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일 목요일
날씨가 추워졌다. 겨울나무가 손짓하는 겨울이다. 몸도 마음도 추운 계절. 어느새 황금빛 예쁜 옷을 벗어던지고 앙상한 나무 가지만 남았다. 항상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살아야겠다. 아침 일찍 딸과 함께 동네 카페에 가서 라테 커피와 빵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파리바게트 한인 카페인데 직원은 한국인은 단 한 명 나머지는 한국인이 아니다. 여직원은 체온계를 가져와 우리의 체온을 재고 기록을 하며 연락처를 적는다. 코로나 시대에 사니 상당히 불편한 일은 연거푸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와 식사 준비하고 샤워하고 나의 사랑 북카페에 달려가 하얀 머릿속을 채웠다. 서점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은 얼마나 많은지.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을 거 같은데 나의 리딩 속도는 빠르지 않다. 머릿속에 잡념이 생기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잡념은 건강에 안 좋다. 늘 깨끗하게 머릿속을 청소해야 하는데 음악처럼 좋은 게 없는데 요즘 코로나로 천재들의 공연을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북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들으며 책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만약 뉴욕을 떠나면 가장 기억에 남을 장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카페. 날 키운 곳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어찌 뉴욕에 대해 안 단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면 즐길 수 없다. 안만큼 세상이 보이고 안만큼 즐길 수 있다. 모르면 세상은 무채색.
석양이 질 무렵 아들과 함께 운동을 하려고 북카페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보통 편도 3-4번 환승. 맨해튼이 집이라면 편리할 텐데 플러싱에 사니 나들이가 쉽지 않다. 왕복 교통 시간 동안 책을 읽어도 무진장 많이 읽을 텐데 가난한 서러움인가.
집에 돌아와 갈치조림과 매운탕을 끓였다. 생선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가격이 비싸 늘 그림이 되곤 하는데 딸이 어릴 적 한국에서 먹은 갈치조림 맛을 잊지 못하고 한인 마트에 가서 생선회와 갈치를 구입해 돌아왔다. 싱글맘으로 두 자녀를 뉴욕에서 교육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겨울나무가 되어 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무와 감자와 양파를 넣고 만든 갈치조림은 정말 맛이 좋았다. 추운 날이라 생선 매운탕 맛도 최고. 역시 한국 음식이 좋다.
아들과 함께 석양을 보며 운동도 했다. 운동만큼 건강에 좋은 것도 없다고 한다. 학교에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지낼 적에도 하루 30분 정도는 꼭 운동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뉴욕에 와서 괴물 같은 외국어로 공부할 무렵에는 운동을 하지 못했지만 다시 운동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매일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진즉 쓰러져 병원 신세로 전락했을지도 몰라. 미국처럼 의료비 비싼 나라에서는 아프다는 것은 사망통지서다. 매일 하루 1만 보 이상 걷는 것도 건강에 참 좋다.
한 해의 끝자락이니 올해 무얼 했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보스턴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라 마음 무거운 여행이었는데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여행 경비는 딸에게 신세를 졌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오랜만에 김광석 노래가 듣고 싶어 진다. 뉴욕에 오기 전 매일 저녁 날 위로하던 그의 노래를.
난 서른 즈음에 무얼 했나. 그때는 뉴욕에 올 거라 상상도 못 했다. 무척이나 힘든 시절이었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학교로 출근하고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돌아와 캄캄한 밤을 비추는 가로등 보며 고독과 외로움과 몸부림치던 시절. 종일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나면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왕복 4시간 통근을 했지. 차도 있었는데 여자니까 운전하면 안 된다고 하니 버스를 타고 통근했다. 하루하루는 고통 속에 숨 쉬며 살던 시절들. 힘든 삶에 대해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사람도 드물었다. 친구들도 주위 사람들도 내 속은 모르고 날 부러워만 했으니까. 내가 침묵을 지키면 늘 천국에 산다고 하더라. 지난날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진즉 뉴욕을 떠났겠지.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세월.
고통이 고통으로 이어지다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뉴욕에 떠나오고 말았지. 아... 힘든 세월이었어. 생의 위기 한 복판 뉴욕에 간다고 결정했으니 돌아보면 대단한 용기였다. 고통이 극심했기에 특별한 결정을 내렸던 거 같다. 평생 편안하게 살았다면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