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2일 일요일
노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어느새 홀리데이 시즌이 다가와 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온다.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돌아와 동네 마트에 감자와 샐러리 사러 갔는데 행복한 새해 보내세요(Happy New Year!)란 가사가 들려왔지만 다른 해와 달리 마냥 기쁘지 않았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과연 2021년은 행복한 새해가 될까. 변이성 많은 바이러스 백신을 믿어도 될까.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단시간에 만드는데 믿어도 될까. 백신이란 것은 예방차원인데 무슨 소용이람.... 코로나 때문에 아이다호 감자 가격도 50% 이상 인상되어 얼굴이 찌푸려진다. 감자 하면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나. 감자 먹는 사람들 작품이 있지. 왜 천재를 알아보지 못해 사후 100년이 지나 인정받게 되었을까. 과거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감자를 먹고사나 보다.
코로나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서점도 사라질까 걱정이다. 북 카페가 있어서 평소 이용하곤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30분 시간제한이라니 몹시 불편하다. 잠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식사하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내게는 책을 읽는 공간이었는데 답답하다.
그래도 한동안 북 카페를 열지 않았는데 지난 11월 초 서점에 갔는데 카페가 오픈하니 마비된 몸이 서서히 풀린 듯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알겠는가. 매일 읽고 배워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 세상에는 천재들도 너무나 많고 난 평범한 사람이니까. 천재와 비교하면서 살 필요도 없지. 내게 주어진 길을 따라서 천천히 가다 보면 묘지에 도착할 테니까. 그렇게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숨 쉬기 힘든 세상.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03∼1519년.
친절한 모나리자 바리스타는 요즘 안 보여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늘 레귤러커피만 주문하니 바리스타 얼굴 표정이 변하는데 얼굴에 예쁜 미소를 짓는 바리스타는 언제나 내게 친절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 작품이 떠올라 '모나리자 바리스타'라고 별명을 지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지옥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도 재정 상태가 악화되어 모나리자 작품을 판다고 하던데 누가 샀을까. 중학교 시절 엽서로 프랑스 인상파 그림과 모나리자 작품 등을 보며 기뻤는데 막상 루브르 박물관에 가니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벽에 걸린 모나리자 작품 실제 크기는 아주 작고 방탄 유리로 덮여 망원경이 없는 내 시력으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가 20년 전. 20년 동안 내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삶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날그날 행복하게 살자. 뜻대로 안 되는 것은 포기하고 마음 비우고 기다려야지. 하늘의 뜻을 어찌 알겠어.
일요일 오후 유니온 스퀘어에서는 코로나 시위를 하고 있더라. 마스크가 바이러스에 도움도 되지도 않고 언론은 코로나 사망자와 확진자 수를 과장해서 발표한다고. 정말 그런가 몰라. 내가 어찌 알겠어. 민주당도 아니고 공화당도 아니고 자유가 소중하다고. 음모론이 맞는지 아닌지는 세월이 흘러야 알 수 있을까. 파우치는 백신 이익의 50%를 가져간다는 말도 언론에 있던데... 파우치가 50년 동안 일하는 동안 에이즈,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 등 엄청 많은 바이러스가 생겼다. 면역에 꼭 필요한 비타미 C와 비타민 D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는다. 미국 백신 가격은 어찌 하늘 같을까. 난 개인적으로 코로나 백신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동안 코로나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아들과 함께 산책을 했다. 황금빛 은행잎들이 멀리 떠나 버려 아쉽지만 아직도 11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거리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다. 저녁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도 했다. 두 대의 건조기는 고장이 났더라. 그래도 무사히 세탁을 마쳤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백만 년 만에 소고기 장조림도 만들었다. 두 자녀가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