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을 맞았다.
어제 새해 이브 타임 스퀘어에서 볼 드롭 행사가 열렸고 자정 무렵 플러싱에서도 폭죽이 터지고 랩탑으로 볼 드롭 행사를 지켜보니 연인들은 키스를 하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 노래가 흐르고 맨해튼 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뉴욕 시장 부부는 춤을 추고 그 추운 겨울날 사람들은 새해 이브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저녁 세인트존 더 디바인 성당에서 뉴욕 필하모닉 새해 이브 공연이 열렸고 센트럴파크에서 밤 10시 새해 이브 조깅 행사가 열렸고 오늘 이스트 빌리지 세인트 마크스 인 더 바워리 교회(St. Mark's in the Bowery Church)에서 연례 시 프로젝트 행사가 열리고 올해 44회를 맞은 The New Year's Day Marathon은 오후 3시 시작해 자정이 넘어 새벽 2시가 되어 막을 내린다. 시 낭송 행사와 더불어 공연을 하고 새해 첫날 시 낭송 행사를 하는 뉴욕이 놀랍기만 해. 수년 전 새해 첫날 무슨 행사가 열린 지 찾아 처음으로 방문해 뉴요커의 정열에 놀라서 나와버렸다.
너무너무 추운 겨울 아침 일어나자마자 모과차를 끓여마셨다. 작년 한 해 미친 듯 살았다. 거의 매일 맨해튼에 지하철을 타고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와 기록을 하려고 했다. 이방인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며 뉴욕 문화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어가면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버렸다. 대학 시절 꿈꾸던 문화생활이 가능한 도시 뉴욕.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과 몸은 대학 시절 그대로다. 늘 학생처럼 지내려 노력했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고 공연과 전시회를 많이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다시 생각에 잠긴다. 세상 기준에 맞춰 지내지 않고 다른 사람 삶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삶을 살고자 대학 시철부터 추구한 대로 내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이니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나는 인생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내게 보통 사람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비극이 날 찾아와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다. 차마 글로 적을 수도 없는 일들이 날 에워쌌다. 그때마다 난 탈출구를 찾았다. 어디가 탈출구인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책에서나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보고 듣지 않은 일이 내게 일어났고 사람들은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나 역시 몰랐다.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않은 일이 내게 일어났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스스로 해결책을 구했다. 그래 멀리 떠나자, 뉴욕으로. 그래서 뉴욕에 왔다.
내가 뉴욕에 간다고 하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20대 중반도 아니고 30대도 아니었다. 40대 중반 어린 두 자녀랑 뉴욕에 가서 공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난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최선을 다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듯이 뉴욕에 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한 번도 보지 않은 토플 시험을 치러야 했고 혼자 유학 수속을 했다. 유학이 그리 힘든 줄 뉴욕에 와서 공부하면서 알았다. 뉴욕에 여행 온 게 아니었으니. 여행 가방 몇 개 들고 지갑에 돈 두둑이 담고 뉴욕에 여행을 와서 지낸 것과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유학을 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낯선 도시 뉴욕은 내게 친절하지 않았다. 끝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희망과 꿈과 사랑의 씨를 뿌렸다.
뉴욕에 오기 전 난 유학과 이민이 무얼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 수 없었다. 유학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그림처럼 내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유럽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한 것을 멋진 그림으로만 봤다. 유학의 대가가 무엇인지 난 알지도 못했다. 알 수도 없었다. 이민은 정말 저 멀리 있는 세상이었다. 이민이 뭔지 결코 한국에서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위기를 벗어나는지 우린 알 수 없었다. 새로운 나라에 가면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이민을 가면 의미가 사라진다. 이민 가서 산 세월이 바로 이민의 나이다. 인간이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약 3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 이민이 그렇다. 이민 와서 30년이 지나면 안정을 한다고. 그렇게 이민은 쉽지 않다. 이민을 가면 차별받지 않고 멋진 삶을 그냥 누린 게 아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 그걸 사람들은 행복의 집이라 부른다.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은 세상으로 구분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소중했는데 지나 보니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때는 소중하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더 소중한 게 있다. 뉴욕에 온 지 10년이 지나니 10년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드러나 보인다. 아직 안 보인 세상이 많다. 앞으로 내게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난 그 안에서 무얼을 할 수 있을까.
평생 위기 속을 달려왔다. 내 삶은 폭풍 한가운데에 있는 고독한 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게 있다. 나의 최선을 다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면 기다린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도 끝없는 폭풍이 분다.
그 가운데 언제나 생을 즐기려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세상 기준에 비추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 기준에 맞춰 지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게 있다면 불타는 정열이다. 불타는 정열로 내 삶을 만들어 왔다. 나만의 행복을 찾는다. 내가 사랑하는 공연과 전시회를 많이 보고 책을 읽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며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새해 폭풍은 잠잠해 질까.
새해 나의 행복은 어디쯤 머물까.
새해 아침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이 있다.
끝도 끝도 없는 문제는 어디쯤에서 풀릴지 어디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올까.
2018년 새해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