명과 4명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클 것이다. 물론 어떻게 자녀를 키우는지에 따라 다른 면도 있을 것이다. 4명 가운데 두 명의 딸들이 서울대 특차로 입학했단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자녀 교육이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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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한없이 노란 단풍 속에서 뒹굴며 무지갯빛 비눗방울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여행을 했다. 하늘에는 걱정도 근심도 고통도 절망도 없더라. 언젠가 세상을 하직하면 몸도 마음도 영혼도 자유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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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눈부신 파란 하늘이 날 유혹하니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에 갔는데 뉴욕의 가을은 역시나 센트럴파크. 센트럴 파크 옆에 집이 있다면 매일 달려갈 텐데 난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몇 차례 환승한다. 그래도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시기 시월 말. 예쁜 단풍을 1년 내내 보면 좋을 텐데 불과 1주일 내지 십일 정도. 해가 비쳐야 더 예쁜 단풍을 볼 수 있으니 365일 가운데 불과 며칠이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멈추고 달려간다. 순간을 붙잡지 않으면 예쁜 단풍을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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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0일 무제한 교통 카드를 구입하지 않아서 자유롭지 않은 나의 외출. 1번 사용 시 2.75불을 내니 마음이 무겁다. 무제한 교통 카드가 있다면 브루클린에도 달려갈 텐데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말썽을 부리는 교통 카드 기기. 교통 카드를 충전하려고 시도했는데 자꾸만 에러가 났다. 다시 시도, 다시 시도, 다시 시도... 직원에게 말하니 날 도와줄 수 없단다. 참 답답한 사건. 다른 사람이 같은 기기를 이용하는데 O.K.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기기. 너마저 날 싫어하니...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가서 교통 카드를 충전하려고 시도했다. 역시나 실패. 다시 시도. 세 번째 시도에서 충전을 했다. 괜히 심술을 부리는 기기 덕분에 시간만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런다고 맨해튼에서 플러싱 집까지 걸어올 수도 없어. 그런다고 비싼 택시를 탈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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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에서 지하철을 타고 달리는데 창밖으로 오래전 7호선에서 만났던 에콰도르 출신에서 온 거리 음악가를 보았다. 신발 수선공이었는데 여름에는 손님이 없어 너무 힘들어 거리 음악가가 되었다는 남자. 종일 지하철에서 노래를 부른 것도 힘들다고 하더라.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지. 퀸즈 잭슨 하이츠에 산다고 했던 남자인데 오랜만에 보았다. 그가 서 있던 지하철역은 뉴욕 남교회와 묘지가 보인 곳이다. 마음이 무거울 때 늘 날 위로하는 묘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묘지를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너무나 많지. 말하지 않으면 내가 천국에 산다고 하니 웃는다. 정말 슬픈 일은 늘 침묵을 지킨다. 삶이 얼마나 슬프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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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변함없이 딸과 함께 동네 카페에 가서 모닝커피와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딸 덕분에 매일 아침 럭셔리한 아침을 맞는다. 오렌지와 블랙베리와 딸기와 키위가 든 맛있는 빵을 먹으며 문득 오래전 전방에서 살던 추억이 떠올랐다. 아이 아빠가 전방에서 근무할 때 급여가 무척 작았고 그때 아들을 임신했는데 빵이 먹고 싶었는데 비싸서 매일 빵집에 가서 눈으로 보고만 집에 돌아왔다. 대위 월급이 당시 42만 원이었던가. 30만 원을 용돈으로 가져가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라고. 그렇게 살았다. 5일장에 가서 미역 줄거리와 갈치 사고 전방 PX에 가서 생필품 구입하고 가끔 건빵도 사 먹고. 딱 소설 속 주인공. 그 무렵 학교에 휴직계 제출하고 전방에 갔고 통장에는 비상시 사용하려고 모아둔 돈이 있었지만 빵을 사 먹지는 않았다. 아이 아빠 급여는 충분하지 않아서 생활비도 부족했고 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피아노 레슨 하며 받은 돈으로 내 피아노 레슨비와 테니스 레슨비를 대고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그때 서점에 박완서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이 보였다. 휴전선 근처 전방에는 딱 1년 머물렀는데 아는 사람도 없으니 책을 읽고 레슨 받고 어린 딸을 키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고독하게 살고 있다. 내 고독은 스스로 치유하면서. 돌아보면 힘들고 슬픈 일도 너무너무 많았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며 살았다. 과거도 현재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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