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이브 타임 스퀘어에서 열리는 볼 드롭 행사를 보려고 오후 1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큰 맘먹고 아들과 함께 나섰지만 상당히 추운 날 아들은 지하철이 달리는 동안 무엇보다 화장실이 걱정된다고 말하고 우린 타임 스퀘어에서 가까운 브라이언트 파크 지하철역에 내려 뉴욕에서 최고로 깨끗한 브라이언트 파크 공공 화장실에 들렸다. 화장실 내부에 바이올린과 프렌치 호른 악기로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이 놓여있고 아들은 엄마 보고 이렇게 화장실이 깨끗해요? 라 묻고. 공공 화장실이 드문 맨해튼에서 탑에 속하는 화장실 직원은 내게 타임 스퀘어 이브 행사를 볼 거냐 묻고 난 그걸 보러 왔다고 했다.
서서히 우린 타임 스퀘어를 향해서 걷고 멀리서 보니 경찰이 진입을 막고 사람들은 많고 어디가 입구인지 물어보니 49번가로 올라가라고 하고. 너무 추운 날이라 몇 블록 위로 걷다 보니 미드 타운 힐튼 호텔 근처에서 파는 할랄이 생각이 나 아들 보고 "우리 할랄부터 먹을까"라고 묻고 특별 행사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지나치고 우린 할랄을 사러 갔다. 너무 추운 날이라 자정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럼 배가 고플 테니 배부터 채우자고 했는데 너무 추워 할랄을 먹어도 맛이 전혀 없어 먹다 남겼다.
할랄을 먹는 동안 아들은 롱아일랜드 제리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근처 브라질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하고 아들 보고 이브 행사 보러 갈 거냐 묻고 아들은 그렇다 하니 그럼 기저귀 준비했냐고 말했다고. 타임 스퀘어에 백만 명 이상이 모여들고 가방을 들고 갈 수도 없고 공공 화장실이 없다고 하고. 무엇보다 추위에 견디는 것과 화장실 문제가 크고. 추위에 덜덜 떨면 아무래도 화장실에 더 자주 가게 되는데 화장실이 없어서 자정이 지나도록 버틴다는 게 보통 사람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고. 육체의 한계가 어디인지 테스트하는 좋은 기회가 될지.
손은 빨갛게 변해버리고 난 스타벅스 카페가 멀리서 보여 얼른 스타벅스 카페로 갔다. 혹시 화장실이 있나 물으니 화장실이 없다고. 맨해튼 미드타운 스타벅스 카페에 화장실이 없어. 그곳에서 뜨거운 커피를 먹으며 새해 이브 행사를 보러 갈 것인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 고민하다 큰 맘먹고 맨해튼에 갔지만 내 몸의 추위 적응 능력은 마이너스라 그만 포기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아 근처에 있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 들려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뉴욕에 살면서 맨해튼에 가서 오늘처럼 추위를 느낀 것은 처음이다. 몇 시간 더 오래 머물면 내 몸은 동상에 걸릴 것 같고 추위가 고통스러워 슬픈 추억도 떠올랐다.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낯선 도시 뉴욕에 와서 정착할 무렵 첫해 가을 그때도 추위와 전쟁을 했다. 너무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고 주인이 난방을 해줘야 하는데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주인에게 말을 했지만 주인은 아무렇지 않다고 하고. 뉴욕주 법에 실내 온도가 70도이고 그때 실내 온도가 65도 정도. 난 그 온도에 적응하고 살 수 없었다. 프린터 기에서 인쇄된 종이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그 종이를 만지면 따뜻했다. 주인과 트러블이 있었고 결국 난 뉴욕에 온 지 6개월 만에 이사를 하고 말았다.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제리코로. 뉴욕 지리도 잘 모르고 포장 이사가 아니라 스스로 짐을 싸야 하는 이사라 죽을 고생을 하는 이사.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 다녔고. 모든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고 낯선 도로를 운전하고 달렸고 어디에 아파트가 있는지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학군 좋은 아파트를 구하니 더 어렵고 또한 빈 아파트가 있어야 입주가 가능하고. 뉴욕 운전면허증과 소셜 번호와 크레디트 점수도 있어야 하고 하나하나 조건이 왜 그리 까다로운지. 한국과 달리 롱아일랜드에 아파트가 많이 없고 뉴욕에서 집 구하기 정말 어렵고 조건이 필요하고 한국과 다른 뉴욕 문화에 적응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아. 그때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라 너무 바빴고 공부는 공부대로 하면서 두 자녀 학교에 픽업하러 가고 집안일은 혼자서 하고 말 그대로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혼자서 처리했다.
제리코로 이사를 하고 며칠 후 맨해튼에 있는 줄리어드 학교에서 두 자녀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예정이라 우린 기차를 타고 맨해튼에 갔고 그날 처음으로 줄리어드 학교를 방문했다. 이사 후 미처 짐 정리도 하지 못하고 줄리어드 학교에 갔다. 레슨을 받으러 갔지만 바이올린 선생님은 손가락이 다쳐 레슨을 할 수 없다고 하셔 그날 레슨을 받지 못하고 기차를 타고 롱아일랜드 제리코로 돌아오는데 그만 실수로 힉스빌 기차역에서 내려야 했는데 난 미네올라 기차역에서 내려 추위에 덜덜 떨었다. 미네올라와 힉스빌 사이 자주 기차 운행을 하지 않아 오래오래 기다렸고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할 거 같으나 비싼 택시비로 인해 우린 오랫동안 기차를 기다렸다.
한국인 학생 한 명 없는 이름 없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도 지옥. 매주 수업 준비도 힘들고 시험을 보면서 이사를 하고. 뉴욕에 와서 추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체험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추위가 그토록 무섭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어. 책에서 추위로 고통을 받는다고 읽었지만 그게 뭔지 직접 체험해야 비로소 그게 뭔지 알 게 된다. 내가 경험한 세상 안에서 이해가 가능하고 경험하지 않은 세상은 저 멀리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새해 이브 행사를 위해 경찰은 도로를 막아버리고 아주 많은 경찰들이 도로에 보였다. 혹한에도 불구하고 특별 새해 이브 행사를 보러 온 사람들은 지금 타임 스퀘어에서 기다리고. 어떤 도로는 호텔이나 코미디 쇼 티켓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고 코미디 쇼 표가 약 80불 정도라고 하고 내게는 너무 비싼 티켓이니 저 멀리 있고 특별 행사 보려고 전망 좋은 호텔이나 미리 예약을 해야지 다음에 볼 수 있을지. 맨해튼은 정말 갖는 자와 갖지 않은 자의 차이를 피부로 크게 느껴. 거리에는 홈리스 가득하고. 새해 이브도 이렇게 간다. 자정 무렵 행사를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2시경이 될 줄 알았는데 난 커다란 착각을 하고 맨해튼에 가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핫 커피 한 잔이 내게 행복을 주네. 아파트 난방을 따뜻하게 해 주면 좋을 텐데. 아파트 수도꼭지를 틀면 차가운 얼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춥다. 정말 추워.
새해 이브 행사를 보려 타임 스퀘어에 가긴 갔다. 너무 추워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내 한계를 넘는 일이라 포기를 했다. 추위가 내게는 공포야. 공포. 추위에 지상이 꽁꽁 얼어붙은 날 타임 스퀘어에서 새해 이브 행사를 보기 위해 기다릴 텐데 난 포기를 했어. 작년에도 보지 못했고 재작년에도 보지 못했고 내년에는 볼 수 있을지.
2017년 새해 이브 저녁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