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삼성 Smart TV를 구입했다

by 김지수

2021년 1월 23일 토요일



IMG_5193.jpg?type=w966 아파트 뜰에 찾아온 딱따구리 새



밤 10시경 영하 4도 체감 온도 영하 12도. 실내 거실 나무 바닥이 얼음처럼 차갑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기운을 냈다.


아침 일찍 일출을 보려고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딸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삼성 Smart TV (스마트 TV)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새벽 6시-6시 반 사이 아파트 현관문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이른 아침 배달될지 몰랐다. 호수에 산책하려 가려다 얼른 텔레비전을 거실로 옮겼다.


딸은 인간이 사는데 최소 TV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은 시청하지 않은지 꽤 오래되어간다. 시간도 없고 수신 요금도 비싸고 볼 에너지도 없는 등 핑계도 많다. 며칠 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는데 큰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고 싶은데 집에 없다고 불평하면서 내게 텔레비전을 사도 되냐고 물었는데 난 내키지 않은 눈치를 줬건만 딸은 기어코 사고 말았다.


내 돈이 아닌데도 사지 말라고 하는 엄마의 입장이 참 난처하다. 거꾸로 가는 인생은 역경과 고난이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진즉 안정될 텐데 낯선 땅 뉴욕에서 두 자녀 교육을 홀로 하다 보니 모든 욕망을 누르고 산다. 내 인생이 이리 복잡할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어려운 시기 지나고 드디어 살만하니 멀리 수 천 마일 떨어진 뉴욕에 오고 말았다. 운명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20대는 인생을 잘 모른다. 나도 그때는 잘 몰랐다. 30대와 40대를 거쳐 50대가 되니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노력하고 착하게 살아도 고통받고 사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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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호수까지 걸어서 약 15분 정도 걸리는데 차가운 바람이 부니 가지 말까 하다 호수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기러기와 청둥오리와 갈매기조차 없는 고요한 호수에서 잠시 산책하다 집에 돌아오니 딸이 이미 텔레비전 조립을 완성해서 놀랐다. 정착 초기도 침대와 책상 등 모두 딸이 조립했다. 뿐만 아니라 딸이 집에서 사용하는 많은 것들을 구입했다. 거울도 없이 지낸 엄마를 위해 아마존에서 화장대를 주문해 조립한 것도 딸. 화장실 청소를 위해 세제와 물걸레를 주문하기도 하고 냄비와 접시 등등. 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메가 밀리언 달러 복권이 당첨되면 사고 싶은 거 다 살 텐데. 복권이 당첨되면 지구를 떠나고 싶구나. 조용한 별 하나 찾아서 살고 싶다. 코로나 전쟁 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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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커피 마시러 동네 카페에 다녀와 빵과 사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약간 휴식을 한 뒤 점심 식사를 한 뒤 다시 호수에 산책하러 가려는데 아파트 뜰 고목나무에서 새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딱따구리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참 귀한 새를 자주 보니 반갑고 기분이 좋다. 카페에 가는 길 빨강 새와 파랑새도 보아서 기분이 좋았다.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듯 파랑새와 빨강 새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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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정원에 가서 화사한 동백꽃을 보고 차가운 바람 맞고 호수에 도착하니 아침에 안 보이던 기러기떼는 돌아왔지만 갈매기는 없고 너무 추워 그냥 돌아가려는 순간 갈매기 몇 마리가 호수에 돌아왔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호수지만 풍경은 항상 다르다. 날씨에 따라 호수 빛도 변하고 바람에 따라 물결도 변하고 기러기와 청둥오리와 갈매기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이 멈췄다. 너무 추운 날씨라 휴대폰 배터리가 말없이 가 버려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다시는 외출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이라서 오후 운동도 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집안에서만 지내고 싶을 정도로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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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운동 대신 오래전 봤던 존 그리샴의 <더 펌 (The Firm)> 영화를 다시 보았다. 무얼 볼 거냐고 묻는데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아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페라 볼까 하다 그냥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오래전 맨해튼 플라자 호텔 근처 시내버스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가사 도우미는 영화배우 톰 크루즈 집에서도 일했다고 해서 놀랐다. 맨해튼이 참 특별해.




가난한 집안 출신 톰 크루즈는 하버드 대학 로스쿨 졸업생이고 로펌에 들어가 일하다 나중 마피아 집단이란 것을 알게 된다.. 내 짐작은 틀릴 수도 있지만 과거 그 영화를 볼 때는 작가의 상상력일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쩌면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을 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영상을 다시 보니 우리 가족이 보스턴 여행을 갔을 때 봤던 하버드 스퀘어 풍경도 나와 더 반가웠다. 영화 속에서 전망 좋은 바닷가 뷰가 펼쳐진 멋진 호텔이 나오니 멋지다고 하니 아들이 옆에서 우리 가족이 오래전 해외여행 다닐 때 머물렀던 호텔 수준도 더 좋았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텔레비전도 없이 오래도록 살고 있는 뉴욕 생활. 단순한 삶을 좋아하는 난 TV 없이 잘 산다. 한국에서 지낼 때도 드라마 볼 시간도 없이 늘 바쁘기만 했다. 물론 그때는 대형 벽걸이 TV가 있었다. 새로 구입한 텔레비전은 사운드가 과거보다 백배 더 좋아진 듯 느껴졌다. 그러니까 난 세상이 얼마나 변한지도 모르고 살았다. 사운드뿐 아니라 영상화면도 좋아졌다.


플러싱에서 처음으로 TV를 보니 아래층 노인 부부 귀가 특별해서 시끄럽다고 불평할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늘 조용히 지내는 우리 집이 소음 공해라고 불평을 하는 노부부는 할 말을 잃게 하니 서로 사이가 안 좋다. 앞으로 혹시 그럴지 몰라. 기본 생활 소음으로 불평을 하면 정말 피곤하다.


새로 구입한 스마트 TV 덕분에 영화를 보는데 아들이 지난 과거 이야기를 했다. 과거 영어 회화 수업반에서 만난 지인이 내게 돈 밖에 없단 표현을 해서 충격을 받았는데 돌아보면 그때나 그런 말을 들었지 지금이라면 들을 수도 없는 표현이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을 거라 미처 상상도 못 해서 놀라기도 했지만. 책을 사랑하고 몇 개의 외국어를 배우고 몇 개의 악기 레슨을 받고 몇 개의 스포츠를 배우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닌 내가 돈 밖에 없다고. 사람을 판단할 때 무얼 보고 판단하는 것일까 가끔 궁금하다.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보고 판단한다. 상대방의 기준에 따라 그 사람의 평가는 달라진다.


가끔 브런치 댓글을 보고 웃는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박사가 되기도 하고, 멋진 사진작가도 되고, 효부가 되기도 하고,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난 늘 바쁘고 게을러서 브런치 글을 자주 읽지 못하지만 가끔 댓글을 보면 웃는다. 그래서 가끔 웃고 싶을 때 브런치 댓글을 읽는다. 솔직히 나처럼 세상도 모르고 사람들 마음을 모른 사람에겐 포스팅 보다 댓글이 더 재밌기도 하다. 평생 난 내가 좋아하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니 세상을 잘 모른다.


딸 덕분에 오랜만에 영화를 봤으니 감사하다. 그런데 추운 날씨라서 몸의 기운이 다 빠진 듯 힘이 없다.


일출/ 뉴욕 플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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