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6 토요일
토요일 주말 아침 변함없이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겨울비 내린 후라 기대를 잔뜩 하고 갔다. 보면 볼수록 예쁜 공원 호수와 숲. 정이 들었을까. 아주 오래전 맨해튼 센트럴 파크만 예쁜 줄 알다 뒤늦게 동네 공원도 예쁨을 느꼈다.
센트럴파크는 센트럴 파크만의 특별함이 있고 동네 공원은 동네 공원의 특별함이 있다. 새해 자주 공원에 가서 산책하니 겨울 운치를 느껴서 좋았다. 얼어붙은 호수 풍경이 정말 예쁘다. 멀리 겨울 여행 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 겨울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더더욱 좋았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공원.
우리 가족의 첫 정착지는 뉴욕 롱아일랜드 딕스 힐. 그 후 롱아일랜드 제리코로 이사하고 두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다 그 후 뉴욕시 퀸즈 플러싱으로 옮겼다. 연구소에서 일할 무렵에는 바빠서 공원에서 산책할 시간도 없었고 그 후 일을 그만두고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문화 탐구를 시작하니 더 바빴다. 좋아하는 일에 마음이 뺏기면 혼이 나간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을 늦게 알고 매일 공연 보고 전시회 보고 북 카페에서 놀면서 시간 보내니 잠시도 틈이 없어서 자주 공원에 산책하러 가지 못하고 가끔씩 찾아가곤 했는데 늦게 호수가 예쁘단 것을 알았다.
롱아일랜드는 조용하고 깨끗한 주거지역이고 학군이 좋은데 맨해튼과 멀어서 운전하기 싫어하는 내게는 맨해튼은 머나먼 곳. 두 자녀가 학군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플러싱으로 이사했을 때 아들도 플러싱은 더럽고 악취 난다고 싫어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가는 깨끗하고 안정적이고 공원도 가까워서 좋다. 뉴욕시 아파트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 거의 1년 동안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결정한 아파트인데 마음에 든다. 맨해튼이 아니라서 불편한 점도 많고 렌트비도 더 저렴하면 좋겠지만. 뉴욕 하늘 같은 렌트비가 죽음이다. 렌트비만 아니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 텐데 눈감고 포기하고 산다.
아는 사람 도움을 받는다면 집 구하기도 한결 쉬울 수도 있을 텐데 뭐든 혼자 힘으로 해결하니 어려운 점이 많다. 현재 사는 플러싱 집은 눈물 나게 어렵게 구했다. 거의 포기할 뻔한 순간 결정했다. 1년 동안 퀸즈 시를 샅샅이 찾았다. 맨해튼에서 가까운 아스토리아 지역에도 방문하고 서니 사이드와 우드 사이드 등 수많은 곳을 방문했고 플러싱 아파트도 꽤 많은 곳을 뒤졌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 소개비는 한 달 렌트비. 너무 비싼 수수료도 눈물이고. 아파트 측에서 서류 보고 결정하니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참 힘들기만 했다. 1년 수입, 직장, 크레디트 카드 점수, 뉴욕 신분증 등... 요구 사항도 많다.
특히 새해 맨해튼 나들이 대신 동네 공원에 가서 자주 산책하다 사랑에 빠지고 말아 매일 눈만 뜨면 호수에 간다. 오래전부터 봤던 흰기러기를 늦게 알았다. 아들과 난 처음에 하얀 백조라고 생각했고 나중 오리라 생각하고 그러다 흰기러기란 것을 알았다. 꽤 많은 기러기들을 보는데 흰기러기는 딱 한 마리라서 귀하니 특별하게 느껴진다.
청둥오리들, 기러기들과 청설모들을 보면서 호수에서 산책하는데 흐린 하늘이 갑자기 파란빛으로 변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파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하얀색 구름도 느낌이 특별했다. 금방 내 몸이 하얀 구름 타고 멀리 여행할 거 같았다. 기분 좋은 산책 하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 고목나무 뿌리를 휴대폰으로 담았다. 뉴욕에 고목나무들이 많다. 거대한 뿌리를 보면 용비어천가가 생각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깊은 곳에서 나오는 샘물은 마르지 않는다
우리 가족도 뿌리 깊지 않아서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린다. 아무도 없는 뉴욕에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만약 이민이 그토록 힘든 줄 알았다면 어쩌면 뉴욕에 오지 못했을 거 같다. 아무것도 모르니 뉴욕에 왔는데 한 고비를 힘겹게 넘으면 금방 새로운 고비가 나오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산이 나오고 산을 넘으면 태산이 나온다. 삶이 끝이 없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을 텐데 부러진 날개 하나로 산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오죽하면 두 자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스타벅스 커피 한 잔도 안 마시고 살았을까. 오래도록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 삶이 안정되기까지 최소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하다고. 물론 소수 예외도 있겠다. 능력 많고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분들. 평범한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눈물이란 의미. 우리 가족도 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 뿌리가 깊어지겠지. 하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플러싱에서 만난 한인 택시 기사도 친구 이야기를 했다. 기사 친구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뉴욕에서 집을 샀는데 택시 기사 수입으로 가정을 꾸리려니 너무 힘들다고. 도움을 받고 안 받고 차이가 하늘과 땅 같다고 하더라.
호수에서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웃집 정원에 가서 붉은색 동백꽃을 보았다. 겨울에 핀 꽃이라서 특별하다. 플러싱 주택가에도 동백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는데 딱 한 주택 뜰에만 꽃이 피었다. 망원렌즈가 없으니 멀리서 본다.
날씨가 추운 날이라 닭죽과 갈비찜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다. 아들이 엄마 갈비찜 요리는 레스토랑에서 팔아도 되겠다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추운 날 찜 요리가 맛이 좋다. 산책하고 사진 작업하고 집안일하며 하루가 지나갔다.
너무 바빠 기록할 틈이 없어 일요일 밤 토요일 기록을 한다. 맨해튼 나들이도 하지 않은데 너무 바쁘니 어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