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9 금요일
하늘에 무슨 일이 생겼나. 왜 이리 추워. 꽁꽁 얼어 죽겠다. 아침 기온 영하 9도 체감 온도 영하 19도. 오전 11시 반 영하 7도 체감 온도 영하 17도.
아주 오래전 전방에 살던 무렵 영하 17도 기온에 잘 적응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견디기 힘드네. 전방 시절도 고생 많았지. 슈퍼 마켓도 드문 곳이라 우유 살 곳도 드물고 탱크 소리 나는 곳에서 1년 동안 살았다. 어렵게 작은 월세방 구해서 피아노 레슨 받고 새벽에 테니스 레슨 받고 서점에서 책을 구입해서 책을 읽던 시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책이 인기였다. 대학 시절 삼중당 문고판을 구입해 세계 문학을 읽었고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았는데 두 자녀 키우며 집에서 지내던 무렵 한국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추우면 에너지가 낙하한다. 하마터면 나의 에너지는 땅 속에 숨을 뻔했다. 힘내서 식사하고 단단히 무장하고 호수에 갔다. 바람도 강하게 부니 괜히 갔나 후회를 했다. 갈매기들도 안 보이고 기러기 몇 마리만 산책하는데 잠시 후 구세주가 나타나 식빵을 나눠주니 좋아하더라. 파란 하늘 겨울나무만 보고 돌아서려는데 갈매기 몇 마리가 나타나 반가웠다. 파란 하늘에 반사된 호수 빛은 파란색 물감 같았다. 혹한이라서 오후 운동도 가지 않고 밀린 일기 쓰고 사진 작업하니 해가 졌다.
냉동고처럼 추우니 창고에 든 작은 전기난로를 꺼내 켰다. 실내 온도 54도. 엄청 춥다. 뉴욕주 법은 실내 온도 70도인데 왜 난방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을까. 딸이 너무 춥다고 하니 뉴욕 전기세가 공포라서 난로를 켜지 않는데 10년 만에 꺼냈다. 전기세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이탈리아도 그런다고 불평하더라. 한국 전기 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하나 봐. 전기세 수도세 등은 나라에서 관리를 하면 좋겠는데 미국은 자본주의 나라라서 다른 듯. 그래서 너무 비싸 눈물이 나온다.
며칠 계속 춥려나 본데 어떡하지. 더위도 싫고 추위도 싫다. 나도 추운데 거리에서 종이 상자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은 어떻게 살까. 살인 추위로 죽어가겠다. 뉴욕에 와서 가난과 추위가 공포란 것을 깨달았다. 책에서 추위로 죽는다는 봤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으니 잘 몰랐다. 정착 초기 집주인이 난방을 잘 안 해줘 한바탕 싸우고 6개월 만에 제리코로 이사를 했지만 극심한 고생길이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아파트도 많이 없고 학군 좋은 곳을 찾아야 하는데 렌트비는 비싸고 어디에 빈 아파트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상황. 포장 이사가 아니라서 얼마나 힘들던지!
슈퍼에 가서 빈 종이 박스를 달라고 부탁해 작은 소형차에 실어서 집에 나르는 일을 수십 번 하고, 혼자서 공부하면서 살림하면서 두 자녀 픽업하면서 짐을 싸고. 아파트 찾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아는 사람 없으니 정보도 없으니 더 힘들었다. 겨우 아파트 찾으니 신용 카드 점수를 달라고 하는데 신용 카드도 없는데 신용 카드 점수가 어디에 있어. 그나마 사회 보장 번호가 나와서 다행이지. 9.11 이후 사회 보장 번호 받기도 무척 힘들다고 하는데 운이 좋았다.
빈 아파트가 있지만 뉴욕 운전 면허증 하나 있으니 안 준다고. 무슨 말이야. 당장 아파트가 필요한데. 사정사정해서 아파트를 달라고 부탁했다. 미리 6개월치 렌트비를 달라고 요구했고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혼자 짐 싸고 혼자 짐 풀고.
대학원 시절 공부하면서 6개월 만에 이사를 했지만 짐도 풀지 않은 상태에 기차를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찾아갔다. 선생님을 만났지만 손가락이 다쳐 레슨도 받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Hicksville (힉스빌)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실수로 Mineola (미네올라) 기차역에서 내렸는데 3월 초(3월 3일)도 무척 추웠는데 기차가 자주 오지 않아서 오래 기다렸다. 택시를 타면 금방 집에 도착할 텐데 택시 요금이 비싸니 오래 기다렸다. 아들은 죄 없이 엄마 실수로 고생을 했다. 대학 시절 즐겨들은 <피아노 맨> 노래를 부른 빌리 조엘이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나 나중 힉스빌로 이사를 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무명 시절 죽을 만큼 고생했다고 하더라. 무명 시절 고생 안 한 사람 드물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대학 시절 내가 좋아하던 것과 인연이 많은 뉴욕이라서 가끔은 놀라고 웃기도 한다. 대학 시절 유럽에만 관심이 많아서 우리 가족 첫 해외여행도 런던, 파리, 베를린 등 유럽 도시였다. 아프리카 여행도 떠나고 싶은데 예방 주사 맞아야 한다고 하니 무섭고 불편하고 그렇게 핑계를 대니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학 동창은 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 케이프타운에 유학도 보내던데! 세상 참 많이 변했지.
저녁 설거지는 초간단. 숟가락 하나와 작은 종지 그릇 두 개만 씻었다. 딸 덕분에 사시미와 스시를 먹으니 설거지할 필요도 없고 식사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돈이 좋구나! 그런데 바보처럼 돈을 모르고 살았다. 하긴 돈을 알아봤자 뭐하니. 돈이 날 사랑해야지 내가 돈을 사랑한다고 부자 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