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일 일요일
아침 일찍 딸과 함께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가고 한인 마트에 들려 장 보고 성당에 들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낯선 이웃집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분인데 내게 혹시 공원에서 사진 찍었는지 물었다. 세상에 놀랍기도 하지. 정말 추운 날이라 공원에 산책하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날 보았다고.
신은 항상 우리를 보고 있나 생각했다. 하늘에서 신이 날 바라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삶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복잡해 늘 기도하고 산책하고 글쓰기 하고 사는데 내 기도를 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호수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찍었다. 무엇을 담았냐고. 호수에 둥둥 뜬 마른 수국 꽃이 예뻐서 가까이 담으려고 휴대폰으로 잡으려는 순간 죽어있는 커다란 물고기를 발견하고 슬펐다. 지난 여름날 행복하게 했던 생명감 넘치던 물고기 안부가 그립다고 얼마 전 아들에게 말했는데 싸늘한 시체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유독 기억나는 특별한 산책이 있다. 작은 호수에서 큰 물고기가 헤엄치니 내 마음도 기뻐 내 영혼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
가끔 동네 주민들이 낚시를 하기도 하는데 제법 큰 물고기를 잡는다. 난 낚시를 하지 않아도 눈으로만 봐도 즐겁다. 아... 바로 그 물고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내 휴대폰에 담긴 사진이 몹시 궁금했나 봐. 휴대폰을 연 순간 배터리가 1% 남아서 볼 수 있을는지 하면서 열었다. 너무너무 추운 날이라 손과 발이 시려 죽는 줄 알았다. 그 추위에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추운 날 배터리는 빨리 사라진 듯. 물론 휴대폰이 오래되어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면 좋을 거 같은데 문제는 늘 돈이다.
큰 물고기를 보여주자 약간 실망한 눈치였다. 할아버지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는 달랐나 보다. 뭔가 멋진 작품 사진을 기대하셨는데 그냥 평범한 사진이라서. 공원에 가는 길 늘 지나는 곳에 할아버지 부동산 사무소가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가 날 사무실로 안내하더니 벽에 걸린 가족사진과 멕시코에서 구입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처음 만났는데 낯선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이었다. 내 휴대폰 배터리가 1%가 아니라면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을 담아올 텐데 안타까웠다. 그림 설명도 하신 할아버지 재밌어. 그림 한쪽에는 부자 사람들 사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반대쪽에는 바람둥이가 여자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인데 그림 아래쪽에는 행복한 표정부터 슬픈 표정까지 그려져 있다. 간단히 "이게 바로 삶"이라고 표현하더라. 부자들은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들이 일하고 행복하게 살고 바람둥이는 항상 술 마시고 여자 쫒아다니고... 행복한 사람과 슬픈 사람 모두 함께 사는 세상.
할아버지에게 오래전 이탈리아에 여행 갔다고 하니 좋았냐고 물으셨다. 이탈리아 멋진 나라지. 그렇지 않아.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하니 기쁜 표정을 지으셨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 간다고 하면 나 역시 기쁘다. 20년 전 이탈리아 베니스, 로마, 밀라노 등에 갔는데 추억으로 자리 잡은 여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먹는데 맛이 그저 그렇다고 하니 가이드 얼굴 표정이 슬프게 변하면서 "돈 많이 내고 여행하세요", 했던가. 나의 실수였다. 이탈리아 스파게티에 특별한 기대를 했는데 한국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은 게 더 좋았으니 나로 모르게 불평을 했다. 그때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하던 일본 여행객이 여권을 분실했다고 소동을 피웠고 베니스에서는 성악을 전공하는 가이드를 만났는데 베니스가 건축을 전공하는 유학생들이 많다고. 언제 봐도 멋진 베니스 풍경. 물 위에 어떻게 멋진 건축물을 지은 것인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도 떠오르는구나. 과거 베니스가 뉴욕처럼 잠들지 않은 도시였다고 하더라. 아들 어릴 적 유리 제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실수로 깨뜨리고 말았다. 아... 할 수 없이 배상을 했지. 아들은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베니스에서 파는 가면이 환상적이었는데 구입하고 싶었는데 구입하지 않았다. 여행은 추억을 남겨 우릴 행복하게 해 준다. 다시 이탈리아에 여행 가고 싶은데 지구는 코로나 전쟁 중.
맨해튼에 리틀 이태리 지역이 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곳이고 여행객들이 찾아가 식사를 하고 선물을 구입하는 곳. 오래오래 전 가난한 시칠리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재밌게 봤던 영화 <대부>도 촬영했던 리틀 이태리.
시칠리 하면 뉴욕대가 생각난다. 내가 무척 사랑하는 장소인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찾아와 함께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특별 이벤트를 보는 곳. 매년 시칠리아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콩쿠르 수상자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곳. 공짜로 특별 이벤트를 보니 얼마나 즐거웠는가. 몇 년 전 바로 그 이벤트를 보다 내 휴대폰을 분실했다. 눈 깜짝할 사이 휴대폰이 사라졌다. 휴대폰이 비싸니 내 몸은 얼었다. 내가 가장 하는 공연을 봐도 재미도 없고 풀이 죽어 힘없이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말하니 아이폰 파인더를 하면 찾을 수 있다고. 다음날 어렵게 휴대폰을 찾았다. 그리니치 빌리지 브라운 스톤 주택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내 휴대폰이 있나 물었지. 낯선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야, 하면서 놀라셨다. 휴대폰을 분실해 찾으러 왔어요,라고 했지.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고 한 할아버지는 오래전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했는데 닥터 오피스에서 매니저로 일한다고 했던가. 그 외도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 잊지 못할 추억이야. 근데 지금은 코로나 전쟁 중이라 뉴욕이 잠들어 버려 슬프지.
동네에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두 번째이었나. 오래전 아들과 함께 호수에서 산책할 때 애꾸눈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은퇴한 교사였다. 무엇보다 애꾸눈 강아지가 내 시선을 끌었다. 그때 은퇴한 할머니가 곧 호수가 사라질 거라 했는데 아직은 그대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 동네 주민들 모두에게 행복을 가득 안겨주는 호수가 사라지면 어떡해.
손도 발도 너무 추워 '겨울바람' 동요가 생각났다. 매서운 겨울바람. 뉴욕 추위는 정말 무서워. 집에 돌아오자 아들이 엄마 맨해튼에 갔냐고 물었다. 호수에 산책하러 가서 늦게 집에 돌아온다고. 너무 추워 빨리 집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겨울 숲에서 산책하는 갈매기와 기러기가 만든 풍경에 감탄을 하며 산책을 했지. 이제 조금씩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갤러리와 뮤지엄에서 본 전시회가 도움이 되었을까. 뉴욕은 현대 미술의 메카라서 매일 새로운 전시회를 볼 수 있어서 내 에너지만큼 볼 수 있었지. 지금은 코로나로 달라져 슬프지만. 자주 전시회를 보면 나의 무의식 속에 들어가 자리 잡을까. 멋진 카메라도 없지만 휴대폰을 들고 산책하면서 찾는 행복은 공짜야.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즐거움을 주는 산책. 사진 작업이 무척 힘들어 내 에너지를 소진하게 만드니 상당히 피곤한데 좋아하는 일이니까 즐겁게 한다. 만약 억지로 한다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