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뉴욕 겨울 왕국 2021

by 김지수

2021. 2. 4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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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나 토스트를 먹으며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는데도 기운이 없었다. 집이 냉동고처럼 추우니 매일 눈뜨면 따뜻한 유자차를 끓여마시는데 원기가 회복되지 않았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하얀 눈이 녹지 않아서 예쁜 풍경인데 날씨가 추워서 맨해튼에 갈까 말까 생각에 잠겼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수차례 환승하니 연결이 좋지 않으면 도로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생길 시작이기 때문에.



따뜻한 음식을 먹고 기운을 내어 샤워를 하고 문밖으로 나가는데 시내버스가 휙 하고 달렸다. 마법을 걸어 멈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중교통을 어찌 내 맘대로 하겠어. 할 수 없이 터벅터벅 눈길을 걸었다. 뉴욕에 고목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눈 내린 풍경은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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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66.jpg?type=w966 왼쪽 초록색 지붕이 플라자 호텔


집에서 약간 떨어진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 탑승하고 플러싱 지하철역에 도착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출발했다. 지하철이 달리는 동안 눈으로 덮인 예쁜 풍경 보며 환승역에서 환승. 추운 날은 환승역에서 오래 기다리면 지옥이다. 어릴 적 봤던 추억 생각나게 하는 고드름을 보며 마음을 녹이며 플랫폼에서 플라자 호텔에 가는 지하철을 오래 기다려 탑승하고 플라자 호텔 앞에서 내려 센트럴 파크에 갔다. 전날 사라지고 없던 동화 같은 마차의 행렬이 다시 나타났다. 언제 봐도 예쁜 마차는 너무 비싸니 내겐 그림이지만 그래도 예쁘긴 하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 왕국 풍경은 예쁘다. 그런데 1년 내내 하얀 눈이 펑펑 온 것도 아니다. 눈폭풍이 가끔 찾아오지만 365일 가운데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날은 아마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상당히 귀한 풍경이다. 아무리 귀하고 예쁜 풍경이라도 내가 보지 않으면 지나가버리니 아름다운 순간도 내가 붙잡아야 한다.


IMG_9604.jpg?type=w966 나도 센트럴 파크 근처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춥다고 가만히 집안에 있으면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다. 전날 오랜만에 센트럴 파크에 가서 산책하며 후회를 했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괴물 눈폭풍이 내려 맨해튼이 몹시 그리운데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집에서 지냈는데 센트럴 파크는 역시나 달랐다. 겨울나무 교향곡을 들을 수 있고 숲과 호수의 겨울 정치를 느낄 수 있는 뉴욕 최고의 공원. 홈리스는 물론이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 센트럴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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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눈사람 보면 마냥 기쁘고 하얀 눈밭을 뛰어다니면 마냥 즐겁다. 전날 방문하며 청설모의 재롱도 보고 비둘기 떼의 환영도 받으며 거리 음악가 연주도 들으며 하얀 드레스를 입은 고목나무 아래를 거닐 때 가슴속 가득 행복이 밀려왔다. 전날처럼 파랑새 노래도 자주 들었다. 파랑새 가족이 더 많아졌을까. 여기저기 고목나무 가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날 환영했다. 올해는 우리 집에 행복이 주렁주렁 열릴까. 기쁜 소식이 자주 들려오면 좋겠다. 평소도 자주 파랑새를 보지만 전보다 백배 이상 파랑새들이 많아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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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밭에서 뒹구며 노는 어린아이들도 있고 플라스틱 썰매로 신나는 겨울을 보낸 어린아이들도 있고 하얀 눈사람을 만드는 엄마와 어린 아들도 있었다. 전날과 같은 코스로 공원을 거닐었다. 뉴욕의 가을을 대표하는 센트럴 파크의 황금빛 느릅나무가 긴 터널을 이루는 '더 몰(The Mall)'에서는 색소폰을 연주하니 아름다운 선율에 행복이 밀려오는데 내 눈을 별처럼 반짝반짝 눈부시게 하는 예쁜 조각품이 있었다.


누가 예쁜 조각품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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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가? 20대? 30대? 40대? 조각가? 혼자서?... 재주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뉴욕. 세계에서 몰려오니 그런가. 세상에서 태어나 그토록 예쁜 눈 조각은 처음 보았다. 역시 공원에 가길 잘했다.




다시 걸었다. 베데스다 테라스에서도 구슬픈 가락이 들렸다. 코로나 전 여름이면 보트를 타는 호수를 지나서 존 레넌이 살던 럭셔리 다코타 아파트와 귀족들과 영화 <사랑과 영혼>에 주연으로 나온 데미무어 배우 소유 아파트가 있는 산 레모 아파트 정경이 바라보이는 호수 근처에 갔다. 다코타 아파트에 레너드 번스타인과 로버타 플랙도 살았다. 대학 시절 즐겨 들은 노래 'killing me softly'를 부른 가수. 참 많은 것들이 나의 대학 시절과 인연 깊은 뉴욕!

여기야 어디야? 놀라지 마라. 센트럴 파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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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뉴욕의 가을> 촬영지이기도 하는 다리 보우 브리지(Bow Bridge) 아래에서도 연인끼리 친구끼리 뱃놀이를 하는 명소다. 매년 벚꽃이 한창일 때 찾아가 사진을 찍는 내가 사랑하는 호수도 역시나 그림처럼 예쁘다. 코로나 전쟁을 하니 뱃놀이는 꿈에서나 가능하니 마음 아프다.


언제나 그림처럼 예쁜 다리 보우 브리지(Bow Bridge) 근처 호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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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밭의 기러기 풍경은 멀리 여행 가지 않고 지하철만 타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왕복 약 6불의 교통비와 내 뜨거운 마음이 전부였다. 전날보다 더 많은 기러기떼가 보였다. 어디서 그 많은 기러기들이 몰려왔을까. 겨울에 인기 많은 캐나다 구스 겨울 외투를 바로 기러기 털로 만들었지. 뉴욕에도 엄청 많은 기러기들이 사는데 왜 캐나다에서 만들었을까.







산 레모 아파트와 다코타 아파트 정경이 보이는 센트럴 파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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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내리니 영화처럼 멋진 겨울 왕국을 보여주는 센트럴 파크와 행복했던 목요일 오후는 얼마나 빨리 지나가던지! 행복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센트럴 파크에 정말 사람들이 많아서 잠시 코로나를 잊은 듯했다.



귀여운 청설모 눈밭에서 만나니 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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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뉴욕에 올 때 남들이 궁궐이란 집을 가출해 작은 오두막에 살면서 40대 중반 뉴욕에 간다고 하니 모두가 믿지 않았다. 불가능한 꿈이라고! 이혼 재판 끝내는 것도, 뉴욕에 오는 것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백만 배 이상 어렵고 힘들었지만 뉴욕에 와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음악 시간에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려주었는데 그때는 내게는 멋진 선율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먼 훗날 세월이 흘러 뉴욕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보며 살게 되니 그 곡이 새롭게 느껴졌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운명의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는 위기는 내게는 한국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게 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그때 중대한 결단을 하지 않았으면 결코 새로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눈감았을 거다. 물론 새로운 세상은 그냥 열리지 않았다. 무수한 고통과 열정과 꿈으로 열었지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우리 가족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구만리다.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는 아픔과 슬픔이 모두 사라지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도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도 슬픈 일이 무진장 많지만 참고 견디고 산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 매일 태양 같은 열정으로 노력하고 기회가 오면 붙잡아야 한다. 기회는 항상 찾아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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