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8일 화요일
뉴욕의 겨울은 춥다. 꽤 추운데 아파트 난방이 잘 안되어 실내 기온이 10도 떨어져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하필 추울 때 난방이 안 들어오니 불편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유자차를 끓여 마셨다. 감기 기운이 감돌 거 같은데 딸과 함께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갔다. 플러싱 집을 구할 때 거의 1년 가까이 돌아다녀 힘들었는데 맨해튼과 꽤 떨어져 불편하지만 위치는 좋다. 가까운 곳에 호수와 공원도 있고 한인 마트도 있고 안정된 주택가라서 조용하고 깨끗하다. 아들이 플러싱으로 이사 간다고 하니 무척 걱정했다. 너무 더러운 동네라서 싫어한 눈치. 부자라면 맨해튼 부자 동네에 살 텐데 내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니 포기한 게 얼마나 많아. 눈 감고 그냥 산다.
뉴욕에서 집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렌트비는 하늘 같고 더럽고 공간도 무척 좁다. 그뿐 만이 아니다. 크레디트 카드 점수, 세금 보고서, 급여, 뉴욕 신분증(뉴욕 운전 면허증), 사회 보장 번호(한국 주민등록 번호) 등. 거기에 반드시 부동산을 통해서 구하는 집이 있다. 소개비는 한 달 렌트비다. 미국은 이사하기가 겁난다. 서비스 비용이 하늘 같아 이사 비용이 너무 비싸 포장 이사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물론 부자들은 다르지만. 부자들 살기 좋은 나라 가난한 자들은 눈물을 먹고사는 뉴욕. 뉴욕에서 두 차례 이사했는데 죽을 고생을 했다. 일하고 공부하면서 혼자 짐 싸니 눈물이었지.
오리 떼와 기러기떼와 하얀 갈매기 몇 마리 보고 집에 돌아와서 브런치 식사 준비하고 집안일하고 식사하고 맨해튼에 가려고 시내버스 타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로컬 7호선에 탑승했는데 맞은편에 앉은 백인 노부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무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코로나 전쟁이 시작된 지 9개월이 지났어요.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인데 해결책이 없어요. 아직도 아무도 몰라요....
럭셔리 외투를 입은 여자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녀 남편에게 말하는데 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우한 연구소일 거 같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종 차별이 참 무섭다. 맨해튼 나들이할 때 플러싱에 도착해 집에 돌아가려고 시내버스 기다릴 때 추운 겨울날 오래오래 기다릴 때가 있다. 그때 만난 백인 할머니는 항상 스카프를 즐겨 쓰는 분인데 날 괴물 바라보듯 바라본다. 플러싱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 때 그분이 검은색 비닐봉지에 든 짐을 두고 내게 저 멀리 떨어지라고 악을 쓴다. 참 어이없다. 차가운 눈빛으로 바날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 좋아한 사람은 없다. 혐오의 눈빛을 누가 좋아한단 말인가. 그분도 자주자주 만나는데 하필 같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우윳빛 같은 뽀얀 그녀의 피부로 짐작에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 같다? 뉴욕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 피부가 우윳빛 같고 의상에 신경을 쓴다. 대학원 시절 만난 경제학 교수님도 아일랜드 출신이셨다. 그때 아일랜드 사람들이 의상에 몹시 신경을 쓴다고 하셨다.
무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백인 할머니를 마주 보며 어처구니없는 순간 에콰도르 출신 거리 음악가가 빨강 가방을 등에 메고 기타 하나 들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와 노래를 불렀다. 오래전 7호선에서 만난 음악가는 잭슨 하이츠에 산다고. 신발 수선공을 하다 거리 음악가로 변신해 뉴욕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종일 노래를 부르는데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라고 했다. 세상에 쉬운 직업이 없지.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하고 난 그를 기억하고. 커피 마시려고 가방에 담아둔 지폐를 꺼내 주었다. 그는 내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하면서 떠났다.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내려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려 환승. 유니온 스퀘어 역에서 내려 사랑하는 북카페로 들어가니 좋았다. 집은 너무너무 추워 힘든데 서점은 난방이 잘 되니 좋다. 뉴욕 겨울 날씨가 지옥이지. 그런데도 귀족 학교에 가면 난방도 잘 되어 따뜻해 좋고 천재들 공연도 무료로 감상하니 좋았는데 요즘은 공연도 볼 수 없으니 나의 놀이터가 사라졌어. 얼마 전 줄리아드 학교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던데 열어보지도 않았다. 기부금을 내란 것인지 수업을 받으란 것인지 몰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다시 악기 레슨을 해도 좋을 텐데 뉴욕 삶이 삶이 아닌데도 참고 견디고 사는 세월.
최근 기사에 의하면 14일부터 다시 봉쇄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겁난다. 뉴욕 홀리데이 분위기가 특별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걷다 보면 기분이 하늘로 올라가. 예쁜 홀리데이 장식을 봐도 좋다. 록펠러 크리스마스트리는 뉴욕의 상징이자 전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하지. 12월 2일 온라인으로 점등식 행사가 열렸다고. 수년 전 라이브 행사 보려 가다 죽는 줄 알았어. 경찰들이 진입을 막아 근처에도 못 갔지. 명성 높은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도 볼 수 있는데 내겐 기회가 없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여행객도 줄어들어 크리스마스트리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 만들었다고 하니 감사하지.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별은 300백만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만들었다고. 난 오래전 사이판 공항에서 스와로브스키 목걸이 하나 샀는데 300백만 개라니 역시나 세계 거부는 달라. 돈 벌려면 록펠러만큼 벌어라.
록펠러 센터 맞은편에 명품 백화점 삭스 피프스 애비뉴가 있는데 매년 홀리데이 시즌 레이저쇼를 하는데 인기 많은 행사라 구경꾼들이 몰려온다. 코로나 전쟁이라서 예년만큼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복잡했다. 예쁜 성을 보면 기분이 좋아. 잠시 마음을 비우고 홀리데이 시즌을 즐긴다. 항상 열리는 행사가 아니니 순간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지. 맨해튼 미드타운 브라이언트 파크의 황금빛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집에 돌아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역시나 밤에 봐야지. 낮과 밤의 느낌이 달라.
화요일 아침에는 딸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갔는데 봄에 핀 제비꽃과 노란 민들레꽃을 보며 인사를 했어. 추운 겨울에 왜 제비꽃이 피는 건지. 지난번 센트럴 파크에 비바람 부는 날 찾아갔더니 역시나 꽃이 피어 놀랐는데 참 이상하지. 저녁 식사 후 아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하루 약 1만 4천 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