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5 금요일
아침에 깨어나 스마트 티브이로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를 듣고 딸과 하얀 눈길을 걸으며 아다지오 카페에 가서 라테 커피 마시고 파랑새 노래 들으며 행복한 아침을 열었다. 고목나무 무척 많은 동네 정경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행복을 주었다.
소소한 행복도 내가 찾지 않으면 그냥 저절로 굴러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며 집안에 있다면 진즉 저 세상으로 떠났을 거다. 살다 보면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은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도 불쑥 침입하는 스트레스. 내 잘못도 없이 그냥 갑자기 괴한당의 공격을 받을 때가 참 많다.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서 수업받을 때 난 학원에서 영어 회화 수업과 중국어 회화 수업을 받았다. 집에 차가 있었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굳이 비싼 주차비 내고 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 두 자녀 픽업하는 등 바쁘니 차를 구입했지만 차를 이용할 때, 이용하지 않아도 될 때를 구분했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발달하니 편리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지인은 내가 차가 있는데도 이용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눈치였다. 지인 남편은 전 변호사 출신, 그때는 대학 교수로 지내고, 나중 판사로 재직했다. 지인은 내가 아파트 몇 동에 사는지 알고 싶어 해 내가 사는 동과 호수를 말하니 충격을 받았다. 지인 가족도 미국에서 2년 동안 지내다 한국에 돌아갔다. 멋쟁이 부인이라서 처음 수업에 들어와 인사를 할 때 성악가 출신인가 하며 웃었던 기억도 난다. 알고 보니 대학 시절 법대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니 가끔은 지인 시댁에서 온 김치를 내게 선물했다. 시어머니가 담근 김치 맛이 일품이라 늘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자녀 교육에도 무척 열심이었고 첫째 아들이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입학했다고 소식이 왔을 때 맨해튼 한인 타운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인연이란 게 참 이상하다. 다시 만날 줄이야. 지인 아들은 뉴욕에 남고 싶어 했지만 서울로 돌아갔다. 대학 3학년 월가에서 인턴십 구하기도 무척 어려웠다는 소식도 들었다. 아이비리그 출신인데도 인맥 없이 구하기 어렵다는 월가 인턴십.
머리가 쪼개질듯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꼼짝하기도 싫었지만 그런 날은 꼭 영어 회화 수업을 받으러 가야만 했다. 같이 수업받는 다른 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 몸에 들어가 독으로 퍼지던 스트레스가 하늘로 날아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랬다. 영어 회화 수업은 내게 배움도 주고 즐거움도 주었다. 가끔은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좋았다.
함께 수업을 받는 분도 삶이 제각각 달랐다. 어린 자녀들을 과외 선생님에게 맡기고 남편 퇴근하면 항상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고 집안일에 별로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처음에는 놀랐다. 아, 삶이 참 다르구나 하면서.
한의사 부인 이야기 듣기 전 까기 그렇게 산 주부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집안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녀 교육에도 과외 선생이 하고 식사는 레스토랑에서 하고 남편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 보러 다니니 내겐 꿈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주위 친정과 가사 도우미 도움받아 편히 지낸 사람은 봤고 쌍둥이 키운 선생님은 두 명의 가사 도우미 도움을 받고 지내셨다. 이렇게 각각 삶이 다르다.
그때 난 너무 바빴다. 바이올린 특별 레슨이 그냥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다. 미리 연습해야 할 분량이 많고 엄마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돈 많은 집안에서는 1차 연습 선생님, 2차 연습 선생님 등을 두고 레슨 시켰지만 난 내가 모든 걸 책임져서 바빴다. 또한 나도 첼로 레슨을 받아서 더 바빴다. 너무 바쁘니 한 밤중 첼로 레슨 받으러 다녔다.
영어 회화 수업받은 후도 함께 식사도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내 일과가 바쁘니 시간이 부족해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함께 수업받는 지인들 자녀들은 상당수 많이 서울대와 과기대에 입학했다고 나중 소식을 들었다. 참 대단한 분들이었다. 서울대 입학이 그냥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닌데.
우리들 삶은 달랐고 각기 제 방식대로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항상 종이컵에 든 커피를 들고 나타난 한의사 부인 별장에 놀러 가 식사를 하며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를 들었다. 주말에는 항상 별장에 간다고 했던가. 일찍 안정을 하고 별장도 마련한 한의사 부인은 영어 소설도 무척이나 사랑했다. 작은 문고판 소설과 영자 신문과 종이컵에 든 커피를 들고 수업 시간에 나타나 수업 끝나고 신문 읽기도 했지만 난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늘 바빠서.
바쁜 사람과 한가한 사람 마음은 다르다. 시간 많고 돈 많고 심심한 사람은 친구랑 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쁜 사람은 한가로이 놀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많다면 하고 싶은 일은 늘 무진장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항상 꿈을 꾸었으니까. 내 뜻대로 삶이 되지 않아서 다 이룰 수가 없는 것들이 내 옆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시간 관리는 필수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하늘로 붕붕 날아가는 시간. 시간이 이끈 대로 사는 삶과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은 다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늘 시간관리를 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삶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살면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래식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지만 악기 레슨은 시간 관리 없이 불가능했다. 미리 레슨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시절에도 클래식 기타 동아리반에서 활동하고 아르바이트하니 무척 바빴다. 그때도 학과 공부에 전념한 친구들도 많았다. 학점 관리가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한 동창들도 있고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꿈꾸며 살았다. 그때도 무척이나 바쁘니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서 놀 시간은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동아리반 활동하는 사람과 아닌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반은 레슨 받기 위해서 미리 연습해야 하고 봄과 가을 정기 연주회 준비하면 합주 연습하고 듀오 연습하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가곤 하는데 한가로이 친구랑 놀 시간이 없었다. 그때도 한가한 친구들은 바쁜 날 이해하지 못했다.
간단히 브런치를 먹고 난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며칠 전 괴물 눈폭풍이 찾아와 겨울 왕국으로 변해 혼자서 호수에 산책하러 가던 날 하마터면 하늘나라로 떠날 뻔했던 추억이 머문 곳. 눈보라 휘몰아치니 앞이 안 보이고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곳도 많아서 위험했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운 마음에 호수를 보고 돌아왔지만 다음에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 호수 풍경이 며칠 전과 달랐다. 이미 눈이 그친 상태라서 고요했다. 동네 주민이 벤치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처음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기러기 3마리와 갈매기 몇 마리만 보였다. 센트럴 파크 호수에서 봤던 기러기 떼가 동네 호수에서 놀던 기러기도 있었던 것일까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멋진 호수 풍경 담고 싶은데 갈매기 춤추지 않으니 밋밋한 풍경이라서 하얀 눈 쌓인 풍경을 담았다. 잠시 후 겨울 철새 구세주가 나타나 먹이를 주니 갑자기 겨울 철새들이 날아왔다. 어떻게 알고 날아오는 것인지 놀랍다. 아직 하얀 눈이 녹지 않아서 무릎 정도까지 눈이 쌓인 곳도 많았다.
저녁 슬픈 메디치 영화를 보면서 세상 공부를 했다. 아침에 깨어나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 듣다 문득 지인들이 생각나 두서없이 긴 이야기를 했다.
사진
뉴욕 플러싱
2021. 2. 5 목요일 오후