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받아들일 때 행복하다

세탁의 즐거움과 괴로움

by 김지수


2021년 1월 1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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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세탁 가방을 들고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했다. 반드시 25센트 동전을 사용해야 하니 미리 은행에 가서 교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아파트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라서 누가 사용하면 내가 사용할 수 없기도 하다. 이래 저래 늘 마음 무겁게 한다. 그러니 괴로움이 따른다. 하지만 세탁을 마치고 나면 즐겁고 감사하다.


뉴욕에 살면서 가장 성가신 거 가운데 하나가 세탁이다. 미리 동전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빈 세탁기가 있는지도 마음 무겁게 하고, 내가 편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등등.


그뿐만이 아니다. 공동 세탁기 나이가 30세가 넘었다고 아파트 지하에 처음으로 세탁하러 갔을 때 만난 아파트 주민에게 들었다. 그녀가 이사 온 후 줄곧 같은 세탁기를 사용한다고. 만약 새로운 기기로 교환하면 아파트 주민이 함께 부담을 해야 하니 선뜻 교환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30년 이상된 세탁기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날 하필 세탁기 전원 버튼이 나갔다. 세탁기 6대와 건조기 6대가 있는데 동시 전부를 사용하면 전원이 나가버린다고. 하필 첫날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낡은 세탁기는 작은 사이즈라서 세탁물이 찢어지기도 한다.


1940년대 완공된 아파트 지하는 영락없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분위기다. 그만큼 으시으시하고 공포 영화 세트장 같아. 한국에서 늘 편리하게 사용하던 세탁기가 집에 없으니 어쩔 수없이 공동 세탁기를 사용하는데 가끔은 전원이 나가고, 가끔은 빈 세탁기가 없고, 가끔은 말없이 동전을 먹어 버리고, 가끔은 세탁물이 찢어지고 등등.


뉴욕에 살면서 세탁비용으로 들어간 돈으로 세탁기 몇 대를 구입했겠다. 왜 집에서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는지 몰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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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세탁물을 건조기에 옮겨 넣고 동전을 넣는데 말없이 동전을 먹어버렸다. 전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웃주민이 건조기에 동전이 가득 차서 그런다고. 동전을 먹으면 뱉어내지 않는다. 물론 아파트 슈퍼에게 연락을 하면 돌려줄지 모르나 대개 연락하지 않는다. 은행에서 동전을 교환하는 일도 늘 마음 무겁게 하고 은행에서 한꺼번에 많은 동전을 교화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말없이 내 동전을 먹어버린 건조기. 하필 세탁물을 이미 채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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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세탁물을 다른 건조기로 옮겼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서 짜증이 난다. 그럼에도 참고해야지. 한 시간 뒤 세탁물을 찾으러 지하에 갔다. 그런데 세탁물이 마르지 않았다. 짜증 도수가 올라간다. 다시 동전을 넣고 돌리지 않고 그냥 빨래 가방에 담아 집에 가져왔다.


그런데 딸이 입을 옷을 찾는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옷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진다. 세탁은 사치도 아닌데 마음 불편하게 한다. 방에 덜 마른 세탁물을 가득 펴 놓으니 마치 전쟁터 같았다. 종일 기분이 꿀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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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뉴욕에 와서 롱아일랜드에 살 때는 차가 없어서 무거운 세탁 가방을 들고 땡볕 아래 오래오래 걸었다. 빨래방에 도착해서 빈 세탁기가 없으면 기다린다. 세탁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다. 나중 차를 구입 후 운전하고 빨래방에 가지만 늘 주차장이 문제다. 빈 공간이 없으면 답답하다. 그래서 세탁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낡은 차를 팔아버린 후 아파트 공동 세탁기를 이용하는데도 역시나 불편하다. 그럼에도 세탁을 마치면 감사하다.


롱아일랜드에서 플러싱으로 이사 올 때도 참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집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서. 암튼 어렵게 구한 아파트가 마음에 든다고 어제 말했다. 그런다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백 프로 만족한다는 말은 아니다. 공원과 한인 마트가 가깝고 조용한 주택가라서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뉴욕은 치안이 안 좋은 곳도 많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안정적인 주택가라서 좋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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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만 5년만 되어도 낡은 아파트라고 새 아파트로 이사하기도 한다. 뉴욕과 한국 상황이 참 다르다. 뉴욕시도 럭셔리 아파트가 꽤 많지만 형편에 맞지 않으니 포기한다. 내 형편에 맞게 살아야 하니까. 1940년대 완공된 아파트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럼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감사함이 없고 매일 불평만 하면 난 불행하다고 스스로 인식할 것이다. 잠시 살다 먼길 떠날 텐데 매일 불평만 하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불평해서 행복하면 백만 번 할 텐데 그렇지 않더라. 그러니 난 불평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한가.


