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맨해튼에서 2만보를 걷다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딸과 함께 맨해튼 헤럴드 스퀘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근처에 볼 일을 보러 간다고 하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난 메이시스 백화점 홀리데이 쇼윈도 장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매년 홀리데이 시즌 뉴욕 야경 투어가 명성 높다. 5번가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콜럼버스 서클, 콜럼버스 서클, 메이시스 백화점 쇼윈도 등. 삶이 복잡하니 백화점 카드도 없어진 지 오래고 헤럴드 메이시스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가지 않지만 매년 홀리데이 시즌 쇼윈도 구경을 하러 가곤 한다. 쇼핑 대신 쇼윈도 구경만으로 행복하니 내 마음은 어린이 같다.
오래전 아들이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때 연주회 시 필요한 나비넥타이를 학교에서 빌려서 착용하고 다시 돌려주었지만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나비넥타이를 사러 메이시스 백화점에 처음으로 갔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에 속하는데 나비넥타이가 없어서 놀랐고 나중 온라인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쇼윈도는 예년에 비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마도 더 적은 예산으로 준비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한다. 올해는 백화점 쇼윈도 가운데 5번가 삭스 피프스 애비뉴 쇼윈도가 가장 멋졌다.
그 후 근처에서 일을 처리하고 첼시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는 도중 수년 전 딸과 함께 발레 공연을 봤던 극장을 지나쳤다. 그때는 맨해튼 문화에 대해 잘 모를 때라서 딸을 위해 꽤 비싼 발레 공연 티켓을 구입해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에 갔는데 공연 수준이 너무 낮아 충격을 받아 그냥 밖으로 나왔다. 돈도 아깝지만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여행객 많은 뉴욕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다. 자주 공연을 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다. 세월이 흐르자 차츰차츰 맨해튼 문화를 알게 되고 무료 공연도 좋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코로나로 메트 오페라와 카네기 홀 등 공연을 볼 수 없어서 정말이지 아쉽고 아직도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헤럴드 스퀘어에서 첼시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꽤 오래 걸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레스토랑은 손님이 꽤 많았다. 가격이 아주 비싸지는 않았지만 카푸치노 커피와 와인과 메인 메뉴와 디저트를 주문하니 꽤 많은 돈을 지출했다. 물론 딸 지갑이 열렸다. 내 형편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 14일부터 맨해튼 레스토랑 실내 영업이 안 되니 귀한 식사였다.
딸 덕분에 근사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구글 본사도 지나치다 재즈 라이브 공연을 들었다. 첼시 카페에서 라이브 재즈 공연을 하니 딸이 우리도 커피 마시며 들을까 물었지만 방금 식사하고 커피 마셨다고 말하며 그냥 지나쳤다.
잠시 후 우리는 허드슨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배 속이 안 좋은데 맨해튼에 공중화장실이 드문데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딸이 휘트니 뮤지엄 근처 카페를 찾아냈다. 나 혼자 맨해튼 나들이하면 커피 한 잔 사 먹거나 아니면 종일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그냥 지내다 집에 돌아가곤 하는데 오랜만에 과식을 하니 속이 불편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미트패킹 지역에 있는 카페 분위기는 정말 근사했다. 딸 혼자 티를 사 먹고 난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허드슨 강변을 따라 산책하다 트라이베카 지역을 지나 소호로 들어가 걷다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하고 식사하고 아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일요일 아침 맨해튼에 외출하기 전에는 동네 카페에서 딸과 함께 커피와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쌀이 떨어져 마음이 급했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진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다. 쌀과 마늘과 김치와 양파 등을 구입해 택시를 불러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한인 기사에게 요즘 어떠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코로나로 지쳐간다고. 말할 것도 없이 경기가 안 좋다고 말씀하셨다. 한인 택시 회사에서 일한 지 14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난 처음 보는 분이었다.
장 보고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화분에서 봄동과 로즈메리를 봤다. 친정아버지가 무척 좋아하던 봄동을 보니 지난 추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친구분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중 아버지가 탄 차가 전봇대에 부딪혀서 차 안에 탑승했던 분들이 사고를 당하셨다. 우리 가족이 식당에서 갈치조림으로 식사를 하는 중 친정에서 걸려온 위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당뇨병 환자라서 수술이 더 어려웠고 꽤 오래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병원 생활을 하셨고 난 몇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친정아버지가 좋아하는 봄동과 채소를 가져다 드렸다. 그때 병원 생활을 하던 친정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오래 병원 생활하니 다른 거 몰라도 병문안은 꼭 가야겠다고. 혼자 병원에서 지내시니 너무 답답하다고. 아버지가 병원 생활하기 전에는 병문안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셨다고. 그렇게 직접 경험해야 안다. 남의 일과 내 일은 다르다.
한국에서 지낼 적 친정아버지는 단 한 번 입원하셨지만 두 자녀 할아버지는 수 차례 병원에 입원하셨고 그때마다 내 몫이 컸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하셨는데 난 두 자녀 특별 악기 레슨으로 무척이나 바빴다. 내 친구들은 내게 일어난 복잡한 이야기를 하면 늘 놀라곤 했다. 결혼 후 나를 위한 시간과 돈은 없고 의무와 책임만이 가득했다. 두 자녀 대학 졸업 후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누려본다. 지금 이 순간 아니면 언제 나를 위하겠는가.
또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 약 25000보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