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김지수


2021. 1. 22 금요일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가 떠오르는 겨울 아침이었다. 겨울 아침 집 난방은 잘 안되고 온수를 켜니 얼음이 쏟아진 듯 하니 샤워를 할 수가 없고 차가운 물로 설거지를 겨우 끝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 한 달 렌트비는 하늘 같은데 시설은 고인돌 세상 같으니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정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참고 견디고 산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뉴욕의 현실. 그야말로 영화 속 주인공이다.


Fg3kdBy6CBchY8UjE_rZbYTP0a4 볼 수록 예쁜 사진이다.



세수만 하고 휴대폰 하나 들고 호수에 찾아갔다. 오래전부터 담고 싶은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파란 하늘과 겨울나무를 꼭 담아보고 싶었는데 내게도 기회가 왔다. 아침 일찍 해 뜰 무렵 빛이 아름답다. 지옥 같은 아파트를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행복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매일 천국을 찾는다. 내가 행복을 찾지 않으면 온통 슬픔뿐이더라. 마음의 행복은 주위에 널려있다. 파란 하늘도 바람도 새들의 합창도 풀 한 포기도 한 줌의 햇빛도 모두 행복을 준다. 내 마음이 시베리아 호수처럼 꽁꽁 얼어붙어 버리면 행복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야 행복이 느껴진다. 삶이 슬프다고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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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 거의 매일 맨해튼 나들이하면서 문화 탐구를 했는데 뉴욕이 잠든 덕분에 공연과 축제가 열리지 않고 실내 영업이 안되니 쉴 만한 곳도 드물고 날씨는 추우니 요즘 맨해튼 나들이가 뜸하다. 대신 내가 사는 동네 공원에서 놀고 지낸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맨해튼이 대학 시절 꿈꾸던 보물섬이란 것도 수년 동안 맨해튼에서 문화 예술 행사를 접하면서 느꼈다. 누가 내게 뉴욕이 아름다운 보물섬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고 언제나 그러하듯 스스로 보물섬을 찾았다. 매일 커피 한 잔 마시고 거리에서 노란 바나나 1불어치 사 먹으며 마음의 보물을 가득 캐며 행복했다. 그러니까 <뉴요커 보물지도> 브런치 북은 태양 같은 열정으로 집필했다. 그렇게 힘들게 집필했는데 출판사와 인연이 되지 못했다. 기다리면 언제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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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평생 배움과 열정으로 만들어 왔다. 늦게 바이올린을 레슨 받을 때 주위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왜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서 레슨 받는데 왜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지. 모른 체하고 레슨을 받았다. 하지만 첫아이 임신 9개월이 되어가자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바이올린 선생님이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야 다시 레슨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나중 깨달았다. 딸아이 분만 후 남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기른 것은 내 삶을 통째로 헌신해야 했다. 첫아이 초등학교 입학 후 방과 후에서 바이올린 레슨 받기 시작해 개인 레슨으로 옮기면서 아들도 함께 레슨을 시작했고 그때 내가 배운 바이올린이 엄청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두 자녀 레슨 받을 때 엄마의 끝없는 헌신과 열정이 필요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만 10년 이상 했으니까. 두 자녀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매일 지켜보았다. 두 자녀 일과는 밤 10시가 지나서 끝났다. 육아와 자녀 교육이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요즘 호수에 가서 사진 찍는 것은 커피 한 잔 값도 들지 않는다. 자연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 마음에 편견 가득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안 보이겠지. 깨끗한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봐야 더 아름다운 세상이 느껴진다. 호수에 가서 산책하면 운동도 되니 좋고 마음에 드는 사진 찍으면 즐겁다. 단 사진 작업은 엄청난 열정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열정 없이 그냥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더라.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니 새해 들어 사진이 조금 향상된 느낌이다.








바이올린 교본으로 비교하면 스즈끼 교본이 끝나고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레슨 받을 정도 단계나 될까 혼자 속으로 생각한다. 난 바흐의 샤콘느 수준 정도의 멋진 작품 사진을 찍고 싶은데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샤콘느 느낌은 마치 내 삶처럼 슬프기고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u3KpOLdVuXKc3wPUFCnZlX7LGcY 하늘에서 기러기 나는 모습을 오래전부터 찍어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니 가시밭길이다.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 말할 것도 없이 고생 시작.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하는 것도 어려운데 없는 길을 새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더냐.



7ROeU_8lVspZITpfsiG3O0LuYH8 추운 겨울 호수에서 먹이 찾고 있는 청둥오리


위기 한가운데서 뉴욕에 오려고 결정했고 사하라 사막 같은 낯선 땅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고 있으니 하루하루 눈물 같은 세월을 보냈지. 평범한 사람 되기 어렵다는 말처럼 남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 수많은 불행 속에서 가끔은 천국을 찾았다. 나 스스로 만든 것은 천국. 하지만 삶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 내가 알 수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 천국과 지옥은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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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산책할 때 딸이 함께 동네 카페에 가자고 연락이 와서 커피 마시러 다녀오고 식사하고 오후 다시 호수에 갔다. 겨울 하늘이 변덕스럽다. 아침 태양이 뜰 무렵 예쁜 하늘을 보여주더니 금세 잿빛으로 변했다. 오후 1시 반 경 하늘도 잿빛이라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휴대폰 배터리도 충분하지 않은 채 호수에 도착해 천천히 걸으면서 어떤 풍경을 담을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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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호수는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내가 어떻게 렌즈에 담은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삶도 마찬가지다. 매일 우리는 하루를 선물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평만 하면 얼마나 불행할까. 난 매일 눈만 뜨면 천국을 찾는다. 지옥 같은 현실을 위로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위대한 자연. 자연은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는다. 침묵으로 자연과 대화를 하며 작은 렌즈에 풍경을 담는다. 최대한 예쁜 풍경을 담으려고 빛을 세심히 관찰한다. 내가 느끼지 못하면 결코 담을 수 없기에.




빈 시간 사진 작업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고 집안일하고 저녁 8시 무렵 아들과 운동하러 밖에 나갔다. 운동은 역시 좋다. 내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를 준다.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산다.


한국에 계신 낯선 분이 내 브런치 글을 읽고 감명받았다고 이메일이 와서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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