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룩주룩

북카페는 닫고 지하철은 텅텅 비고

by 김지수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14일 뉴욕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지구촌은 코로나 전쟁. 지구촌이 공포의 실험실로 변하고 있는데 과연 6개월 후 1년 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정말 백신이 구세주라면 얼마나 좋을까. 반대로 만약 음모론의 말대로 돈을 벌기 위해 코로나 전쟁을 일으켰다면 보통 사람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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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zNeQVPC42jszewxCufipVYUy4 뉴욕 북카페가 닫혀 슬프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뉴욕 식당 실내 영업이 오늘부터 금지되어 슬프다. 겨울비 내리는 월요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북카페에 도착했는데 북카페도 닫혀 가슴이 서늘했다. 지난주와 달리 서점도 조용하고 음악도 흐르지 않아 마치 시체 같은 분위기였다. 불과 며칠 사이 서점 분위기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왜 음악도 켜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음악이 흐르지 않으니 더더욱 이상했다. 북카페가 오픈한 것을 안 것은 11월 초다. 불과 한 달 정도 자주 북카페에 가곤 했다. 그런데 다시 잠들어 버렸다.


뉴욕주 법에 의하면 서점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안 되는데 코너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분도 계셨다. 정확히 몇 명의 직원이 일하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작은 숫자의 직원이 보여 서점 직원도 감원한 거 같았다. 이래저래 실직자만 늘어나겠지. 서점 밖으로 나올 때 제복을 입은 직원이 밖으로 나간 손님을 세고 있었다. 아마도 하루 손님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는 듯 보였다. 이러다 정말 서점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코로나 전 언제든 북카페에 가면 잡지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는데 사랑하는 공간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월요일 아침 두 자녀와 함께 동네 베이글 샵에 가서 커피와 베이글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고장 난 우산을 쓰고 걸었다. 고장 난지도 몰랐는데 우산을 펴니 고장이 났더라. 원래는 호수에 가려다 겨울비가 많이 내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베이글과 커피를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두 자녀 고등학교 시절에 갔던 여름 캠프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딸은 뉴욕에 온 지 만 1년이 되던 여름 방학에 예일대 캠프에 갔는데 식사가 형편없다고 불평했는데 나중 알고 보니 그래도 예일대 식사가 나쁘지 않았다고. 아들은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메도우마운트 음악 캠프(Meadowmount School of Music)에 갔는데 역시나 식사가 형편없어서 친구들이 불평을 많이 했다고. 이작 펄만, 조슈아 벨, 요요마, 정경화 등이 참가한 명성 높은 음악 캠프인데 왜 그리 식사가 형편없었는지 몰라. 주말에는 아들 바이올린 선생님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 중국식으로 식사를 해서 좋았다고. 음식도 참 중요하다.


뉴욕에 올 때 몰랐던 미국 교육비. 두 자녀는 중고교 과정을 공립학교에서 마쳐 학비는 들지 않았지만 매년 여름 방학 때 캠프에 참가하니 천문학적인 교육비가 들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교육비였다. 예일대 캠프도 아들이 참가했던 메도우마운트 캠프 비용도 비쌌다. 자본주의 나라 미국 부자들은 영화보다 더 화려하지만 반대로 서민들 삶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세상 어디다 마찬가지지만. 미국에 가면 모두 잘 산다는 말이 아니란 의미다.



IMG_6808.jpg?type=w966 전기 요금이 하늘처럼 비싼 뉴욕 질린다.


베이글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콘에디슨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어 직원과 통화를 했다. 전화를 건 이유는 엄청난 전기요금 때문에. 지난주 토요일 통지서를 받았는데 지난달 연체 요금 합해서 200불을 넘게 내라고. 놀라서 자세히 전기 빌 고지서를 보니 지난달 200불 정도 나왔는데 내가 100불만 내고 100불을 내지 않아서 연체 금액 포함하니 200불이 되었다.


원래 매달 전기 요금 고지서를 받는데 지난달은 받지 못했다. 처음이었는데 전화를 하려다 귀찮아서 그냥 인터넷으로 100불을 보냈다. 1 베드룸 전기 요금이 어떻게 200불이 된 건지. TV도 없고 세탁기도 없다. 코로나 전에는 문화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뉴욕에서 우리 가족은 숨 쉬고 그냥 산다. 정말 소설 속 주인공으로 변했다. 다 운명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싱글맘으로 두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어찌 쉬울까. 싱글맘 사정은 싱글맘이 알고 이민자 삶은 이민자가 잘 안다. 경험해야 알 수 있고 멀리서 듣는 것과 현실은 정말 다르다. 좋은 이야기도 자주 듣고 싶지 않은데 슬픈 이야기를 어찌 자주 말할까. 침묵이 편하고 좋다. 어렵고 복잡하고 한없이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산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잘 산다. 그러니 연락을 안 하게 된다. 환경이 극과 극으로 다르면 소통이 어렵다. 친정 동생들과 친정 엄마도 뉴욕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상상도 못 한다. 말해도 모른다. 이민자 삶과 싱글맘 삶이 뭔지 모른다.


두 자녀와 나 모두 컴퓨터는 사용하지만 그런다고 그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 온다. 평균 100불은 전기 요금 70불 +가스 요금(부엌에서 사용하는) 30불이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니 코로나로 집에서 지내니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나온단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지.


