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북카페
2020년 12월 6일 일요일
무지무지 추운 날 하얀 눈이 금방이라도 펑펑 쏟아질 거 같았다. 맨해튼에 가려고 브런치를 먹고 집 밖에 나와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집 근처 시내버스는 이미 떠나 오래 기다려야 하니 차가운 겨울바람맞으며 걷다 집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참새 수다를 들었는데 나의 장난기가 발동해 참새들 소리를 흉내 내니 겨울나무에서 노래 부르던 참새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참새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침묵을 지켜서 나 혼자 속으로 웃었다.
참새들을 보면 보스턴에서 봤던 참새들이 생각난다. 보스턴 여행 가서 하버드 교정에서 점심시간에 푸드 트럭에서 베트남 음식을 사 먹던 날 옆에 있던 참새들이 함께 나눠 먹자고 귀찮게 굴어서 혼났다. 하버드 대학 참새들이 얼마나 통통하던지. 그리고 보스턴 백베이 중심가 쉐라톤 호텔 근처 빵집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도 참새가 내 음식을 호시탐탐 노려서 혼났다. 빵 한 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식사하는데.
또, 생각나는 방송국 프로듀서. 참새수다 아이디로 활동 중인데 내가 평생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댓글을 남기니 섬뜩하다고 답변이 왔다. 삶이 뜻대로 되어야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 올 거라 상상도 못 했다. 누가 알겠어. 우린 한 치 앞을 모른다. 코로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올해 코로나가 찾아와 지구를 전쟁터로 만들 줄 알았을까.
집에서 떨어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도착 맨해튼에 가는 7호선에 탑승해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서 환승해야 하니 기다렸는데 얼마나 춥던지. 혹독한 겨울에는 환승역이 반갑지 않다. 금방 지하철이 오면 좋겠지만 주말은 특히 오래 기다릴 때가 많다.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1분이 1시간 같은데 오래오래 기다렸다.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주말에는 더 오래 기다린다. 맨해튼 나들이 때 편도 최소 3-4회 환승하는데 환승역마다 오래 기다리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얼마나 걸려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맨해튼 업타운 다운타운 등 위치에 따라 다르고 몇 차례 환승하니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추운 바람맞으며 기다리다 유니온 스퀘어에 가는 지하철을 탔다. 얼마 후 나의 목적지 유니온 스퀘어에 도착. 요즘 딸이 무척이나 바빠 함께 움직이지 않으니 나의 루틴으로 돌아왔다. 교통 카드 한 장으로 세상 구경하는 고독한 방랑자의 아지트는 북카페. 귀족들이 사는 어퍼 이스트 사이드 분위기도 좋지만 보통 사람 풍경을 볼 수 있는 유니온 스퀘어도 좋다. 유니온 스퀘어 북 카페는 읽고 싶은 책과 잡지를 골라 읽을 수 있어서 더 좋다. 핫 커피 한 잔 마시며 책과 떠나는 여행이 좋다. 서점에는 손님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낯선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유니온 스퀘어 파크도 예쁘다. 겨울 햇살이 비추면 더더욱 예쁘다.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으면 더 예쁘듯이 공원도 예쁜 햇살 받으면 더 멋지다. 오랜만에 유니온 스퀘어에서 가까운 스트랜드 서점에도 갔다. 날씨가 추우니 한걸음도 걷기 힘든데 힘을 내어 방문했는데 서점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참 대단한 사람들. 헌책 값이 코로나 전 보다 인상되었더라. 어떤 책이 있나 살펴보다 '칼 막스' 책과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란 책이 눈에 띄었다. Who Moved My Cheese? 는 뉴욕에 오기 전 영어 원서로 읽은 책이었다. 천재 칼 막스가 무지무지 가난하게 산 것도 뉴욕에 와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혹독한 가난에 시달려 고통받았다고 하니 가슴이 아팠다. 엥겔스가 막스를 도와줬다는 것도 늦게 알았다. 다시 런던 여행 떠나면 칼 막스가 묻힌 묘지나 찾아가 볼까.
서점에서 나와 스트랜드 거쳐 지하철을 타고 몇 차례 환승해 플러싱으로 도착해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는데 함흥차사.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고통이다. 하필 이리 추운 날 기사님은 어디로 갔는지. 난방이 되는 곳에서 기다리면 좀 더 나을 텐데 차가운 바람맞으니 힘들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잠시 후 내 뒤에 전에 플러싱에서 봤던 등이 구부정한 한인이 나타났다. 3년 전 플러싱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보상금을 기다리고 있는 분인데 혹시 보상금 받으셨는지 묻자 아직도 안 받았다고 하셨다. 대개 교통사고는 3년이 지나 보상을 받는다고. 대형 관광버스가 뉴욕 시내버스를 들이받는 대형 사고가 나서 3명이 숨지고 병원으로 옮겨 수술도 받으셨다고. 36년 전 뉴욕에 와서 미용실 재료 배달, 청과물 배달, 세탁소 등 이거 저거 다 해보셨다고. 맨해튼 세탁소에서 일할 때 사고를 당해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세탁소 주인이 거짓말을 해서 아주 적은 배상금을 받아 그 후로 홈리스로 지낸다는 슬픈 이야기를 하셨다. 3년 전 대형 사고 보상금만 받으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안 하고 편히 산다고. 참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늦게 도착한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버스 기기가 내 승차권을 삼켜버렸다. 30일 무한 정액권인데. 뉴욕에 살면서 처음으로 당한 일이라 멍한데 백인 기사는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 뒤로 가라고 소리쳤다. 추운 날 오래오래 기다려 버스에 탑승했는데 다시 해프닝이 발생. 짜증이 하늘만큼 올라가야 하는데 참아야지.
일요일 아침에는 딸과 함께 동네 호수에 갔다. 오리 떼와 기러기떼들이 사는 동네 호수를 보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