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종일 하늘은 흐리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침 해는 7시 20분경 뜨고 저녁 6시가 되면 해가 지는 시월 말. 어느새 하얀 겨울이 다가오나. 딸과 함께 모닝커피 마시러 카페에 가서 음악 들으며 이야기 나누다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는데 날씨가 추워져 혹시나 저렴한 찜용 갈비가 있나 선반을 봤는데 앙상한 뼈와 비계가 보여 구입하지 않았다. 지난번 1팩에 11불인가 주고 구입해 두 끼를 먹었는데 그날은 행운이 찾아왔나 봐. 삼겹살도 파운드당 13불인가. 비싼 뉴욕 물가.
물가가 계속 오르니 장 보기도 겁난다. 찌게용 풀무원 두부도 안 보이고 유기농 두부만 보여 할 수 없이 1모에 2불이나 주고 구입했나. 몇십 센트 차이지만 작지 않다. 오랜만에 조기 두 마리도 구입해 가을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김치찌개와 조기구이로 브런치를 먹었다. 두부가 너무 비싸서 아주 작게 잘라서 조금만 넣고 끓였다. 플로리다 올란도에 여행 가서 주위에 버거와 피자 파는 가게만 있어서 호텔에서 디너를 먹는데 일식집에 가니 미소국에 넣은 두부 크기가 너무 작아 놀랐던 추억이 생각났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물론 더 큰 충격은 2008년 경제위기였다. 그 후로 미국 서민들 삶은 너무나 달라졌다.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기. 롱아일랜드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이웃도 실직자 되어 아파트 뜰에 가서 담배 피우는 것도 보았다. 빌딩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법이라서. 그 후로 물가와 렌트비는 하늘을 향해서 오르더라.
생선이 몸에 좋다고 하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단 생각이 든다. 조기 2마리 가격은 지난번 구입한 갈비와 같다. 갈비는 두 끼를 배부르게 먹었지만 조기는 맛만 본다. 식사하고 냉장고에 든 빨간 사과를 꺼내 칼로 자르니 속이 썩었다. 다시 한 개를 꺼내었는데 역시나 썩었다. 세 번째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겉은 예쁜데 속은 썩어 속이 상했다. 겉만 보이니 문제다. 속이 보였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텐데. 평범한 내 눈 덕분에 썩은 사과를 돈 주고 구입했다. 어떻게 눈의 시력을 높일까. 겉만 보면 안 되는데 여전히 나의 시력은 번지르한 겉만 본다. 겉과 안이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한 번 속고 다시 속고 또다시 속는 바보 같은 나.
가을비 내리는 오후 이웃집 정원사는 쉬지 않고 작업을 하니 소음이 요란했다. 집중하기 정말 힘들어 우산을 쓰고 호수에 다녀왔다. 가을비 내리는 날 호수는 고요했다. 낙엽들이 수북이 쌓인 숲을 걸었다. 코로나가 찾아와 힘들었던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는 시월 말. 플러싱 주택가에도 핼러윈 장식이 보인다. 뚝뚝 떨어지는 가을비 소리 들으며 비에 젖은 시월의 장미꽃과 낙엽들과 풀들도 바라보았다. 빗방울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동네 호수와 숲도 참 예쁘다. 정이 들어서 그런가. 기러기떼와 거북이 떼도 보고 우리 가족의 추억이 많은 호수. 처음에는 센트럴파크만 예쁜 줄 알다 늦게 동네 호수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미국 예찬론자는 아니고 아직도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서서히 조금씩 미국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지만 뉴욕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공감한다. 거대한 미국을 어찌 하루아침에 알 수 있겠어. 한국을 떠나 뉴욕에서 맨 밑바닥 신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우리 가족처럼 힘들게 사는 이민자들이 눈에 보였다. 만약 내가 한국과 같은 신분이라면 가난한 이민자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겠지. 뉴욕에는 눈물을 먹고사는 슬픈 이민자들이 참 많다. 이민을 오면 한국에서 신분은 마법처럼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는 경향이 있다. 상류층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관심조차 없다. 눈물을 먹고사는 이민자는 눈물을 먹고사는 이민자가 보인다. 처지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동병상련!
오후 6시가 되면 해가 지니 캄캄하다. 아파트 뜰에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시각 딸은 인도 음식이 먹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저녁 식사는 인도 음식이었다. 수년 전 댕스 기빙 데이 보스턴에 여행 갔을 때 처음으로 인도 음식을 먹었는데 내 취향은 아니어서 엄마는 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니 많이 주문하지 마라고 부탁했다. 저녁 7시경 도착한 인도 음식은 의외로 맛이 좋았다.
퀸즈 아스토리아에서 온 음식이라니 놀랐다. 난 인도 식당이 많은 잭슨 하이츠에서 왔는지 알았다. 퀸즈 아스토리아는 그리스 이민자들이 많고 식사비가 저렴하니 좋다고 하는데 가끔은 구경 가지만 두 자녀와 방문할 때를 제외하고 식사한 적은 없다. 인도 음식은 딸이 주문했고 엄마는 맛있게 먹었다. 향신료 강한 인도와 태국과 말레이시아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데 두 번째 시도는 성공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기온이 뚝 떨어져 걱정이 된다. 걱정이 좋은 건 하나도 없는데. 다름 아닌 코로나 때문이다. 환절기 감기몸살과 싸운 것도 힘든데. 시월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브 몽땅의 고엽 노래도 생각난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그리운 사람들이 무척이나 그리운 아름다운 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