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매일 아침 눈뜨면 따뜻한 유자차를 끓여 마시고 백합과 장미꽃이 든 화병 물 갈아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방은 아직도 냉동고처럼 춥다. 북극곰으로 변신해야 할까.
화요일 아침 딸과 함께 호수에서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난주 내린 하얀 눈이 꽁꽁 얼어 미끌미끌하니 걷기가 무척 불편했다. 반대로 플러싱 주택가는 하얀 세상으로 변하니 무척이나 예쁘고.
브런치를 먹고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서점에 들어가 책을 펴고 막 읽으려는 순간 딸에게 연락이 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예약이 어렵다고. 지난주 딸이 케이크를 예약한다고 하니 좀 더 찾아보자고 말했는데 금세 시간이 흘러 내일모레가 크리스마스이브. 코로나로 평소 자주 이용하는 메종 카이저와 부숑 베이커리 등 프렌치 카페가 문을 닫아 버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어디서 사야 할지 난감했다. 문제는 가격. 정말 비싸다. 20-30불대라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저렴하지 않아서 좀 더 찾아보자고 하다 마음 복잡한 일로 깜박 잊어버렸다. 딸이 꼭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고자 하는 눈치라서 서점에서 책을 읽기는 어려웠다.
하필 뉴욕 교통 카드도 무한이 아니고 30불어치만 충전했는데 난감했다. 집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구운 사람도 있던데 삶이 너무 복잡하니 케이크 구울 엄두가 안 난다. 생활이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야 케이크를 구울 힘이 나지. 산타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아.
유니온 스퀘어 서점 근처 유명한 빵집에 가서 혹시 케이크 있나 확인했는데 역시나 없었다. 초콜릿은 파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내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데 비싼 건 언제나 그림이야. 카네기 홀에서 만난 일본 여행객 할머니가 떠오른다. 일본에서 다양한 초콜릿을 팔지 않아서 선물하고 싶은데 어디서 사야 하냐고 물어서 맨해튼 5번가 초콜릿 샵을 알려줬는데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고. 뉴욕 여행 와서 매일 오페라와 뉴욕필 공연과 카네기 홀 공연을 봐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20대 영국 런던에 가서 1년 이상 살며 매일 공연을 보러 다녔다고. 같은 세상에 살지만 개인 삶이 무척 다르다. 뉴욕 여행 와서 매일 공연 보면서 내게 "나 뉴요커 같지 않은가요?" 하면서 웃었던 할머니는 매년 뉴욕 여행 와서 공연 보고 싶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데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5번가에 갈 에너지가 없다고 해서 카네기 홀 옆 마트를 추천했다. 뉴욕은 마트에서도 다양한 초콜릿을 판다. 이렇게 초콜릿 종류가 많아요? 하면서 눈이 호수처럼 커져 웃었지. 매년 홀리데이 시즌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 보곤 했는데 올해는 뭐야. 정말 그리운 카네기 홀. 음악가들은 무얼 하고 지낼까.
암튼 딸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찾아야 하는데 코로나 전에는 돈이 없지 물건이 없는 뉴욕이 아닌데 코로나로 영업을 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어디서 파는지 생각하다 지하철역에서 1주일 무한 교통 카드를 먼저 구입했다. 시간은 없고 여기저기 움직이려면 교통 카드가 필수. 크리스마스 이후 뉴욕도 다시 3월처럼 봉쇄할지 모른다고 하니 며칠 전 어렵게 30불만 충전했는데 무한 교통카드가 필요했다. 그 후 소호로 달려갔다.
가끔씩 찾아가는 소호. 늘 갤러리에 가곤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케이크를 찾아야 하니까. 혹시나 Balthazar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파나 궁금해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뉴요커들이 무척 사랑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인데 오래전 뉴욕 레스토랑 위크 시 아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실수였다. 레스토랑 위크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데 어쩌다 아들과 함께 방문했는지. 나 혼자라면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쓰고 그냥 나올 텐데 웨이터가 정중하게 하얀 식탁보 깔린 테이블로 안내했는데 그냥 나오기가 어색했다. 나도 20대라면 철판을 못 쓸 텐데 나이가 드니 철판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체면을 보고 참고 메뉴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을 골랐다. 그래도 레스토랑 위크 가격보다 더 비쌌다. 그래서 딱 한 번 방문했던 레스토랑도 문이 닫혀 버렸어. 아...
