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시작
2021. 2. 3 수요일
브런치로 참치김치볶음밥을 먹을 때 아들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행복해요?"
"넌?"
"행복해요. 그런데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지독한 가난 속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우리 가족. 날개 하나만 부서시지 않고 뉴욕에 함께 왔더라도 이만큼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도 없는 뉴욕에 꿈만 갖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왔으니 간이 우주만큼 크다. 뉴욕이 세상 한 복판이란 걸 모르고 얼마나 힘들지 모르니 왔겠지. 40년 이상된 거대한 뿌리를 옮기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맨해튼 음대 공연 보러 가는 길 늘 지나치는 버나드 컬리지(Barnard College) 뜰에 거대한 목련 나무가 있어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내 마음을 눈부시게 했는데 수년 전 학교 건축 공사로 나무뿌리를 건드렸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대로 영영 가 버렸다. 아마도 그렇게 될 줄 모르고 고목나무 뿌리를 건드렸겠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꽁꽁 추운 겨울이 지나 눈부신 봄의 제전을 목련꽃송이 보면서 가슴 가득 환희를 느꼈는데, 나만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고목나무도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다른 나라에서 바로 적응하고 사는 사람은 소수를 제외하고 드물겠지.
뉴욕이 아닌 미국 다른 주에서 온 작가들도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책에서 읽었다. 마크 트웨인, 존 스타인벡, 오헨리.. 뉴욕에 와서 막노동을 했던 스탸인벡. 한국에서 상상도 못 했다. 유명 작가들이 막노동을 했을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싱글맘도 생존하기 힘들다. 싱글맘 스토리를 펼치는 인기 드라마 Gilmore Girls (길모어 걸스)가 있다. 배경은 뉴욕에서 보스턴 가는 길 거치는 미국 코네티컷의 한 마을 Stars Hollow다.
슬픈 운명만 아니었다면 죽을 거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 숨 쉬고 사는 것도 기적이다.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하는 뉴욕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와서 대학 교육까지 마치고 아직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릴 적 꽃잎처럼 연약한 내 영혼이 슬픈 운명에 저항하며 강하게 된 것도 다름 아닌 왕지옥 고통이다. 평생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살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난 모르고 하늘은 알고 있으련가.
오래오래 전 뉴욕에 떠나오기 전 남들이 궁궐이라 부른 집을 떠나 작은 오두막에 살면서 이혼 재판을 할 때 난 정신병자로 소문이 났고 세상 사람들은 날 피했다. 그때 난 가정상담소 소장을 만나 아이 아빠와 함께 수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소장도 내가 정신 병자라고 알고 있었다. 첫날 내가 찾아가 인사하고 처음으로 사적인 내 애달픈 이야기를 전했을 때 소장님은 깜짝 놀라며 "당신은 정신병자가 아니에요."라고 하셨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없었다면 고통 속에서 시름시름 앓다 진즉 세상을 떠났을 거다. 내가 사랑하는 음악과 책과 그림과 자연이 나의 구세주. 힘든 결혼 생활에도 사랑하는 음악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었지만 평범한 공무원 부모님은 늘 생활이 힘들다고 말씀하셔 감히 레슨 받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먼 훗날 대학 졸업 후 교직에 종사하며 첫 급여받아서 악기점에 달려가 값싼 연습용 악기 구입해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딸아이 분만으로 레슨을 중지했는데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방과 후에서 레슨 받기 시작할 때 어린 아들이 함께 배우고 싶다고 누나 바이올린을 꺼내 모차르트 곡을 흉내 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활 잡는 것도 힘든데 기어코 배우고 말겠다는 어린 아들의 의지에 항복해서 두 자녀를 레슨 시켰는데 나도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고민하다 중고 첼로 악기를 구입해 백화점 문화 센터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레슨 받을 때까지는 긴 시간이 흘렀다. 그냥 하루아침에 뚝딱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 음악이 날 치료했던 것이다.
소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30년 이상 이혼 상담을 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처음에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거짓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고 내게 이혼하지 말라고 권하셨지만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다. 신세계는 그냥 저절로 열리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문이 열리는 것은 무한한 고통과 열정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궁궐 같은 집에서 자란 두 자녀가 뉴욕에 와서 지옥 같은 환경에서 자라니 죄인 같은 마음이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우리 가족도 언어와 신분 문제만 없더라도 죽음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민자에게 언어와 신분 문제는 팔다리를 잃어버리고 말을 못 하고 들리지 않는 벙어리이자 청각 장애인으로 변한 입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개인별로 적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다르니까 이민 생활도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조금만 지인이나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아도 괜찮을 텐데 낯선 땅 뉴욕에 와서 희망과 꿈의 씨를 뿌리며 눈물로 걸어간 세월이 얼마나 길더냐.
