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4일 목요일
세월이 달려가 어느새 크리스마스이브. 코로나 전쟁이라서 그런지 더 빨리 흐른 듯 느껴진다. 하루하루 꼭 붙잡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아쉬움이 무척 많았던 악몽 같은 2020년. 뉴욕은 공연 천국인데 코로나로 잠들어버려 보고 싶은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없었지. 카네기 홀 공연 티켓을 미리 구입했는데 취소가 되어 얼마나 섭섭하던지.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가족은 카네기 홀에서 뉴욕 스트링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곤 했다. 명성 높은 오케스트라 공연만 좋은 게 아니다. 젊은 음악가들 공연도 무척 좋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가끔씩 보는 학생들 얼굴을 카네기 홀에서 보면 더 반가웠다. 언제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이틀 전 미리 예약했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픽업하러 가서 영수증을 보여주고 케이크를 달라고 요구했다. 프렌치 카페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와 좋았다. 커다란 쇼핑백에 담아준 케이크를 들고 5번가 성당을 찾아가는 길 혹시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볼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갤러리가 문을 닫아 버려 슬펐다. 코로나 전 맨해튼 5번가는 보행자가 너무 많아 걷기도 힘든데 지금은 코로나 전쟁 중이라 너무너무 조용조용하다.
홀리데이 시즌이라 맨해튼 5번가에 준비된 장식을 보면서 즐거운데 지난번 하얀 눈 펑펑 쏟아진 날 센트럴 파크에서 본 거리 음악가를 다시 만났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니 기분이 좋았어. 성 패트릭 성당 앞 거리에 전시된 붉은색 우체통 앞에서 하얀 마스크를 쓴 어린아이를 보았는데 부모가 "하나, 둘, 셋..." 하며 카메라 버튼을 누르니 아마도 한국 여행객이 아닐까 혼자 속으로 짐작했다. 한국에서는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고 뉴욕은 파란색 마스크를 사용한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하얀색을 무척 사랑하나 봐.
케이크를 손에 들고 5번가를 걷는데 느낌이 이상해 케이크 상자를 보니 초콜릿 무스 케이크가 녹아 흘러 긴장된 순간. 딸이 특별히 주문해 달라고 부탁해서 어렵게 구한 케이크인데 분명 기분 좋아할 일이 아니라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5번가 성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5번가를 걷다 브라이언트 파크 옆 지하철역에서 7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케이크가 아니라면 타임 스퀘어에도 다시 한번 가고 북 카페에서 잠시 책을 읽으려 했는데 마음이 불안하니 일찍 집에 돌아왔다.
두 자녀는 세탁에 사용할 동전을 교환하러 은행에 가고 한인 마트에 가서 갈치 한 마리 구입해 집에 돌아왔다. 모양이 찌그러진 케이크를 보고 반갑지 않은 표정을 짓는 딸아이. 쥐구멍에 숨고 싶은데 쥐구멍도 없고...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평소 자주 구입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케이크 한 조각 사 먹으니 잘 몰랐다. 더구나 맨해튼에 사는 것도 아니고 플러싱에 사는데. 아, 이를 어쩌랴...
잠시 후 딸은 파리 바게트에 가서 케이크 한 개를 사 왔다. 갑자기 케이크 부자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냉장고에 케이크 두 개가 들어있어. 무와 양파와 감자를 넣어서 갈치조림을 만들고 갈비구이를 곁들여 김치와 채소랑 함께 식사를 하고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다.
크리스마스이브 가족끼리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교환하면 좋을 텐데 딸로부터 미리 어그 부츠와 털모자와 목도리 등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난 두 자녀 선물을 준비도 하지 못한 염치없는 엄마가 되었다. 마음과 달리 현실에 굴복하니 삶이 삶이 아닐 때가 참 많다. 딸은 엄마 아빠가 이혼 후 한 번도 크리스마스트리도 장식하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며 작년에 아마존에서 트리를 구입했다. 정말 섭섭했나 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살았다. 두 자녀 교육비와 렌트비와 생활비만으로 숨 막히는 뉴욕 생활이라서. 중요한 이벤트는 챙기고 살아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항상 딸이 샀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오면 좋을 텐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아다니기 힘들겠어. 무슨 바람이 이리 세게 부는지 몰라. 바람소리가 무시무시하다. 맨해튼에는 기적을 바라는 홈리스들이 무척 많던데. 내가 큰 쇼핑백을 들고 있으니 가까이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데 난처했지. 딸이 구입한 케이크를 픽업했는데. 나도 연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형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뉴욕 렌트비와 생활비도 딸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데... 지하 인간으로 살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생각나는 피츠 태번 레스토랑. 작가 오헨리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필한 레스토랑이다. 오래전 아들과 함께 몇 번 방문하곤 했는데 간지 꽤 오래되어간다. 가난한 연인들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 배경이 뉴욕이란 것도 다 잊고 지냈다. 어릴 적 그냥 재밌게 읽은 책이었는데 수 십 년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뉴욕에 와서 살면서 우리 가족이 뉴욕에 정착한 첫해 크리스마스 나들이 때 한인 여행사를 통해 맨해튼 구경을 하다 가이드가 "저기가 작가 오헨리 단골이에요",라고 하니 놀랐다.
아주아주 오래전 맨해튼 첫나들이 때 한인 타운 강서회관에서 비빔밥을 1인 7불 주고 먹고 팁 1불을 남겼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 버린 식당. 맨해튼 첫나들이 때 가이드가 말한 피츠 태번에 간 것은 친정아버지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처음으로 갔다.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서 전화를 통해서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충격이 커서 북 카페를 나와 근처에 있는 피츠 태번 레스토랑에 갔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아버지가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날 줄 아무도 몰랐다.
아침에는 딸과 함께 파리바케트에 가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라테 커피 한 잔 먹고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