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한국 살기 좋은 나라
4위

북 카페 & 센트럴 파크

by 김지수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반스 앤 노블 북 카페가 오픈한 것을 안 뒤로 시간이 되면 서점에 가곤 한다. 화요일 딸은 먼저 아지트로 떠나고 난 늦게 5번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도착해 책을 읽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서점 근처 메디슨 애비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어퍼 이스트 사이드로 갔다. 맨해튼 시내버스를 타면 갑자기 난 젊어지는 샘물을 마신다. 승객들이 백발노인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난 아주 젊게 느껴져 혼자 웃는다. 반대로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면 가끔 내가 가장 고령인 듯 짐작이 되기도 한다.


메디슨 애비뉴는 명품샵이 즐비하니 눈이 즐겁다. 부자라면 명품 쇼핑을 할 텐데 부자가 아니라서 눈을 감는다. 아주 오래전 아들이 여름 방학 동안 음악 캠프에 가려는데 바이올린 선생님 승용차를 이용해야 해서 한인 교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우리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면서 교회 예배를 보러 온 교인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의 대부분 명품백을 들고 있어서 난 외계인이라고 느꼈다. 한국 사람들이 부자들이 아주 많은가 봐. 난 형편에 맞지 않으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항상 아끼고 절약하고 살아도 삶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힘들다. 명품은 비싼 값을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내 형편에 무리가 되면 난 구입하지 않는다. 내가 맨해튼 나들이 때 사용하는 가방은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사용하던 책가방이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들고 다닌다. 두 자녀는 엄마도 멋진 백을 구입하라고 하는데 부자도 아니니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하곤 한다. 낡고 오래된 가방에는 책 한 권과 뉴욕 교통 카드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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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가 힙한 르팽 쿼티디엔(Le Pain Quotidien)



딸과 아지트에서 만난 시각은 오후 1시.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비싸지 않은 레스토랑 찾느라 요즘 애를 쓴다. 메디슨 애비뉴에 있는 인테리어가 힙한 르팽 쿼티디엔(Le Pain Quotidien)에 도착해 체온을 재고 빈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렸다. 조명 빛도 아름답고 가을철이라 호박으로 장식이 되어 더 예쁘다. 한국에서는 호박으로 장식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뉴욕은 호박 장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딸은 샐러드를 난 팬케이크를 주문해 먹는데 딸이 내가 먹은 음식이 한국에서 먹은 호두빵이 생각난다고. 그 말을 듣고 한국 호두빵이 팬 케이크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르팽 쿼티디엔 팬 케이크가 맛있게 보인 것은 접시에 요리를 담는 기술이 다르다. 호두빵 먹을 때는 종이 봉지에 담아서 그냥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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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센트럴 파크에 가서 잠시 산책하고 딸은 아지트로 돌아가고 난 다시 북 카페로 가는 도중 센트럴 파크에서 예쁜 풍경 사진을 찍다 플라자 호텔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미드타운 록펠러 센터 근처에 내려 서점에 도착했는데 2층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가려는데 직원이 코로나로 문이 닫혔다고. 북카페가 오픈하니 난 화장실도 다시 오픈한 줄 착각했다.


딸이 일을 다 하고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가자고 하니 난 북 카페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참고 책을 읽다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잠시 동화 나라 구경하고 5번가에서 지하철을 탔다.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만나 함께 플러싱으로 돌아와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맨해튼이 집이라면 고생을 안 할 텐데 부자가 아니라서 맨해튼에 집이 없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 후 코로나 관련 뉴스를 읽다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 4위라고 적힌 기사를 읽었다. 문득 오래전 블로그에 올린 이민에 관한 글로 독자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기억이 났다. 당시 헬조선이란 단어가 유행했다. 한국만 떠나면 만사 해결이란 분위기가 짙었다. 내가 적은 글에는 이민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글에 적은 내용은 직접 보고 읽고 듣고 느낀 점을 자세히 기록했다.


만약 내가 이민자가 아니라면 가난한 이민자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민 1세로서 살다 보니 한국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읽고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적었음에도 한국사람처럼 열심히 살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잘 산다는 뉘앙스였다. 한국에서 열심히 해도 안 되는데 이민을 오면 그냥 쉽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민은 언어와 신분 문제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능력이 뛰어난 소수 사람들은 예외가 되겠다. 보통 사람 이민 1세가 아주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이민 2세는 이민 1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누구나 이민을 오면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하지 이민 가서 놀고먹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학생들이 다음 시험에는 꼭 좋은 성적을 받아야지 하지만 실제로 좋은 성적을 받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민 생활은 공부보다 훨씬 더 힘들다.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과 박사 과정 학생들과 협조해서 논문을 쓰지만 내가 쓴 글은 현장을 보고 느낀 점이었다. 거짓이 없는 진실 자체였는데 내 글에 대해 오해를 하니 그만큼 한국에서는 이민에 대해 잘 모른 듯 짐작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 본 이민자들 삶을 중심으로 적었다. 렌트비와 물가가 비싼 뉴욕은 세계에서 몰려오는 곳이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그 속에서 이민 1세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산다. 한국보다 훨씬 더 안 좋은 환경에서도 참고 견디고 산다. 물론 물가와 렌트비 저렴한 곳에서 사는 이민자와 뉴욕과는 다를 것이다.


내 브런치에도 이민과 유학에 대한 글을 모아 올렸다.



그런데 지금 지구촌은 코로나 전쟁이고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 4위에 올랐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이민 생활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이 뭔지 알기 어렵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 마음 알기 어렵고 반대로 가난한 사람 역시 부자 사람 마음 알기 어렵듯이 외국 생활하지 않으면 힘든 이민 생활에 대해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 보고 이민 가면 다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지금 코로나로 부자 나라 미국의 속이 겉으로 드러났다.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는 미국은 빈부차가 크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민자들이 참 많은 나라다. 부자 나라 미국에 가면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 뉴욕에 살지만 뉴욕이 뭔지 느끼지도 못하고 종일 일만 하고 사는 사람도 많은 도시다. 맨해튼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밤 11시경에 들어가는 아들 친구 엄마 말처럼 "뉴욕은 위를 바라봐도 끝이 없고 아래를 봐도 끝이 없다"는 거처럼 더 실감 나게 표현하기도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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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51uGniLndE_i7ehZIkypJsZO0 센트럴 파크 11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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