한국과 뉴욕이 다르다. 문화면은 뉴욕이 좋지만 한국이 편리하고 좋은 점이 참 많다. 뉴욕이 모든 게 다 좋다고 착각하는 분도 있지만 오해다. 물론 부자들 마음은 나와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 살 때는 편하고 좋은 줄 몰랐다. 뉴욕에 와서 고생을 하니 한국이 좋았음을 깨달았다. 문화면은 뉴욕이 특별하다.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그렇다. 카네기 홀이나 메트 오페라 등 세계적인 공연을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서 볼 수 있으니 천국이지. 미술관과 뮤지엄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려 뉴욕이 뉴욕이 아니라서 슬프지만.






난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새롭게 산다. 현실이 지옥인데 내가 바꿀 수 없는데 불평한다고 상황이 변할 게 아니니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평범한 내가 가진 재주가 특별하다. 가진 거 없지만 즐겁게 논다. 매일 새롭게 즐겁게 행복하게 산다. 삶은 말로 할 수 없이 복잡하고 슬프지만 그런 가운데도 숨어있는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내겐 마음의 보물이 행복이다.


날개 하나 부러지기 전 우리도 남들이 궁궐이라 부른 집에서 살았다. 그때와 지금 뉴욕은 정반대다. 두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왔지만 미리 가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이토록 힘들고 어렵게 살 거라 미처 몰랐다. 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무척 많았고 교육비도 참 많이 들었다. 두 자녀 미래를 위해서 교육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해주고 싶었다. 날개 하나 부러졌으니 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형편에 최선을 다했지만 뉴욕 상류층 가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환경이라서 두 자녀가 지옥 같은 고생을 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잘 산다. 강남 청담동 빌라에도 살고 타워 팰리스에도 살고 강남 아파트 등. 그런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친구는 친구 나는 나. 남과 나를 비교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난 내 길을 천천히 간다. 고개 숙이고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산다. 나 보다 더 힘든 환경에 산 사람도 많다는 것도 뉴욕에 와서 알았다. 아들 친구 엄마 하는 말



"뉴욕은 위를 봐도 끝이 없고 아래를 봐도 끝이 없어요."


단 한마디로 표현한 뉴욕. 백 프로 공감한다. 뉴욕은 위는 바라볼 수도 없고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민자들이 무척 많다.



뉴욕 플러싱 겨울 호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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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을 하러 가기 전 호수에 산책을 하러 갔다. 조용한 겨울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하는 시간은 행복하다. 잠시 삶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세상 번뇌를 잊고 호수만 바라본다. 매일 날 위해 새로운 빛을 보여주는 호수. 찬란한 호수 빛을 느낄 때 행복하다. 호수 빛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은 늦게 알았다.


아주 오래전 해외여행 다닐 때 뉴질랜드에서 본 호수 빛이 정말 아름다워 가이드에게 물으니 빙하가 녹아서 그림 같다고 말하더라. 그때 본 호수 빛은 잊을 수 없지만 특별한 곳이 아닌 작은 공원 호수 빛이 아름다우니 좋기만 하다.


보는 눈도 분명 달라진 듯하다. 오래전부터 동네 공원 호수는 늘 내 곁에 있었는데 내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침 눈부신 파란 하늘도 보고 파랑새 노래도 들어서 행복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위대하다.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 늘 바라만 봐도 좋은 파란 하늘과 호수. 하얀 갈매기 날개를 펴고 춤추니 내 영혼도 춤췄다.


오후 아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저녁 식사는 오랜만에 잡채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잡채는 참 귀한 음식이었다. 한국이 무척이나 가난하던 시절 엄마는 계모임을 할 때 잡채를 준비하셨고 그때마다 난 혹시 내가 먹을게 남았나 확인했다.


마음 무겁게 하던 세탁도 하고 호수에서 산책도 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끼며 행복했다.










IMG_4229.jpg?type=w966 행복을 주는 눈부신 파란 하늘과 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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