연약한 꽃잎 같은 날 고통이 날 키워서 불모지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서 숨 쉬고 살고 있으니 감사하지. 부부 함께 40대 이민 와서 힘들 텐데 아무것도 모르니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왔지. 그때도 뉴욕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라고 했는데 난 뉴욕에만 간다고 말했고 그게 내게는 맞았다. 뉴욕이 아닌 곳이라면 어쩌면 진즉 짐 싸서 한국에 돌아갔으련가 모르겠다.
뉴욕이 특별했다. 뉴욕 뉴욕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 것도 모르고 왔지만. 코로나 전 천국의 보물섬 맨해튼에서 얼마나 행복했던가. 가난한 내가 맨해튼에 가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종일 숨어 있는 보물을 캐냈으니. 카네기 홀에서 만난 사람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대개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림과 다른 분야에 관심은 없었다. 내 휴대폰에 담긴 사진 보여주면 모두 놀랐다. 지금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참 그리운 지인들. 소중하고 소중했던 사람들이었지. 맨해튼 음대 졸업한 플루트 연주가, 오페라 사랑하는 수잔 할머니, 도서관에서 일하는 제프, 독일어 강사, 일본 연예계 사업가, 일본 모자 디자이너, 은퇴한 변호사 등... 그 외도 정말 많았지. 뉴욕 여행객들도 만나 내게 즐거움을 가득 줬다. 그런데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고 말았으니! 아, 슬픈 세상!
며칠 전 아들이 엄마 10년 프로젝트에 대해 말했다.
"엄마 10년 프로젝트 생각했어요?"
"아니"
"엄마가 꼭 해야만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그게 뭔데"
"10년 동안 책 읽지 않기"
웃고 말았다. 아들뿐 아니라 남들도 그랬다. 난 현실을 잘 모르고 이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사는데 모르고 내 의무만 다하며 조용히 세월을 보냈으니 아직도 난 어린아이차럼 세상을 모른다. 딸이 새해를 맞아 구입한 스마트 티브이로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 <메디치> 영화를 보면서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졌다. 세상은 얼마나 슬픈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지. 죄 없이 하늘로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학 시절에도 그 후로도 쭉 늘 바쁘기만 하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늘 시간이 부족했고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 만나는 것보다 책 읽기가 더 편하고 좋았다. 세상에는 음모로 죄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고 가짜가 넘치고 넘친다는 것도 모르고 아첨꾼과 사기꾼이 많다는 것도 모르고 정의는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한다는 것도 몰랐다.
두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사랑하는 센트럴 파크를 보러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달렸다. 난방이 잘 되면 좋을 텐데 지하철도 냉동고처럼 추웠다. 몇 번 환승하고 플라자 호텔 앞에서 내려 비둘기 떼와 파랑새의 환영받으며 공원에 들어가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예쁜 그림 같은 풍경이 날 행복하게 했다. 춥다고 가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 NO PAIN, NO GLORY! 실은 엄청 추운 날 사진 찍기도 힘들지만 사진 작업은 더 힘들다. 시간 없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기에. 그래서 늘 바쁘다. 1초도 딴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집중 집중해야 가능하다.
센트럴 파크 근처에 산다면 매일 공원에 가서 산책할 텐데 가난한 내게도 언제 기회가 올까. 뉴요커들이 만든 눈사람도 무진장 많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눈사람이 마치 연인이나 된 듯 함께 사진 찍으며 좋아하더라. 하얀 눈이 내려서 좋아서 그랬을까. 청설모들도 하얀 눈밭에서 날 환영하니 기분이 좋았다. 두 손을 모으고 날 바라보는 눈빛은 왕 앞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신하 같아 웃었어. 먹이도 안 주는데 예쁜 모델이 되어주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목나무에서 노래 부르는 파랑새들도 백 마리 이상 봤다. 어디서 그 많은 새들이 왔을까. 91세 노인 화가 할머니가 여름날 그림 그리는 쉽 메도우에서는 스키 타는 할머니가 있었다. 뉴욕 풍경이 특별하지. 강아지가 청설모를 쫒아가는데 고목나무 위로 올라가니 다른 청설모를 쫒아가니 주인이 애타는 목소리로 부르더라. 하하 혼자 즐겁게 산책하고 웃는 센트럴 파크. 1년 내내 예쁘지만 더 예쁜 날도 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좋은데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늦게 방문했다. 하얀 눈이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맛을 느끼며 색소폰 연주 들으며 산책하면 신선이나 된 거 같아.
2월 3일은 입춘.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봄소식을 가득 가져오면 좋겠다. 씨를 뿌리고 정성과 사랑으로 가꿨으면 꽃이 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면 욕심이겠지만.
집은 알래스카 냉동고처럼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