지난 7월 말경부터 난 거의 매일 맨해튼에 간다. 우리 집 환경은 항상 같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집.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블랙프라이데이에도 쇼핑을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구입하지도 않는다. 전기난로가 있어도 전기 요금이 무서워 켜지도 않는다. 아무리 추워도 그냥 참고 지낸다. 해가 지면 전등을 켜고 두 자녀와 난 컴퓨터를 사용할 뿐이다. 식사 준비하기 위해 가스를 켠다.


지난 3 월부터 서부에서 딸이 와서 함께 지내고 있다. 항상 같은 환경이고 특별히 사용한 게 없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직원에게 소리를 쳤다. 직원은 고객 상담하는 분이라서 내 전화가 짜증이 났을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엄마에게 왜 콘에디슨 전기 회사 직원에게 화를 내냐고 말했다. 내가 만약 부자라면 1000불의 전기 요금도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난 한국에서도 60평대 살아도 뉴욕처럼 비싼 전기 요금을 낸 적이 없다.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한 것은 나의 실수다. 고쳐야 하는데 감정이 격해지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간다. 어려운 환경이라서 100불의 전기 요금이 백만 불처럼 크게 느껴져 좌절이 되었다.


뉴욕 전기 요금 너무너무 비싸다. 가난한 사람의 뉴욕 현실은 지옥에 가깝다. 왜 전기를 정부에서 관리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아들은 이 제도가 맘에 들지 않으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비싼 전기 요금으로 속이 터져 직원에게 소리높이 말하며 지난달 고지서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런다고 전기 요금이 낮아진 것도 아닐 텐데 참 답답하다. 무슨 일로 이 많은 전기 요금을 내야 하는지.


뉴욕에 올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왔지만 살다 보니 미국이 한국보다 모든 면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각각 장단점이 있고 뉴욕은 문화면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천국이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려 너무너무 슬프다. 코로나 전에는 뉴욕의 문화가 특별하니 비싼 렌트비와 생활비를 지출하고도 살만한 이유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삶의 질이 떨어져 뉴욕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유니온 스퀘어 서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오랜만에 다운타운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갔다. 뉴욕에서 가장 멋진 지하철역 오큘러스를 지났다. 작년과 달리 크리스마스 장식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많지 않고 비교적 조용했다. 브룩필드 플레이스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곤 했는데 역시나 코로나로 열리지 않는다. 지난 3월 두 자녀와 함께 탱고 공연을 보러 갔고 그때 하버드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공부하는 딸의 친구가 미국이 특별한 시기라고 하면서 학생들 모두 교정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고.


그때는 공식적으로 코로나 비상사태 발표하기 전이다. 그 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 브룩필드 플레이스에서 댄스 공연과 챔버 뮤직과 클래식 기타 공연 등 참 다양한 문화 행사를 보곤 했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만나는 쉐릴 할머니도 기타 음악을 좋아하셔 함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요즘 어떻게 지낸지 안부가 궁금한데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안 된다. 대학 시절 클래식 기타 반에서 활동했는데 수 십 년이 지나 뉴욕에 도착해 기타 공연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는 클래식 기타 음악을 정말 사랑했다.



IMG_6857.jpg?type=w966 뉴욕 오큘러스 멋지고 화려하다.


IMG_6859.jpg?type=w966 다시 뉴욕 지하철이 텅텅 비어 있다. 공포야 공포!



북카페와 브룩필드 플레이스를 거쳐 4차례 지하철을 환승해 플러싱 집에 돌아왔다. 지하철은 승객이 없어 분위기가 지난봄 같아 무섭기도 했다. 지난봄 코로나 소동으로 화장지 구입도 어려워 브롱스에 가서 어렵게 화장지를 구입하고 부엌 형광등 하나 사러 얼마나 고생했던가. 또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25센트 동전이 필요해 은행에 교환하러 갔는데 집 근처 은행이 사라지고 없고 다른 지점은 문을 닫아 멀리멀리 걸어서 겨우 은행 찾아 어렵게 동전을 교환했다. 뉴욕 삶이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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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861.jpg?type=w966 슬픔 가득하지만 노을은 아름답더라.


종일 겨울비가 내렸는데 늦은 오후 비가 그치고 아름다운 노을이 비쳤다. 내 삶도 비가 그치고 노을처럼 아름다우면 좋겠다. 슬픈 일이 너무너무 많아도 참고 견디고 그냥 산다. 한국에서는 집이 밖보다 더 좋았는데 반대로 뉴욕은 밖이 집보다 억만 배 더 좋다. 그래도 웃으며 행복하게 산다.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가난이 무얼 의미한 지 깨닫게 되었다. 신이 내게 준 선물이나. 사실 한국에서는 가난이 뭔지 몰랐다. 나도 40대 중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다 운명이야. 싱글맘 혼자의 힘으로 두 자녀를 뉴욕에서 교육하고 나니 난 겨울나무가 되었더라. 슬픔이 주룩주룩 흐르지.








맨해튼 브룩필드 플레이스


명품숍도 많고 맛집도 많은데

난 특별 이벤트 보러 가는 곳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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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830.jpg?type=w966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려서 사랑스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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