어디로 가야 하나 망설이다 소호에서 명성 높은 Dominique Ansel Bakery에 갔다. 뉴요커뿐 아니라 뉴욕 여행 오면 꼭 간다는 빵집에 난 처음이었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빵을 사 먹는 문화를 난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하다면 진즉 방문했을 텐데... 암튼 딸 덕분에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손님은 많고 직원은 불친절하고 케이크 가격은 비싸고 예약도 받지 않는다고. 꼭 케이크를 사고 싶으면 다음날 아침 일찍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려 사라고. 만약 다 팔리면 그냥 돌아서고. 뭐 하나 내 마음에 든 게 없는 빵집. 추운 겨울 몇 시간 동안 서서 기다리라고. 천만에. 그냥 돌아섰다.
소호 마카롱 전문집 Ladurée에 갔다. 역시나 처음이었다. 부자가 아니라서 눈을 감고 사니 처음이었다. 뉴욕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무진장 많은데 눈감고 산다. 내 형편과 거리가 멀어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파는데 역시나 가격은 저렴하지 않지만 문제는 초콜릿 케이크는 없단다. 딸은 초콜릿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다시 돌아섰다.
소호는 과거 예술가촌에서 세계적인 명품샵 즐비한 쇼핑의 거리로 변했는데 아직도 몇몇 갤러리가 있고 난 갤러리 구경하러 가곤 하는데 추운 겨울날 쇼핑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케이크를 구해야 하는데 마음은 무겁고 해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소호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라자 호텔 근처에서 내려 딸과 함께 방문했던 프렌치 카페에 갔다. 늦은 오후 근처 레스토랑에서 촛불을 켜놓고 식사하는 뉴요커들이 많더라. 나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싶은데...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도 코로나로 잠들어 버렸지만 코로나 전에도 저녁 식사는 더 비싸니 점심 식사만 했다. 가난이 죄야.
드디어 딸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찾았다. 매년 프랑스혁명 기념일 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 골목에 있다. Le Bilboquet.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으러 온다고 예약을 했다. 위에 적은 곳만 방문한 게 아니다. 정말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케이크 하나 사려고 맨해튼에서 소동을 피웠더니 정말 피곤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피로가 몇 배로 누적이 된다. 가격은 역시나 비쌌다. 그런데 꼭 먹고 싶다고 하니 포기했다. 내 신용 카드로 구입했는데 나중 딸이 케이크 금액을 줬다.
삶이 무척 복잡하니 케이크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나와 딸은 다르다. 세대차이다. 난 어릴 적 연탄을 사용하던 세상을 보았고 대학 시절에도 돈가스와 카레라이스와 오므라이스도 고급 음식이라 생각할 정도. 대학 시절 에이스 비스킷과 자판기 커피 먹고살았던 세대. 딸은 초등학교 시절 세계 여행을 했고 빈 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님에게 바이올린 레슨도 받고 60평 아파트에 살았지. 무에서 시작해 아이 아빠 성공하기까지 무척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두 자녀는 초등학교 시절 세계 여행을 자주 다녔다. 나중 뉴욕에 와서 살게 되니 보는 세상이 다르다. 보스턴 케임브리지 연구소와 서부 팔로 알토 연구소에서 일하며 세계적인 학자들을 가까이서 보고. 보고 듣는 세상이 나랑 다르니 생각도 다르다. 두 자녀의 기대를 만족시킬 정도라면 좋을 텐데 40대 중반 다른 나라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이방인의 삶은 아직도 비포장 도로를 걷는 느낌이다. 학생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버티지 못하고 진즉 뉴욕을 떠났을지 모르겠다. 마음 하나로 이 힘든 세상을 버티고 산다. 마음이 무너지면 죽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